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보험사들은 “백내장 환자가 수술 전부터 착용하던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대체하기 위해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선택한 것은 시력을 교정하기 위한 것으로 수술비용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백내장 수술 자체가 백내장이 생긴 수정체를 제거하고 본인 시력에 알맞은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 것이므로, 수술에 따른 시력교정 효과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이번 사건 보험사는 “병원 진료기록부에 백내장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없고, 오로지 수술을 담당한 의사의 백내장 소견 등 주관적인 의견만 기록돼 있어 백내장 질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양쪽 눈 백내장 A씨 수술비용 899만원 보험금 청구…H해상화재보험 거절

사건은 이렇다. 부산지방법원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종합하면 A씨는 2009년 5월 H해상화재보험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2020년 11월 부산의 안과병원(B)에서 ‘기타 노년백내장’ 진단을 받고 이틀에 걸쳐 양안(양쪽 눈)에 수정체 초음파 유화술 및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백내장 수술비용으로 자신이 부담한 899만원에 대해 H해상화재보험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런데 H화재보험은 “보험금 지급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약관에 따라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A씨는 세극등 현미경 검사에서 수정체 혼탁이 확인되지 않아 백내장 질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결국 A씨는 백내장 질병으로 인해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할 수 없어, 원고는 질병 치료를 전제로 보험금 지급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맞섰다.

H화재보험은 또 “설령 A씨가 백내장 질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통상 백내장 수술의 경우 단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A씨의 경우 다초점렌즈 삽입술을 선택해 시력교정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의 효과를 꾀했다”고 주장했다.

단초점 인공수정체의 경우 비용은 몇 십만이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반면 다초점 인공수정체의 경우 비용은 병원마다 다른데 한쪽에 몇 백만원에 달하며,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다초점 인공수정체 수술을 받은 백내장 환자들이 보험금을 받지 못해 보험사들과 분쟁에 휩싸이고 있다.

H해상보험은 “약관에 ‘안경, 콘텍트렌즈’ 등의 대체비용의 경우 이를 면책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A씨가 백내장 수술 전부터 착용하던 다초점 안경을 대체하기 위해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는 의료비용의 경우 면책돼 보험금 지급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민사2단독 김태환 판사는 2022년 8월 18일 H해상화재보험이 “백내장 수술비 보험금을 달라”는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H화재보험의 청구를 기각하며 패소 판결했다.

김태환 판사는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백내장 소견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지 여부에 대해 “수술 전 시력이 저하돼 있고, 의무기록에 세극 등 현미경 검사상 백내장 소견이 확인되고 있고, 진단명에 백내장이 명시돼 있고, 증상이 침침함을 호소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백내장 소견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A씨의 백내장 질병 여부에 대해 김태환 판사는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질환으로 세극등 현미경 검사를 통해 백내장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방법인데, A씨에 대한 세극등 현미경 검사 사진상으로는 백내장 소견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보이기는 하나, 세극등 현미경을 통한 촬영결과는 조명 각도, 촬영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가장 정확한 검사는 담당의사가 세극등 현미경을 통해 육안상 백내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환 판사는 A씨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감정담당의사 등의 의견 등을 종합해 “A씨에게는 약관이 정한 ‘질병’으로서 백내장 질환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김태환 판사는 “A씨가 백내장 수술 이전에 다초점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는 사정이나,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로 인한 비용이 약관이 정한 면책대상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따라서 보험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 항소하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에 사건 의뢰

이에 H해상화재보험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런데 항소하면서 국내 최대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사건을 맡긴 것이 알려져 이번 사건이 더욱 주목을 끌었다.

H화재보험 대리인(변호사)들은 항소심에서 여러 주장을 폈다. 특히 “B안과병원의 진료기록부에는 A씨의 백내장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산동 후 촬영한 세극등 현미경 영상 자료 등)는 없고, 오로지 수술을 담당한 의사의 백내장 소견 등 주관적인 의견만 기록돼 있어, A씨의 백내장 질환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산동’은 눈의 동공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부산지법, 부산가정법원, 부산고법 
부산지법, 부산가정법원, 부산고법 

