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 이념을 이기는 사회>
조선 중종 시절에 속고내(束古乃)라는 여진족이 소란을 일으켰다. 속고내는 변경 마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납치하는 등 피해를 입혔으나, 신출귀몰하여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속고내가 압록강 인근에서 사냥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됐다.
병조판서 유담년은 그를 기습해 사로잡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도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는 “사냥하는 사람을 엄습하는 건 인의(仁義)에 어긋난다”며 “그런 술책을 쓰면 국가의 체면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황당무계한 소리였지만 중종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조선은 속고내를 붙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후에도 속고내는 번번이 국경을 넘나들며 우리 군민을 죽이고 노략질을 했다.
중종 실록에 기록된 속고내 사건은 이념적 사고에 함몰된 어리석은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성리학을 신봉하던 사림은 종종 그릇된 명분에 집착해 눈앞의 현실을 외면했다. 조정은 당연히 백성의 안위를 먼저 챙겨야 한다.
그런데 실제 보여준 모습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군자의 도리란 그럴듯한 구두 선으로 ‘멋짐’을 과시하거나, 자리다툼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이러한 위선 정치는 이후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로 점철되다, 도장 찍어 나라 팔아먹는 추태로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허한 이념에 집착하는 허위의식은 586 운동권에 그대로 이어졌다. 운동권 정치의 ‘끝판왕’이었던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공리공론에 집착하다 자폭했다. 문 정부를 한 줄로 평가하면 ‘이념이 실용을 누르는’ 정부다. 검증 안 된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다 자영업 몰락과 물가 폭등을 야기하고, 뜬금없는 탈원전 정책으로 멀쩡한 발전소를 폐쇄했다.
중국에선 소국(小國)을 자처하며 중국몽에 함께하겠다는 실언으로 국격을 낮췄다. 경제, 외교, 안보,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아마추어 선무당들이 칼자루를 휘둘렀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는 자강 자립을 위한 토대를 스스로 허물며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건 여의도를 기웃거리는 정치 건달과 넘쳐나는 요설가들 뿐이다.
운동권 정치가 사회 암(癌)이 된 이유는 사상의 뿌리가 관념적 사회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세력의 주축을 구성하는 586 인사들은 청년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심취한 내력을 공유한다. 이들은 군부 통치의 극복 대안을 상호 대척점에 있던 이데올로기에서 찾았다. 늑대가 밉다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셈이다. 계파와 노선도 다양했는데, 일부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며 ‘위수김동’을 외쳤다.
그러나 80년대 대한민국 상황은 당시 86세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입체적이었다. 산업화 정책의 성공으로 경제는 고도성장기에 진입했다. 체제 한계로 몰락을 거듭하던 동구권과 달리, 자유세계에 속한 한국은 국부가 쌓이며 중산층이 빠르게 성장했다. 중산층의 등장은 억압적 체제의 종말을 의미한다. 6월 항쟁을 통해 철권통치를 종식한 건 중산층과 넥타이 부대의 힘이었지, 강철서신을 돌려보며 사회 전복을 획책하던 일단의 무리가 아니다.
문민정부 이후 운동권은 민주화 활동가라는 포괄적인 간판 아래 들어와 지금까지 정치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개중에는 낡은 과거와 결별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이데올로기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
2019년 당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는 과거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 이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자랑도, 부끄러움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애매함으로 포장했지만, 진의는 “부끄럽지 않다”라는 데 있었다. 많은 운동권 인사가 조국 전 장관과 유사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념주의자들은 현실보다 이론적 정합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실재(實在)보다 관념을 우위에 둔다. 이론과 현실이 맞지 않으면, 현실에 맞게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86세대 운동권은 그렇지 않았다. 외려 현장을 무시하고 관념적 노선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경험 폭이 얇고, 현장 감각이 부족한 탓이다. 햇볕정책,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중국몽, 부동산 폭등과 같은 정책 실패는 어찌 보면 이 같은 행보의 산물인 셈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안팎이 시끌하다. 강력한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주변을 살펴보니, 집권하면 퇴행적인 운동권 정치가 한 번 더 재연될 우려가 크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보다 더 전위적이고 위험한 양태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견제해야 할 보수 진영은 한 줌도 안 되는 당권을 놓치지 않으려 달팽이 뿔 위에서 이전투구 중이다. 운동권 출신보다 더 고집스럽게 이념에 집착하며, 아예 봉건사회로 후퇴하는 모습도 보인다.
포스트(post) 86을 기대하는 국민의 여망에 한참 못 미친다. 이대로 가면 필패다. 지금이라도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경제 성장과 중산층 확대 등 실용주의를 담지한 후보에게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보수가 아닌, 대한민국 공동체가 다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은 2025년이다. 실용이 이념을 이기는 정부가 간절하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