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가치>
우리나라의 보수 유권자는 다층적으로 구성돼 있다. 편의상 같은 범주에 속하지만, 세부적인 의식구조와 지향점이 다르다.
중도층에 속한 우파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리버럴리즘 성향이 강하다. 교육과 문화ㆍ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진영 후보에게 투표하기도 하는 부동층이다.
보수 진영의 중앙을 차지하는 중심층은 대한민국이 지난 세기 이룩한 경제ㆍ안보 분야의 성취를 중시한다. 자유 못지않게 자유의 토대가 되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시장경제와 전통적 가족 질서를 옹호하는 경향을 띤다.
보수의 끝자락에는 강성 지지층이 있다. 이들은 반공(反共)을 자유 수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라면 다소 억압적 체제도 가능하다 믿는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스펙트럼에 포함되기 어려운 지평선 너머에 파시즘이 존재한다. 가짜뉴스와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일베 류(類)의 인터넷 극우가 여기 속한다. 보수 후보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보수에 속하기 어렵다.
보수층은 대체로 586 운동권에 반감을 보인다. 하지만 그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중도우파는 운동권 출신이 집착하는 퇴행적 이데올로기와 전체주의 경향 때문에, 강성 지지층은 그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는 용공 세력이라 여겨 싫어한다. 진영 내에 가장 넓게 산개된 중심층은 자신의 경험칙 내에서 두 관점을 유연하게 수용한다.
한편 2030 세대에 속하는 젊은 보수층은 지난 20년간 운동권 정치인들이 보여준 위선과 무능에 질색하는 편이다.
많은 지점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이 보수층으로 묶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기층 정서에 착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앞 세대 입장에서 자유는 곧 생존을 의미한다. 평화와 풍요를 누린 뒷 세대에게 자유는 천부적 권리이자 경제 번영의 초석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유와 법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해 합종연횡할 수 있었다.
하지만 12월 3일 비상계엄은 보수 진영의 질적 분화를 촉발해 조각조각 해체시켜 놓았다. 비록 2시간 만에 끝났지만, 자유의 깃발 아래 연대하고 있던 빅텐트가 크게 흔들렸다. 서로가 서로의 정체성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중도층은 강성층을 파시즘 세력으로, 강성층은 중도층을 ‘빨갱이’로 오인하며, 상대방을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피아식별이 어둔해진 이유는 인터넷 극우와 돈벌이에 심취한 극성맞은 유튜버들이 보수 진영을 활보하며 내부 총질을 사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시야를 가진 일부 정치인이 이들에게 경계를 내어주고 편승한 잘못이 적지 않다.
이처럼 보수가 혼란을 거듭하는 사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는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로 사법 리스크까지 덜어낸 후 기세가 자못 사납다. 만일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그는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독점하게 된다. 이미 민주당은 비명계 숙청으로 사당(私黨)화되어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당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 섬뜩한 모습을 기억한다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그들의 손에 넘기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빅텐트를 재건하는 일이 시급하다. 오인 사격을 멈추고, 뿔뿔이 흩어진 세력을 다시 결집시켜야 한다. 결집은 근본 가치를 공유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다행히 공통 분모는 살아있다. 자유는 보수의 영원한 종자 씨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계엄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함축할 수 있는 인물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상황을 견인해야 한다. 이 부분은 명확하다.
시대착오적 계엄은 자유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보수의 정신과 맞지 않았다. 계엄을 옹호하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알량한 지역구에서 배신자 소리 듣기 싫어 어물쩍 넘어가려 하다가는, 그나마 손에 쥔 것조차 빼앗기게 된다. 자유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층위에 놓인 사람들과 소통하며, 우리가 한 팀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도 하는데, 자유의 기치 아래 보수가 다시 뭉치지 않을 리 없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