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국정원 사찰 이후 길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거나, 뒤쪽으로 핸드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으면 유심히 살피게 되고, 혹시 나를 찍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사찰 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생각과 행동들입니다”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가 국정원 직원과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자리에서 심정을 밝혔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23일, 국정원이 3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에 자주 참가한 원고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원고들을 탐문ㆍ채집하는 방법으로 비밀리에 사찰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과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평범한 주부로서 동네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주지은 씨는 “사찰 사건 이후 가장 황당했던 것은 국정원 직원이 저와 제 동료들을 감금ㆍ폭행 등으로 고소ㆍ고발한 것”이라며 “국정원의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호소했다.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주지은 씨는 “아무런 죄 없는 민간인을 한 달 가까이 집요하게 불법사찰하고 없는 죄를 만들려고 했던 자들이 사과는커녕 오히려 저와 동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지은 씨의 설명에 따르면, 라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OO이라는 국정원 직원이 가게가 잘 보이는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일하는 라면 가게에 도시락을 받으러 온 후배들이 발견해서 얘기해 줘 알게 됐다고 한다.

주지은 씨는 “사실 이OO 씨를 먼저 발견하긴 했지만, 둔감해서 그냥 아저씨가 앉아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편의점에 들렀던 후배가 그 직원 뒤를 지나가면서 보니 우리를 찍은 사진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주지은 씨는 “(누군가 나를 몰래 찍고 있어) 일단 무서우니까 당시에 남편과 가게 사장이 같이 가서 그에게 ‘핸드폰 좀 보자’고 해서 밝혀지게 된 일”이라며 “처음에는 사찰이라는 생각을 못 해서 경찰 지구대에 스토킹 혐의로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주지은 씨는 “그 국정원 직원을 가게로 데려와서 차분히 앉아서 얘기하자는 취지로, 당시 가게 오픈 시간도 1시간 정도 남은 상태에서 빨리 얘기하고 확인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당시 영상도 있는데, 앉혀놓고 얘기하는 과정을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는 식의 진술이 고소장에 있었다”고 전했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주지은 씨는 “검찰은 국정원의 불법 사찰 혐의는 물론, 사찰의 협조자였던 경찰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것까지 모두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며 “모든 국민이 지켜본 (디올백) 뇌물 수수 범죄자 김건희 여사에게 무죄를 주고 있는 정권답다는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주지은 씨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국가와 국정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나갈 것”이라며 “왜냐하면, 더 이상 이런 국가폭력에 의해 선량한 시민들의 일상이 파괴되는 경우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왼쪽부터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왼쪽부터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또다른 피해자인 대학생 김수형 씨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에서 활동한다.

김수형 씨는 “지난 3월 22일, 국정원 직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 행위가 발각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학생들을 무단으로 촬영하던 국정원 직원 핸드폰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인 본인을 포함해 여러 대학생의 동선과 특징, 그리고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는 모습 등을 오랜 시간 추적하면서 사진과 텍스트로 남겨놓은 것을 파악했고, 이를 안보수사단 직원들과 공유하면서 피해 대화를 나눈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해당 인물이 국정원 직원인 것 또한 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김수형 씨는 “피해 당사자로서 국정원 직원이 열어 보안기관들과 공모해 이 같은 행위를 일삼은 이유는 분명 현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정권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 와해시키려는 큰 그림 그리기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왼쪽부터 하주희 민변 사무총장,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김수형 씨는 “국정원 직원의 핸드폰에서 발견된 내용 중, 윗선에서 대진연 학생들이 선배와 접촉하는 것을 북한과의 연계성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발각된 바 있다”며 “이는 이번 불법사찰의 목적이 선배를 간첩으로 둔갑시켜 대진연을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공안사건 조작 시도였다는 걸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김수형 씨는 “과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서도 알 수 있지만,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관은 간첩 조작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조직”이라며 “공안기관이 이 당시 대진연 뿐만 아니라 윤석열 탄핵에 앞장서고 있는 촛불행동 단체 대표, 시민단체 회원, 농민, 민주당 지역 당직자 등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불법사찰 했다는 것이 국정원 조사관의 휴대전화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왼쪽부터 국정원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주지은 씨와 김수형 씨(한국대학생진보연합),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김수형 씨는 “그리고 최근 연이어 터진 민중민주당, 반일행동 압수수색, 진보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혐의의 압수수색, 촛불행동 회원 명단 압수수색이 있었다”며 “그리고 어제, 시판 중인 책과 100여 편의 인터넷 기사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을 들먹이며 언론사 자주시보 전현직 기자 4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자행했다”고 덧붙였다.

김수형 씨는 “보수세력이 지난 역사 속에서 늘 그래왔듯 이번 민간인 사찰도 현 윤석열 정권이 자신들의 정권 위기를 돌파하려는 속셈으로 공안기관를 앞세워 자신에 비판적이거나 진보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서 위축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수형 씨는 “그러나 그따위 철 지난 수작과 저열한 공작에 넘어갈 우리 국민도 없으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불법 공작 앞에 위축될 진보 시민단체도 없다”며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과 더불어 진보세력과 우리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탄압하려는 그 모든 만행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최새얀 변호사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백민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하주희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사찰 피해자 주지은 씨와 김수형 대진연 회원,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법원은 국정원의 불법행위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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