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는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는 “‘국회에 판사들이 들락거리지 않게 하는 것’, 보다 근본적으로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을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판사들이 재판 이외의 업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는 사법개혁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왼쪽 맨앞이 박판규 변호사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박판규 변호사(왼쪽 맨앞)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한 박판규 변호사는 8일 페이스북에 <국회에서 판사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사개특위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개혁안이 아니라 ‘개명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혹평하면서 “법원행정처를 법원사무처로 명칭을 바꾼 정도에 불과하고, 기존에 여야 국회의원이 발의한 각종 개정안에 비해서도 매우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작년 12월 12일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의 수습방안으로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의견’을 발표하고, 법원행정처를 통해 국회에 전달했다. 이 개정안에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사무 집행기구로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박판규 변호사는 “법원행정처의 개정안이 ‘개명안’에 그친 이유는 이 법안이 개혁적 방안을 일정 부분 담고 있으나, 이번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 국민들이나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사법개혁은, 이번 사법농단 사건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가 주요 의제인데, (법원행정처는) 이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고 꼬집으며 “‘고민이 거의 없는 이유’는 사법고위관료들이 이번 사법농단 사건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은 ‘국회에 판사들이 들락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제시했다.

그는 “국회에 상주하는 판사로는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과 자문관이 있다. 법사위 전문위원은 이번에 파견하는 것을 중단했지만, 자문관은 그대로 있다. 자문관의 주요 역할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국회를 방문할 때 안내하는 역할과 국회 내의 법원 또는 재판절차 관련 법안에 관한 정보수집이다”라고 설명했다.

박판규 변호사는 “법안에 관한 정보수집에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한 일인지도 솔직히 의심되는데, 꼭 법률전문가가 필요하다면 변호사를 채용하면 될 일”이라며 “(실제로는) 법사위 자문관의 더 중요한 역할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국회를 방문할 때 안내하는 역할이다. 그만큼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국회를 자주 방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일반인들이 현직 판사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현직 판사를 만나는 사람은 거의 백이면 백, 자신 또는 자신의 지인의 사건에 대해 묻는다.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말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건 결과가 통상 어떻게 나오는지, 재판장이 이렇게 말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결과는 어떨 것 같은지,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정당한 것인지 등등을 묻는다”고 자신의 판사 경험담을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판사들은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에 ‘적당히 일반적인 대답’을 해주고 만다”며 “국회에 출입하는 판사들도 같은 대답을 해야 할 것인데, 문제는 국회에 출입하는 판사들은 업무적으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적당히 일반적인 대답’이 아닌 ‘좀 더 성의 있는 대답’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법농단 사건은 ‘아주 성의 있는 대답, 나아가 처리’를 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법원행정처 소속이 아니라면, 판사들이 국회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지금의 법원행정처도 이번 ‘개명안’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판사들이 계속 국회를 들락거릴 것이고, 틈틈이 위험한 ‘좀 더 성의 있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아주 성의 있는 대답이나 처리’를 하게 된다면 그게 사법농단 사건이다.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그러면서 “‘국회에 판사들이 들락거리지 않게 하는 것’, 보다 근본적으로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을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판사들이 재판 이외의 업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는 사법개혁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박판규 변호사는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제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37기를 수료했다. 판사로 임관해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수원지방법원에서 근무하다 2017년 법복을 벗었다. 현재 법무법인 현진에서 활동하고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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