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의와 공정을 바라보는 두 시각>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은 늘 뜨거운 담론의 중심에 있다. 이 두 단어는 정치적 색깔을 막론하고 모두가 외치는 가치지만, 정작 그 구체적 의미와 실천 양상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스펙트럼 위에서 전혀 다르게 만개한다.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질서’를 말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정의와 공정의 모습, 그리고 실현경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는 때로 서로의 신념 안에서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며, 현실정치에서는 논란과 충돌의 씨앗이 되곤 한다.

진보의 시선에서 정의란 단순히 법 앞의 평등이나 형식적 동등에 머물지 않는다. 진보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주목한다. 이들은 ‘정의’를 ‘구조적 불평등의 해소’로 이해한다. 진보적 정의론은 사회가 만들어낸 격차, 계급, 차별, 불평등한 기회와 결과를 문제 삼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을 정당화한다.

진보의 공정이란 출발선과 배경이 다른 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함께 설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진보는 분배적 정의와 실질적 평등, 적극적 조치를 중시한다. 복지확대, 누진세,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이 진보의 대표 정책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다른 만큼 더 주어야 진정한 평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공정은 단순히 절차적 공정이나 기회균등이 아니라 결과의 형평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정적 배려까지 아우른다.

반면에 보수는 정의를 보다 전통적이고 자유주의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보수적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이라는 원리에 가깝다. 즉, 법 앞의 평등, 계약의 자유, 개인의 책임, 시장의 자율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보수는 기회의 평등, 즉 누구나 동일한 규칙하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 결과의 불평등 자체가 반드시 불공정하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보지 않는다. 노력, 재능, 선택, 자율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당하다고 여긴다.

보수에게 공정이란 ‘규칙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심판이 편들지 않는 것’이다. 부당한 특권이나 불법적 이익, 편법과 반칙에 대한 엄격한 배제가 보수가 말하는 공정의 핵심이다. 복지 역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넘어서는 과도한 재분배는 개인의 동기와 책임을 해치고, 사회 전체의 활력을 저해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와 보수의 정의관이 언제나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 두 진영은 상황에 따라 서로의 논리를 차용하거나, 기존 입장을 수정하기도 한다.

무상급식 논쟁만 해도 그렇다. 진보는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 보편적 평등을 내세웠고, 보수는 어렵고 취약한 계층에 한정하자는 선별적 분배를 주장했다. 여기서 진보는 ‘차별 없는 평등’이라는 평등적 정의를, 보수는 ‘필요에 따라 다르게 준다’는 분배적 정의를 각각 강조한 셈이다. 전통적 이론과 현실정치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매우 흥미로운 역전 현상이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정의ㆍ공정관은 이념적 원칙과 현실정치의 맥락, 정책의 구체적 대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된다. 또, 한국사회 특유의 집단주의, 성장주의, 유교적 전통, 경제발전 경험 등이 두 이념의 정의관에 복잡하게 영향을 미쳐왔다.

가령 보수가 강조하는 ‘기회의 평등’ 역시 사실상 우리 사회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현실을 외면할 때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진보가 추구하는 ‘결과의 평등’은 자칫 무조건적 평등주의나 무임승차 문제, 사회적 동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공정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는 ‘공정’을 결과의 형평,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정적 배려로 해석한다. 그래서 같은 규칙이라도 기존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불공정하다고 본다.

반면 보수는 ‘공정’을 오직 절차와 규칙의 일관성, 법의 엄정한 적용에서 찾는다. 선발과정의 투명성, 기회균등, 편법과 특혜의 배제, 공적 심판의 중립성이 보수가 말하는 공정의 핵심이다.

결국 진보와 보수 모두 정의와 공정을 절실히 원하지만, 그 출발점과 실현방식 그리고 구체적 정책에 적용하는 맥락은 상당히 다르다. 진보는 약자와 소수, 불평등의 구조에 주목하며 ‘실질적 평등과 형평’을, 보수는 개인의 책임, 자율, 법과 규칙의 보편성에 기초한 ‘기회의 평등과 절차적 공정’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 차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논쟁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의 근원이다.

정의와 공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은 때로는 갈등을, 때로는 상호보완을 통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천이 된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정의, 어떤 공정이 더 옳은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의ㆍ공정관이 현실 사회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때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는지, 그리고 다양한 관점이 논쟁을 통해 더 성숙한 사회적 합의로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열린 태도일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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