◆ 항소심도 보험사 청구 기각하며, 백내장 수술비용 보험금 지급하라 판결

하지만 부산지방법원 제3-1민사부(재판장 정성호 부장판사)는 지난 8월 25일 H해상화재보험이 ‘백내장 수술비용 899만원의 보험금을 달라’는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H화재보험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A씨에게는 백내장이란 질병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보험사는 A씨에게 수술비용(899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제1심 법원 감정의 의견을 살폈다. 감정의는 “세극등 현미경 검사를 통한 육안상 백내장 확인이 백내장 진단을 위한 가장 정확한 검사”라는 견해를 밝히며, “수술 전 A씨의 시력이 저하돼 있고, 의무기록에 세극등 현미경 검사상 백내장 소견이 확인되고 있고, 진단명에 백내장이 명시돼 있고, 증상이 침침함을 호소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수술 당시 A씨에게 백내장 소견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B병원에 검사내용 및 검사 소견의 보관 외에 백내장 수술 환자에 대한 세극등 현미경 검사의 영상 자료 등을 보관하도록 정하는 관계법령의 규정은 없는 점, 담당의사가 수술 전 A씨의 양안에 대한 세극등 현미경 검사 등 백내장 진단에 필요한 검사들을 시행해 담당의사가 육안으로 산동된 A씨 양안을 관찰해 백내장을 확인한 후 백내장 진단을 내린 점을 종합하면, A씨의 양안을 산동 후 촬영한 세극등 현미경 검사의 영상자료 등이 없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백내장 질환이 없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보험사가 A씨의 보험금 청구에 대해 수술 전 산동한 양안을 세극등 현미경 검사를 통해 직접 검사한 담당의사의 백내장 진단 외에 추가적인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약관 제20조의 ‘질병’을 인정함에 있어 보험사가 약관에서 미리 정한 내용 이상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험사는 약관에 정해지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A씨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H해상화재보험은 또 예비적 주장으로 “설령 A씨가 백내장 질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통상 백내장 수술의 경우 단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A씨의 경우 수술 전부터 착용하던 다초점 안경을 대체할 수 있도록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선택한 것이므로, 보험사의 A씨의 수술비용에 대해 보험금 지급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백내장은 수정체에 혼탁이 생겨 시력 저하가 발생하는 안구질환으로서 적시에 치료하지 않을 경우 녹내장 등의 합병증을 유발하거나 시력까지 잃게 되는 질환”이라며 “백내장 치료를 위한 수술적 처치는 백내장으로 기능을 못하는 환자 본인의 수정체를 제거한 후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므로 인공수정체의 사용이 필수적이고, 삽입된 인공수정체는 신체에 이식돼 기존 수정체의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B안과병원 진료기록부에 따르면 담당의사는 2020년 11월 세극등 현미경검사, 안저촬영, 전안부촬영, 계측 검사 등을 시행 후 A씨의 양안에 ‘기타 노년백내장’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백내장을 치료하기 위해 A씨의 양안에 수정체 초음파 유화술 및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시행했다.

재판부는 현재 백내장 치료에 사용되는 인공수정체의 종류에는 단초점 인공수정체와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있는데, 둘의 장단점을 살폈다.

단초점 인공수정체는 빛을 나누지 않고 망막에 투여함으로써 수술 당시 초점을 맞춘 거리(원거래 또는 근거리)에서는 시력의 질이 우수하고, 값이 상대적으로 싸며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이 되는 장점이 있으나, 초점을 맞추지 않은 다른 거리(원거리 또는 근거리)의 사물은 잘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원거리와 근거리로 분산해 망막에 투여함으로써 멀리 있는 물체와 가까이 있는 물체가 각각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빛이 분산돼 어두워지는 만큼 시력의 질이 떨어지고 야간 눈부심이나 빛 번짐 현상 등이 발생할 수 있고,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며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재판부는 “각 인공수정체의 장단점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의 의사, 나이, 직업, 생활 패턴, 경제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에게 삽입할 인공수정체의 종류를 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인공수정체 종류에 따른 장단점을 고려하면, 백내장 발생 전에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정상 시력을 가지고 있었던 환자라도 백내장 수술을 해 눈의 굴절조절 기능을 하는 자신의 수정체를 제거하고 단초점 인공수정체로 시술할 경우 초점을 맞춘 원거리 또는 근거리 중 하나만 제대로 보이게 되므로 백내장 이전 상태로의 온전한 회복이라 볼 수 없고,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시술할 경우에 비교적 기존과 유사한 상태가 될 뿐”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어 “더욱이 단초점 인공수정체의 경우에도 근거리로 초점을 맞춘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면 노안 치료 효과가, 원거리로 초점을 맞춘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면 근시 치료 효과가 발생하고, 양쪽 눈을 삽입하는 인공수정체의 굴절도수를 다르게 해 각각의 눈으로 원거리와 근거리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해 시력교정 효과가 다초점 인공수정체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백내장 수술 자체가 백내장이 생긴 수정체를 제거하고 본인 시력에 알맞은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 것이므로, 수술에 따른 시력교정 효과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다만 어떠한 인공수정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시력교정 효과의 정도가 달라질 뿐”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하므로, 시력교정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단초점 인공수정체를 사용한 백내장 수술비용은 약관에서 말하는 ‘안경, 콘택트렌즈 등 진료재료의 구입 및 대체비용’에 해당하지 않고, 시력교정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은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사용한 백내장 수술비용만 ‘안경, 콘택트렌즈 등 진료재료의 구입 및 대체비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렇다면 H화재보험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받지 못해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가입자들
백내장 수술 보험금을 받지 못해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가입자들

◆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 “보험사 백내장 수술 보험금 거절 명분 없어”

이번 판결과 관련,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는 30일 “백내장 보험금 부지급 사태가 1년이 지나도록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정책당국이 구체적인 문제 해결을 하지 않아 국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제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조정결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보통은 보험사와 협의해 그에 따라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해 재검토하라는 수준의 권고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이에 보험금을 못 받은 일부 소비자는 보험사를 상대로 공동소송을 제기했고,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를 통해 공동소송에 참여한 환자가 2000명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공동소송뿐만 아니라 백내장 보험금 관련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보험계약자들이 전국적으로 수 천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보험금 미지급 관련 금감원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지난해 3만6466건으로 전년 대비 29.7% 증가했으며 대부분 백내장 관련 분쟁이었다. 보험사별로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4469건, 삼성화재해상보험 4418건, DB손해보험 4231건, KB손해보험 4166건, 메리츠화재해상보험 3848건 순이다.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는 “특히 이번 소송은 소액 사건이지만 보험사는 대형 로펌인 김앤장을 내세웠다. 이름값만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하지만 결과는 다윗인 환자의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정경인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 대표는 “이 판결은 진료기록 감정 절차를 거쳐 백내장 수술에 대한 일반적인 검증까지 마친 것으로, 판결 이후 더 이상 보험사들이 백내장 수술 입원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명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항소심 확정 판결은 진행중인 유사 백내장 보험금 소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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