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용기>
답답하다. 극우의 존재는 더 위험한 세력을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줄 뿐이다. 가짜뉴스를 신봉하며 법원에서 난동 피우는 세력을 지지할 상식적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여권 지도부는 이런 사람들에 기대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참담한 현실이다.
모든 몰락은 자멸(自滅)이다. 야당 탓을 할 필요 없다. 극우가 작출한 착시 현상은 합리적 보수에 기대를 걸고 남아 있던 중도층 이탈을 가속하고 있다. 가짜뉴스와 혐오주의에 뿌리 내린 선동은, 외려 정권을 넘겨줄 기회를 활짝 열어젖힐 뿐이다.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분별이 필요하다. 보수 진영은 계엄 사태와 관련한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착오적이고, 반(反) 법치적인 비상계엄은 나라를 총체적 위기에 몰아넣었다. 사회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고, 양식 있는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쯤 되면 완벽한 자충수다.
만일 계엄이 성공했다면 더 큰 문제에 봉착했을 수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지적처럼, 계엄 치하에서는 국민적 저항이 발생하게 되고 이를 군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도래했다면, 우리나라가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경제의 선진화, 정치의 민주화라는 업적이 송두리째 무너졌을 것이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폭주와 어깃장이 국난을 자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의 빌미가 된 총선 패배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비상식적 행태와 내로남불식 위선의 모습은 물론 경악할 만하다. 특정인의 보신과 안위에 집착해 정상적인 사법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장면도 온 국민이 지켜봤다. 그러나 여당은 이런 야당에게조차 참패했다. 집권 2년간 불통으로 일관하며 민심 이반을 자극한 대통령의 책임이 적지 않다. 총선 당시 유권자들은 대선 때와 비교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캐스팅 보트를 쥔 중도층의 실망이 심판 정서로 드러났을 뿐이다.
이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 필요하다. 계엄에 찬동하고, 정부의 실정에 눈감는 인물이 차기 보수 대선 주자로 나서면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압도적으로 패배할 것이다. 여당에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승산 없는 옥쇄돌격을 강행할지, 아니면 새 인물을 중심으로 디테일한 정책 담론을 제시할지 여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계엄 해제에 앞장선 시민의 용기를 가진 여당 인사가 아직 건재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