[로리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는 천지선 변호사는 20일,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유해인자 취급이나 노출에 따른 건강손상 자녀도 산재보험 대상으로 포함하는 일명 ‘자녀산재법’ 또는 ‘태아산재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정을 촉구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ㆍ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녀산재법 개정 촉구 및 산재 심사ㆍ재심사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반올림과 공동행동 등 주최 측은 “자녀산재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 싸워온 제주의료원 간호사들과 반도체 노동자들의 아픔과 노고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법은 시행일(2023년 1월 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한다고 해 근본적으로 과거 피해자를 배제하는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주최 측은 “또, (산재 신청 당사자로) 임신 중의 노동자, 즉 여성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남성 노동자’의 직업환경 영향으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 문제는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고도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기자회견에 천지선 변호사는 ‘재벌특혜 삼성특혜 반도체특별법 중단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많은 피해자들을 배제하는 자녀산재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천지선 변호사는 “대법원은 5년 전인 2020년 4월 29일, 자녀 산재가 산재법상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며 “국회는 대법원 판결 이후 산재법을 개정했고, 이 개정법이 2023년 1월 1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천지선 변호사는 “현행 산재보험법은 개정 이후나 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비교해 볼 때 인정 범위를 현저히 축소해서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첫 번째로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근로자 본인의 산재에 비해서 신청 기간이 지극히 짧다”며 “근로자 본인의 산재는 사실상 언제든지 신청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민사상 손해배상 법리에도 부합하고, 산재 특히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 소송의 특성과도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통상적인 민사 손해배상의 경우에는 있은 날부터 10년, 안 날로부터 3년에 시효가 기산된다”며 “본인 산재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자신의 업무 때문에 질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년의 시효가 기산이 된다”고 설명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직업병은 발병 원인에 노출된 이후에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며 “(예를 들어) 석면의 잠복기는 최장 40년으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천지선 변호사는 “근로자가 자신의 병이 업무 때문인 걸 알고, 더구나 자신의 아이가 아픈 것이 자신이 예전에 일할 때 노출된 물질 때문인 것을 아는 데까지는 보통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자녀의 선천적 장애의 경우는 장애가 확정될 때까지 또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현행 산재법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18세 이후에 장애 등급 판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그런데 현행 산재보험법 부칙은 2023년 1월 12일 이후에 출생한 자녀부터로 기간을 한정하고 있다”며 “산술적으로 계산을 하면 선천적 장애를 가진 자녀가 산재로 인한 장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2023년 1월 12일 후에 태어나서 18세가 돼야 하므로 2041년에나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불합리한 법이라는 것이다.
현행 산재보험법의 부칙에 따르면, 제2조 3.에서 “이 법 시행일(2023년 1월 11일) 전 3년 이내에 출생한 자녀로서 이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제36조제2항에 따른 청구를 하는 경우”를 적용하도록 돼 있다.
천지선 변호사는 “산재보험법 개정 이유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서 자녀 산재 특례를 규정하고 각종 보험 급여를 지급하려고 개정을 했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현행 산재보험법으로는 오히려 선천적 장애를 가진 자녀의 산재를 대법원의 판결보다, 그리고 개정 전보다 오히려 범위를 짧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천지선 변호사는 “둘째는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남성의 자녀 산재를 배제해서 성차별적”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특정 성별에 자녀 산재만 인정하라는 내용은 없었고, 생식 독성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만든 생식 독성 물질 취급 근로자 안전 직업 건강 가이드에는 와파린, 일산화탄소 등 생식 독성 물질을 나열하고 있고 남성의 경우에도 생식 독성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현행 산재법은 임신 중인 근로자의 경우에만 특정하고 있어서 남성 근로자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91조의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에 따르면, 법의 적용 대상으로 “임신 중인 근로자”로 정하고 있고, “이 법을 적용할 때 해당 업무상 재해의 사유가 발생한 당시 임신한 근로자가 속한 사업의 근로자로 본다”고 하고 있어, 남성은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지선 변호사는 “대법원은 2020년 4월 29일 2012년에 산재를 신청한 원고들의 자녀를 8년 만에 인정하는 판결에서 요양급여 수급권자는 근로자여야 한다는 산업재해법의 규정이 이미 정당하게 평가된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라는 본질을 무력화할 정도로 큰 의미와 진위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가 궁극적으로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국회가 이 판결의 취지와 산재법의 본래 취지에 맞도록 더 이상 자녀 산재 피해자들을 배제하지 않도록 법률을 빨리 개정하기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전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승규 노무사(반올림),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공동행동 건강권팀장), 강미희 한국노총 금속노련 여성국장,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대의원, 정향숙 씨(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등과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 3인(유OO 씨, 정OO 씨, OOO 씨/이슬아 노무사 대독)가 발언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창했다.
“과거 피해자 배제하는 태아산재법 개정하라!”
“노동자 건강 파괴하는 반도체 특별법 반대한다!”
“반도체 노동자 자녀 건강권 외면하는 국회를 규탄한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