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가운데)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리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는 천지선 변호사는 직업병과 질병산재의 긴 잠복기 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임신 중인 근로자가 입은 피해에만 한정하는 현행 자녀산재법에 대해 “공정하고 일관성있는 법적용이라거나 국가에서 산재보험을 시행하고 관리하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8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자녀산재 피해자를 또다시 소송으로 내몰 것인가?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을 개정하라”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자녀산재 피해자를 또다시 소송으로 내몰 것인가?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을 개정하라 기자회견
자녀산재 피해자를 또다시 소송으로 내몰 것인가?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을 개정하라 기자회견

‘자녀산재법’은 2022년 1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개정되면서 유해인자 취급이나 노출에 따른 건강손상 자녀도 산재보험 대상으로 포함되며 입법됐다.

반올림은 “해당 법은 시행일(2023년 1월 12일) 이후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태어난 자녀산재 피해자를 배제하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해당 법은 임신 중의 노동자, 즉 여성으로만 대상을 한정하고 있어, 남성 노동자 자녀의 건강손상 문제는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받고도 산업재해 보험 적용에서 배제된다.

반올림은 “현재의 자녀산재법은 어머니의 자녀가 아프게 태어난 경우만 보호하고, 아버지의 자녀가 아프게 태어난 경우는 보호하지 않는다”면서 “또한, 자녀산재법 시행 이전에 이미 아픔을 갖고 태어난 자녀들도 보호하지 않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자녀만, 과거가 아닌 미래의 자녀만 보호하는 ‘반의반 쪽’짜리 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천지선 변호사는 “2024년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제대로 된 사실관계 조사와 역학조사도 없이,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도 없이 피해 자녀가 자녀산재법 개정 이전에 태어났다며 산재신청을 기각했다”면서 “법 개정 전에는 법 개정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도 자녀산재를 신청할 수 있었다”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전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대법원은 실제로 2020년 4월 29일 법 개정 전에 자녀산재를 산재로 인정했다”면서 “그런데 법을 개정하고 나니 오히려 근로복지공단은 법 개정 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산재 피해자의 신청을 기각했다. 개악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에 대해 천지선 변호사는 “단순히 시기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녀산재ㆍ질병산재의 특성이 고려돼야 하는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사고산재는 원인인 사고의 발생 시점, 사고로 인한 피해의 발생 시점,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가 업무상 사고 때문이라고 인지하는 시점, 이렇게 3가지 시점의 시간 차가 비교적 크지 않지만, 직업병이나 질병산재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석면의 잠복기는 최장 40년인 것처럼, 직업병은 화학물질에 노출된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근로자 본인조차 자신의 질병이 업무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기 어려운데, 자녀의 건강손상이 부모의 업무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통상적인 시효의 기산점 법리에 따르면 근로자가 업무 때문에 질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안 시점부터 시효가 기산된다”면서 “사건발생-피해발생-사건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인지까지의 시간이 늘 일치하지 않고, 특히 직업병의 경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천지선 변호사는 “그런데 이러한 고려가 산재보험법 자녀산재 조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가운데)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발언하고 있다.

천지선 변호사에 따르면 한 근로자가 화학물질에 노출된 후 출산한 두 자녀가 같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법 개정 전에 태어난 자녀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천지선 변호사는 “이렇게 자녀산재ㆍ질병산재로서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다 보니, 자녀산재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적절한 보상이 없거나 매우 적다”면서 “8년의 시간을 버텨서 대법원 판결을 받아 낸 제주의료원 피해 간호사와 그 자녀들도 실질적인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법에는 자녀산재의 경우 휴업급여가 없고, 이에 상응할 만한 돌봄부모를 위한 급여도 없고, 장해급여만 있는데 장해판정마저 18세 이후에 하도록 돼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녀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녀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천지선 변호사는 “현행법상 자녀산재는 ‘임신 중인 근로자’가 입은 피해에 한정해, 임신 전의 난자 등의 손상이나 근로자가 남성인 경우를 배제한다”면서 “명백히 성차별적인 법률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천지선 변호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요양급여 수급권자는 근로자여야 한다는 산업재해법의 규정이 이미 정당하게 평가된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라는 본질을 무력화할 정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는가? 그렇게 볼 수 없다. 국가가 궁극적으로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며 자녀 산재를 인정했다.

2022년 개정된 산재보험법에도 개정 이유로 “대법원이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하여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함에 따라,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업무상 사고, 출퇴근 재해 또는 유해인자의 취급ㆍ노출로 인하여 출산한 자녀가 부상,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에 대한 특례 규정을 신설하고, 그 자녀를 근로자로 보아 각종 보험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산업재해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발언하고 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발언하고 있다.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럽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취지에 맞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는 법률 개정이 조속히 이뤄지길 요청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2024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복지공단 대상 국정감사에서도 자녀산재 관련 질의가 있었다. 당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공단은 자녀의 차지증후군이 아버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임신 중인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태아 산재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입법 미비가 아니냐”고 지적했고, 이에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동의했다.

사진=김주영 의원실
사진=김주영 의원실

실제로 22대 국회에서도 아버지 자녀의 산업재해 관련 법 개정안으로 장철민, 김주영,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고, 어머니 자녀산재(과거 피해자 산재 신청기간을 법개정 시행일로부터 3년까지 연장하는 내용) 관련 법 개정안으로는 이용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종란ㆍ정향숙ㆍ임다윤 반올림 상임활동가, 조승규 노무사, 천지선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삼성디스플레이 자녀 산재 피해자 정 씨, 임혜인ㆍ이슬아 노무사(삼성전자 반도체 자녀 산재 피해자 발언문 대독), 고광민 변호사(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자녀산재 피해자를 또다시 소송으로 내몰 것인가?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을 개정하라 기자회견
자녀산재 피해자를 또다시 소송으로 내몰 것인가? 국회는 90일 안에 자녀산재법을 개정하라 기자회견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국회는 자녀산재법 신속히 개정하라!”
“피해자 배제하지 말고, 자녀산재법 제대로 개정하라!”
“장애인도 노동자다, 차별하지 말고 충분하게 보상하라!”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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