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2009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에 대해 검찰의 위법 수사와 자백 강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녀가 재심에서 살인 누명을 벗었다.
◆ “막걸리에 청산가리 타 4명 죽이고, 범인 몰이 위해 무고?”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벌어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이 마을에서 부녀자 4명이 막걸리를 마시다 2명이 즉사했다. 다른 2명은 막걸리를 삼키지 않고 뱉어내 중상을 입는 것으로 끝났다.
조사 결과 청산가리(염)이 막걸리에 희석된 사실이 드러났다.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AㆍB씨 부녀로 이들은 사망자 C씨의 딸과 남편이었다.
당시 수사기관은 ▲부녀가 살인 공모를 자백했으며 ▲부녀가 이웃 남성 D씨를 A씨 성폭행으로 무고했다고 주장했다. 약 15년간 치정 관계에 있던 부녀가 C씨를 살해한 뒤 ‘성폭행범으로 몰린 D씨가 앙심을 품고 C씨를 살해했다’며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딸 A씨는 존속살인, 살인, 살인미수, 무고 ▲남편 B씨는 살인, 살인미수였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2010년 2월 부녀의 살인 및 살인미수를 무죄로 인정했다(2009고합153). 재판부는 유일하게 A씨의 무고만 인정해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 항소를 받아든 광주고등법원은 2011년 11월 원심 판결을 뒤집고 검찰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는 징역 20년을, B씨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건은 이들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은 2012년 3월 부녀(A, B)의 상고를 기각하며 2심 판결은 확정됐다. A씨는 청주여자교도소에, B씨는 순천교도소에 입감했다.
◆ 재심 개시 “검찰, 악랄하게 범행 동기 꾸미고 피해자 가족 무기징역범으로 만들어”
10년이 흐른 2022년 1월 부녀는 무고 혐의를 제외한 존속살인, 살인,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사법연수원 35기)가 법률대리를 맡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등에서 재심을 맡아 범인 누명을 쓴 이들의 결백을 밝혀낸 바 있다.
광주고등법원은 2024년 1월 이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B씨 화물차의 CCTV 기록 증거(B씨가 막걸리를 사러 나갔다고 자백한 시간에 그의 화물차의 움직임이 찍히지 않은 시내 영상)의 신규성 및 명백성 ▲A씨 피의자신문 당시 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 등을 재심 사유로 내세웠다.
검찰이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으나 대법원은 2024년 9월 이를 기각해 재심이 시작됐다.
해당 재심 심문기일에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ㆍ조사관의 부녀(A, B) 심문 현장을 담은 녹화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조사관이 “신문지 조각에 싸여 검정 비닐에 담긴 청산가리를 샀다. 이게 맞지?”, “아버지가 지금 너한테 다 뒤집어씌우려고 한다. 아빠한테 넌 사건의 도구일 뿐이다. 내가 아빠라면 딸을 감싸면서 내가 했다고 했을 거다. 네가 말을 안 하더라도 조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등의 말로 A씨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날 박준영 변호사는 “정신감정 결과 A씨는 지적 능력이 평균 하 수준으로 판단되며 질문에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검찰은 A씨의 지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 자료들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B씨는 본인 주민등록번호도 모르고 한글도 쓸 줄 모르지만 수사기관이 제출해 유죄 증거가 된 자필 진술서는 오탈자 하나 없었다”며 “수사기관은 B씨가 읽을 줄도 모르는 조서를 보게 하면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을 ‘왜 그때는 이렇게 말했느냐’는 추궁을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이 머릿속으로 꾸민 시나리오를 A씨에게 강요하는 영상만 10시간이 넘는다”면서 “황망하게 가족을 잃은 사건인데 수사기관이 악랄하게 범행 동기를 꾸미고 피해자 가족들을 무기징역범으로 만들어놨다고 어처구니없어했다.”
