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사건수사로 범죄를 배우지 말고 정의를 밝혀야>
“검사는 사건 수사에서 범죄를 배운다” 이 문장은 풍자일까, 경고일까. 나는 이것이 한국 사법의 권력구조가 낳은 오래된 진실을 드러내는 경고라고 본다.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까지 권한을 한 손에 쥔 조직은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혐의를 만들고 입증할지’에 관한 기술과 패턴을 누구보다 빠르게 축적한다. 문제는 그 기술이 공익과 인권을 향할 때는 전문성이 되지만, 통제와 투명성 없이 권력과 결합하면 위험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은 후자에 가까웠다. 직권의 경계를 밀어붙이고, 선택적 기소의 그림자를 키우며, ‘유죄를 만드는 절차’가 ‘진실에 이르는 절차’를 압도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었다.
피해자는 늘 존재했지만, 칼을 쥔 자 앞에서 그 피해가 제때 교정되고 보상된 경우는 드물었다. 이 구조를 방치한 채 정치적 중립성만을 주문하는 것은, 제동 장치 없는 엔진에 안전운전만 당부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2025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결실을 본 수사ㆍ기소 분리는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니라, 권력배치의 근본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검찰청을 해체하고, 수사 기능을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와 공소유지는 법무부 산하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개편은 2026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사법의 고질을 유지시켜 온 복합 엔진을 해체해 각각의 기계를 따로 점검하고 서로를 감시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변화의 정치적 배경이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처음으로 ‘재량의 불투명성’과 ‘권한의 집중’을 구조적으로 흔들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누적된 폐단을 직시하고 방향을 선회시킨 강한 정치적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오랜 관성의 뿌리를 흔드는 일은 선언과 의지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분리 자체가 자동으로 정의를 낳지는 않는다. 분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절차의 설계와 실행의 성실성이다. 무엇보다 증거개시는 전면적이어야 한다. 기록과 포렌식로그, 압수물목록, 영장집행의 세부까지 공판당사자에게 열려야 한다. 증거는 쟁점의 무기이자 권력남용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기소심사는 외부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상설적이고 구속력을 가진 기소심사위원회 없이는 ‘선택적 기소’라는 의혹이 새 간판 아래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사건배당과 지휘의 무작위성과 추적가능성 역시 핵심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사건을 배당받고 변경했는지, 그 결정의 전 과정이 디지털로그로 남아 외부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인사와 평가는 유죄율 중심의 낡은 관성을 버려야 한다. 절차적 적법성과 인권침해 ‘제로’를 최고의 성과로 재정의할 때만 조직은 올바른 방향으로 학습한다. 시민이 숫자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 또한 필수다. 기소ㆍ불기소 사유, 무죄율, 영장기각률, 증거개시 위반 건수 같은 지표가 상시 공개되고, 국회와 감사기구가 주기적으로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
새 구조가 낳을 함정도 분명하다. 수사와 기소가 갈라진 자리에 ‘사이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사건 이관이 지연되고, 기록이 누락되면 피해자는 또 한 번 절차의 골짜기에 떨어진다. 책임 떠넘기기가 구조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경과규정과 업무협약은 관례적 문서가 아니라 법적ㆍ기술적 구속력을 갖춘 운영설계여야 한다.
이관 기한과 기록 표준, 해시값과 접근 로그의 관리, 전자기록의 상호 호환기준이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위반 시 자동으로 작동하는 제재와 시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정치사건의 쏠림 또한 새로운 간판 아래에서 반복될 수 있다. 배당의 무작위화와 외부모니터링 없이는 제도는 표지만 바뀐 채 문화는 원위치로 회귀한다. 통계와 보고가 ‘꾸미기’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원자료 공개와 제3자 검증루프를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회복의 실효성이다. 절차가 잘못되었을 때 시스템이 스스로를 고치는 속도는 정의의 온도를 결정한다. 위법수사나 증거은닉이 적발되면 공판은 즉시 멈추고, 증거배제와 재조사가 자동 트리거로 작동해야 한다.
국가배상과 형사보상은 산정표를 상향ㆍ표준화해 현실적 보전을 가능케 하고, 지연이자와 방어에 소요된 비용도 포함해야 한다. 조직의 책임을 넘어 개인의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중대한 위법에 대해선 징계와 형사책임을 엄정히 묻고, 국가가 먼저 배상했다면 구상권을 실제로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권한행사에 신중함이 깃든다.
피해자보호와 접근성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고소ㆍ고발 창구의 단일화와 진행상황의 실시간통지, 이의신청 및 재심청구의 절차안내가 표준화되어야 한다. 디지털포렌식과 증거보관의 전 과정 녹음ㆍ녹화 및 로그보존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새 질서가 일상으로 뿌리내리려면 문화의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기록주의와 공판중심주의가 선언에 머물지 않도록 실무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정확히, 더 투명하게’가 현장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유죄율과 중형이 아닌 위법절차 ‘0건’, 무죄원인 분석의 반영, 피해자 만족도, 증거개시의 완결성 같은 지표로 조직을 평가하고 보상해야 한다. 순환보직을 확대해 폐쇄적 관행을 완화하고, 내부고발자보호를 강화해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팩트와 데이터 위에서 작동하도록 공공데이터의 개방성을 높이고, 허위정보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의 설명책임을 정례화해야 한다.
이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하나의 원칙이 놓여 있다. 선의에 기대지 말고 설계로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과 ‘개인의 양심’이라는 추상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권력은 늘 유인을 따른다. 승진과 평판, 조직의 명예라는 보상구조가 위법을 억제할 때, 제도는 비로소 작동한다. 수사ㆍ기소 분리는 그러한 의미에서 검찰개혁의 불가역적 출발이다. 권한의 분산은 남용의 유인을 약화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며, 일단 사회가 그 체계를 경험하면 과거로의 회귀비용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다만 출발이 불가역적이라고 해서 과정이 저절로 성공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위법령과 시행규칙, 내부지침, 예산과 인사라는 ‘보이지 않는 나사’가 어디로 조여지느냐에 따라 분리는 실질이 되기도 껍데기가 되기도 한다.
정의는 감정의 외침만으로 오지 않는다. 절차의 설계, 데이터의 공개, 책임의 개인화라는 세 개의 다리가 동시에 서야 비로소 건널 수 있는 강이다. “검사는 사건수사에서 범죄를 배운다”는 냉소가 통찰로 남으려면, 이제 국가는 재판을 통하여 정의를 배워야 한다.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절차의 기술로 승부하는 나라. 수사ㆍ기소 분리로 여는 이 변혁은 그 길의 출발점이다. 남은 것은 의지의 일관성과 설계의 정교함, 그리고 시민의 끈질긴 감시다. 그 세 가지가 함께 움직일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넘어설 수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