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의 끝은 어디인가>
주식시장이 달아오를 때마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목격한다.
레버리지의 유혹이 시장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빚내서 투자”라는 말이 어느새 상식처럼 회자된다. 이른바 빚투는 한편으로 개인의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낮은 금리, 빠르게 올라가는 자산가격, 미래소득에 대한 자신감이 결합하면, 타인의 돈을 빌려 수익을 키우려는 시도는 경제학 교과서의 레버리지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 행위가 개인의 재무구조와 사회적 안전망, 시장의 안정성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빚투의 문제는 단순히 “위험해서 하지 말라”는 윤리적 권고로 다뤄질 수 없다. 레버리지가 어떻게 손실을 증폭시키고, 어떻게 인간의 행동편향을 자극하며, 어떻게 사회적 비용을 외부화하는지, 그 구조적 결함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빚투의 핵심 문제는 수익과 손실의 비대칭성이다. 자산가격이 상승할 때 레버리지는 수익률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 그러나 하락 국면에서 같은 메커니즘은 자기자본의 급속한 증발로 전환된다.
특히 신용거래나 파생상품은 담보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마진콜과 강제청산이 방아쇠처럼 작동한다. 투자는 원래 확률게임이지만 빚투는 결과분포의 꼬리를 두껍게 만들어 ‘드물지만 치명적인’ 사건에 취약해진다.
장 마감 이후 쏟아지는 악재, 주말 사이의 예상치 못한 뉴스, 개장 직후의 갭 하락은 손절의 선택권을 빼앗고 포지션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소액의 이익을 반복해서 쌓다가 한 번의 대손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이른바 ‘픽업 니켈 앞의 증기롤러’의 역설이 여기서 나타난다.
이 비대칭성은 금융비용과 결합해 누적적인 압박을 만든다. 변동금리 대출은 금리가 오르는 순간 수익의 문턱을 높이고 현금흐름을 말린다. 이자와 수수료는 보이지 않는 마찰처럼 투자의 기대수익을 깎아내리며, 장기보유 전략조차 상대 열세로 몰아간다.
시장이 횡보하거나 약세일 때 빚투의 시간은 곧 비용이다. 이 비용의 압박은 투자자의 심리에 직접 작용한다. 손실을 본 포지션을 청산하지 못하고 평균단가를 낮추려는 유혹, 손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 과신과 확증편향의 결합이 포지션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
행동재무학이 경고해 온 편향들이 레버리지 환경에서는 더 빠르고 더 크게 확대된다. 심리적 스트레스, 수면장애, 충동적 의사결정은 투자판단을 손상시키고, 결국 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빚투는 개인의 재무건전성과 신용도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원리금 상환이 흔들리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이는 추가 자금조달의 비용을 높인다. 단기 유동성이 막히는 순간, 생활비와 상환의 균형은 무너진다.
가계부채가 높은 사회에서 이러한 개인의 위기는 집단적 문제로 비화하기 쉽다. 자산가격 조정과 금리상승이 동시에 닥치면, 빚투로 확대한 위험은 개별가계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자극한다. 증권사의 증거금규정 강화, 신용융자 제한, 담보비율의 급격한 변경 같은 제도적 조정은 시장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연쇄반응을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빚투는 호황기에 수익을 사유화하고, 침체기에 손실을 사회화하는 경향을 띤다. 손실은 고스란히 가계부채의 부담으로 쌓이고,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 강화는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실물경제의 활력을 빼앗는다.
빚투를 둘러싼 담론이 특히 문제적인 지점은 그것이 종종 단기간의 성공사례와 결합된 대중문화적 내러티브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익명 커뮤니티의 수익인증, 레버리지 ETF나 코인파생상품의 극단적 수익률 캡처는 시장이 좋을 때의 한 단면만 비춘다. 실패담은 공유되지 않거나 공유되더라도 교훈이 아닌 놀이문화의 소재로 희화화된다.
이 왜곡된 정보환경은 학습의 기회를 빼앗고, 위험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만든다. 금융문해력이 충분하지 않은 투자자일수록 레버리지상품의 구조, 청산메커니즘, 증거금 규정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개인은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책적 관점에서도 빚투는 재고해야 할 과제를 남긴다. 시장의 자유와 투자자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거래구조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 위험을 만들어내는 경우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고레버리지 상품의 판매관행, 투자적합성 진단의 형식화, 경고문구의 무력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단순한 규제강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투자자가 스스로 위험을 계량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 금융교육, 청산과 마진콜의 시뮬레이션을 체험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도구, 변동성 국면에서의 행동규칙을 사전에 고정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
금융기관 또한 호황기에 확대된 신용공급이 불황기에 급격한 수축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장치와 투명한 규칙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레버리지를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기업이 성장투자를 위해 적정수준의 부채를 활용하듯, 개인도 자신의 현금흐름과 위험 감내 수준 안에서 제한된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적정’의 기준은 냉정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견딜 수 있는 손실 한도를 수치로 먼저 정하고, 포지션 규모와 손절규칙을 사전에 고정하는 일, 금리와 변동성의 변화를 반영해 레버리지 배수를 탄력적으로 줄이는 일, 생활자금과 비상자금을 절대 침범하지 않는 원칙이 그 최소요건이다. 이 원칙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빚투는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다. 위험을 모르는 용기는 무모함이고, 위험을 아는 절제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결국 빚투의 문제는 과도한 욕망과 불완전한 제도가 만나 만들어내는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 상승장의 달콤함은 잠시고, 하락장의 고통은 오래간다. 시장은 언제나 변하고, 레버리지는 변화를 증폭한다.
빚투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포장될수록 그 선택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책임있는 금융은 금지의 언어가 아니라 이해와 대비, 절제의 기술에서 시작한다. 수익의 가능성을 좇기 전에 손실의 내구성을 먼저 설계하는 것이 레버리지 시대를 통과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 될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