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넘치고 신뢰는 부족하다>
정보는 넘치고 신뢰는 부족하다. 이 한 문장은 현대사회가 겪는 가장 뿌리 깊은 딜레마를 정교하게 표현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보급,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까지 정보생산과 전달의 장벽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누구나 손쉽게 글을 쓰고, 사진과 영상을 만들고, 한순간에 전 세계로 퍼뜨릴 수 있다.
한때 ‘정보는 힘’이라 여겨졌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정보자체가 더 이상 희귀한 자원이 아니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라야 할지 혼란만 커진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진실에 도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정보의 바다에는 진짜와 가짜, 사실과 의견, 전문성과 아마추어리즘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 조작된 이미지와 허위 통계, 맥락이 삭제된 발언이 빠르게 퍼지고, 그 파급력은 종종 전문가의 신중한 분석이나 검증된 사실을 압도한다. 정보는 많아졌으나, 신뢰할 만한 정보는 점점 더 찾기 어려운 아이러니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여러 구조적 변화가 자리한다. 무엇보다 정보생산 비용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과거에는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상당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했다. 신문사, 방송국, 출판사 등 일정한 책임과 기준을 가진 조직이 정보를 걸러내는 ‘문지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할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그리고 최근의 생성형 AI는 정보생산 속도와 규모를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반면,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량이 폭증하면서 검증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정보의 신뢰를 해치는 또 다른 요인은 알고리즘의 존재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뉴스를 포털의 메인화면이나 SNS 피드, 유튜브 추천을 통해 접한다. 이들 플랫폼은 사용자의 클릭과 체류시간, 반응을 분석해 ‘관심을 끄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노출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나 맥락의 충실함보다는 자극성, 감정적 반응, 바이럴 가능성이 우선시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 공감하는 주장, 익숙한 세계관만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확증편향과 집단극화로 이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뢰의 오아시스는 더욱 멀어진다.
특히 인공지능의 등장은 신뢰의 위기를 한층 심화시킨다. 생성형 AI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고,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글을 생산한다. AI가 만들어낸 정보는 일견 그럴듯하지만, 사실관계나 맥락을 왜곡하거나 아예 허구를 사실처럼 조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정보가 아무런 검증 없이 확산될 때, 사회 전체의 정보생태계는 더욱 취약해진다.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정보가 의사결정과 여론, 심지어 정책과 시장까지 좌우하게 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신뢰의 기준이다.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고, 출처를 점검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경쟁력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고 사실과 허구, 가치판단과 데이터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소비자의 적극적 노력이 요구된다. 출처가 명확한지, 여러 채널에서 교차검증이 가능한지, 데이터와 통계의 배경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감정을 자극하거나 한쪽 입장만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정보에는 잠시 멈추고 한 발짝 떨어져 맥락을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모든 주체 역시 신뢰의 가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전문가와 미디어, 정책결정자와 기업, 그리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술자 모두가 투명성과 근거 제시, 한계와 오류의 공개를 생활화해야 한다.
실수나 오류가 발견됐을 때는 신속하게 수정하고, 그 이력을 공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시작이다. 신뢰를 얻으려면 불확실성이나 모르는 부분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신뢰를 설계하고, 검증가능성을 높이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신뢰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공공재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는 오히려 무지가 되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정보의 양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신뢰의 기준을 세우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신뢰라는 나침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나침반을 세우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