◆ 재심 무죄…검찰 위법 수사, 공소사실 입증 실패 인정
광주고등법원 제2형사부는 2025년 10월 28일 이들 부녀(A, B)의 존속살인, 살인, 살인미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2022재노1). 그러면서 광주지방법원의 원심과 마찬가지로 A씨에게 무고죄를 인정하고 징역 8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위법 수사로 부녀의 진술을 얻어내 그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음 ▲검찰이 공소사실을 합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A씨에게 제대로 진술거부권을 설명하지 않았던 점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조사대상자의 진술내용이 자신과 제3자에게 공동으로 관련된 범죄에 관한 것이거나 제3자의 피의사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의사실에 관한 것이기도 해 그 실질이 피의자신문조서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에 수사기관은 그 진술을 듣기 전에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한다”,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형사상 자기에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자기부죄거부의 권리에 터 잡은 것이므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2가지 대법원 판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무고 대질조사 중 A씨의 존속 살인 범행에 대해 구체적 진술을 듣고 A씨를 긴급체포했다”면서 “이때 실질적으로 수사를 개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A씨에 대한 범죄인지서가 작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이 사건 범행에 구체적인 진술을 듣기 전에 A씨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서 “A씨는 적법한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채 최초의 자백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는 진술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의 존재 여부에 관하여 의심하게 할 만한 사정에 해당된다”면서 “진술거부권의 고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피고인 A의 위 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계성 지능에 해당되는 A씨가 적절한 보호자 없이 포승줄과 수갑에 묶인 채 수치스러운 질문에 시달리다 진술한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후 당심 증인(임상심리사 1급, 임상심리 및 범죄심리 전문가 자격 보유)에 따르면 A씨는 언어를 이해해서 조리 있게 자기의 생각을 설명해 내는 능력과 관련된 영역 점수는 72점으로 경계선 지능 정도로 현저히 낮다”는 점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강간 고소가 무고라는 점만으로 다른 객관적 근거 없이 A씨가 살인 사건의 범인일지 모른다는 강한 예단을 갖고 그에 관한 답변을 지속적으로 암시했고 이로 인해 피고인 A는 검사의 질문에 긍정하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면서 “위와 같은 검사의 유도신문은 A씨의 주관적 사정과 결합함으로써 피고인 A로 하여금 허위의 진술을 유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뢰관계 있는 자의 동석이 없는 상태에서 경계선 지능인인 피고인 A의 살인 범행에 대한 첫 자백 진술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자백 진술의 임의성이 다투어지는 이 사건에서 자백의 경위와 합리성 유무 등을 판단함에 있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유독 D씨에 대한 검사 피의자신문 시 대질조사에만 이모의 동석 없이 조사가 이루어진 이유와 경위에 관해 검사는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가 C씨를 죽이게 된 동기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못하자 수사관은 A씨가 B씨의 치정 관계를 언급하며 그 때문에 피고인들이 C씨를 죽인 것이 아니냐고 묻고 피고인 A로부터 이에 대해 긍정하는 취지의 답변을 얻어냈다”면서 “수사관이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한 추측에 기한 검사의 요청에 따라 피고인들 사이의 성관계에 관해 질문했던 점, 부녀 성관계가 있다는 예단, 수갑, 포승 등에 결박된 상태에서 이와 같은 진술을 하게 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A씨는 현저한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A씨의 위 진술에는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고 검사는 재심 개시 후 당심에 이르기까지 그 의심을 해소할 만한 증명을 하지 못했다”면서 “위와 같은 A씨의 진술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부녀는 검찰 수사 당시 공모가 이루어진 시기, 살인을 누가 먼저 제안한 것인지, 청산염과 막걸리를 이용한 살해 방법을 누가 먼저 제의하였는지 등에 관하여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했고 그 진술 내용은 상호 간 일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범행 계획에 따라 화물차를 몰고 순천시 소재 시장에 나가 인근 식당에서 750㎖ 막걸리 3병을 구입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식당 장부에도 범행 무렵 900㎖ 막걸리만을 납품받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면서 “막걸리를 구입했다고 주장한 일자에는 B씨의 화물차가 촬영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B씨가 최초 주장한 청산염 취득 시기인 4~5년 전에 비해) 검찰이 주장하는 ‘17년 전’은 기억의 소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크다”면서 “피고인 B의 진술이 여러 차례 변화된 경위를 함께 고려하면 R으로부터 청산염을 얻었다는 진술 자체가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도 짚었다.
재판부는 B씨가 채소밭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청산염을 구해왔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17년의 긴 시간 동안, 특히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 청산염이 위에서 본 것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일부분이나마 시안화수소와 탄산칼륨으로 분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 경우 피고인 B이 얻었다는 청산염이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인지, 피고인들이 청산염의 모양에 관하여 진술한 ‘알갱이’ 형태가 여전히 유지된 채로 보관되었을 것인지에 대하여도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에게 청산염을 줬다고 검찰이 지목한 자전거 수리점주 아들은 검찰과 원심 법정에서 ‘아버지가 자전차포에서 철을 담금질하는 용도로 청산염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아버지가 청산염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판매하는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도 전했다.
재판부는 “B씨는 살인 사건의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건 당일 주차해 놓은 차 뒤쪽에 검정색 비닐봉지에 막걸리 2병이 싸여 있어 이를 비닐봉지째 토방에 올려놓았다”면서 “이 사건 막걸리는 살인의 명백한 범행 도구인바 만약 피고인 B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면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이 막걸리를 C씨에게 건네주었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는 청산염 2스푼을 막걸리에 탔다고 진술했고 숟가락만으로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청산염의 양은 3.5g으로 추정된다”면서 “국립과학수사원의 감정서 및 사실조회 회신 결과를 종합하면 이 사건 막걸리에 실제 투여된 청산염의 양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2회에 걸쳐 담을 수 있는 양인 약 7g보다 많고 휘발된 시안화 이온의 양을 감안하면 이 사건 막걸리에는 위 11.85g을 넘는 양의 청산염이 투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A씨의 무고죄에 대해서는 “D씨에 대한 제4회 검찰 피의자신문 중 대질조사 과정에서 D씨에 대한 무고를 자백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원심판결에는 무고죄에서 형의 필요적 감면사유인 자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이 형의 필요적 감면을 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무고죄는 국가의 형사 사법 기능을 저해하고 피무고인으로 하여금 부당한 형사처분을 받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중대한 범죄로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이 사건 범행은 성폭력 범죄사실의 무고로서 피고소 내용 등에 비추어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면서 원심이 내린 징역 8개월 및 집행유예 2년 형을 유지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4일 “광주고법의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해 상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전남경찰청 역시 재수사 착수 절차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