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엔트로피 근절을 위한 디지털거버넌스 구축전략>
문명이 무너지는 방식은 종종 조용하다. 질서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예측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며, 제도가 사건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물리학에서 출발한 엔트로피의 개념은 바로 그 무질서의 일방향 흐름을 가리킨다.
제레미 리프킨이 산업문명의 구조적 한계를 엔트로피로 설파했다면, 오늘 우리의 전장은 사이버공간이다. 필자가 명명한 ‘사이버엔트로피’는 디지털문명에서 법질서가 겪는 무질서의 상승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그리고 사이버형법학은 이 개념을 공허한 은유가 아니라, 규범과 절차, 집행과 거버넌스의 실천적 설계로 번역해야 할 책무를 갖는다.
사이버엔트로피의 핵심은 집행가능성의 붕괴이다. 사이버범죄ㆍ사이버불법행위ㆍ사이버일탈행위가 결합하면서 동일한 인력과 예산으로는 과거만큼의 억지력을 내기 어려워진다. 익명성과 암호화, 분산네트워크, 자동화된 공격과 유통은 탐지ㆍ귀속ㆍ차단의 비용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불법촬영물과 같은 불법콘텐츠는 삭제되어도 미러링과 재업로드를 통해 되살아나고, 랜섬웨어의 피해는 대응 주기를 앞지르는 속도로 확산된다. 데이터는 국경을 넘지만, 영장은 경계에서 멈추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주의를 끄는 것일수록 더 널리 퍼뜨린다. 이 불일치가 바로 사이버엔트로피의 상승이며, 형사정책적 언어로 번역하면 “법적 예측가능성, 책임귀속, 증거확보, 관할집행의 성공 확률 등이 체계적으로 낮아지는 상태”다.
사이버형법학의 관점에서 사이버엔트로피는 구성요건과 책임귀속의 경계를 시험한다. 자동화와 분산구조 속에서 고의와 과실의 판단은 더 미세해지고, 공동정범과 방조의 선이 희미해진다.
플랫폼이 위법콘텐츠의 유통을 예견ㆍ회피할 수 있었는가, 주의의무를 다했는가, 알고리즘의 설계가 위험을 증폭했는가 등과 같은 질문은 전통적 형법의 범주를 넘어선다. 과잉금지와 명확성의 원칙은 여전히 우리의 나침반이지만, 신종유형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기술중립적이되 위험기반요소를 반영한 구성요건의 설계가 필요하다. 대량화ㆍ자동화ㆍ익명화ㆍ수익화 같은 요소는 가중사유로 적절히 반영될 수 있고, 반복·재유통의 계수 자체가 불법성의 사회적 해악을 증대시키는 사정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형사절차법 영역에서는 전자정보 압수ㆍ수색의 특정성과 비례성이 관건이다. 저장매체 전체의 이미징과 포렌식 탐색은 범위를 좁히기 어렵다는 기술적 사정이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검색대상의 시간ㆍ키워드ㆍ파일유형을 구체화하고, 피압수자 참여권과 사후통지를 실질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원격검증ㆍ클라우드 데이터접근과 같은 신기술 수사는 영장주의 코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절차적 통제를 받아야 하며, 무결성 사슬과 메타데이터 보존에 관한 표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과 독수독과론의 적용 역시 디지털 맥락에서 정교하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은 단지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가 아니라 디지털증거의 신뢰성과 재판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사이버엔트로피를 낮추는 도구라는 점에서 기능적 가치도 갖는다.
‘표현의 자유’와의 균형은 언제나 긴장선 위에 있다. 사이버일탈의 모든 행태를 형사처벌로 끌어올 수는 없고 끌어와서도 안 된다. 허위정보나 혐오표현 영역에서는 과잉금지ㆍ명확성의 심사가 특히 엄격해야 하며, 가능한 한 비형벌적 수단을 우선해야 한다.
다만 불법촬영물, 아동ㆍ청소년 성착취물, 중대한 개인정보유출과 같은 명백한 위법 콘텐츠는 신속 삭제ㆍ비노출의무와 재업로드 차단을 결합한 강한 방식을 요구한다. 이때에도 사전검열 금지와 사후적 사법통제, 이의제기 절차의 실효성은 반드시 담보되어야 한다. 기본권간 충돌을 균형있게 조정하면서도 고해악ㆍ고확산 유형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표준화된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사이버엔트로피를 낮추는 첫 번째 축이다.
국경을 가르는 관할권 문제는 두 번째 축이다. 데이터는 구름처럼 흘러다니지만, 우리의 형사사법은 여전히 국경에 기대고 있다. 전통적 상호법률원조 절차만으로는 전자증거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전자증거 직접 접근과 신속보존 절차를 도입ㆍ정비하는 다자협력틀, 양자협정의 표준화, 서비스제공자 단일창구와 응답시간의 서비스수준협약(SLA)을 법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외 데이터접근에서 충돌하는 국내외 개인정보ㆍ통신비밀 규범을 정합화하고, 긴급 상황에서의 접근기준, 가령 중대범죄의 범위, 사후통지, 사법적 사후심사 등을 국제적으로 정렬하는 것도 필수다. 관할권의 불일치로 인한 지연과 실패를 줄이는 것이 곧 사이버엔트로피를 낮추는 효과로 직결된다. 최근 70여 국가가 가입한 UN사이버범죄협약에의 가입이 적극 요망된다.
세 번째 축은 플랫폼거버넌스다. 오늘날 유통의 허브는 플랫폼이고 확산의 가속기는 알고리즘이다. 플랫폼의 형사적 주의의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추상적 ‘선의의 노력’이 아니라 특정되고 검증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다. 불법신고 접수부터 처리까지의 평균시간, 재업로드 차단률, 정책집행의 일관성, 관련 로그의 보존과 열람협력, 위험평가의 주기와 범위 등 지표들을 법률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정기적 투명성 보고를 의무화해야 한다.
방조책임의 인정범위는 ‘예견가능, 회피가능, 비용대비효과’의 3요소 테스트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알고리즘 감사의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와 독립감독의 권한과 전문성도 보완되어야 한다.
사이버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한 전략이 단속의 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형벌은 마지막 수단이고, 실효성은 생태적 조합에서 나온다. 해시ㆍ지문ㆍ워터마킹 기술을 활용한 재유통 차단, 그래프분석을 통한 유통허브의 선제적 차단, 공격의 서비스화에 대응하는 방어의 서비스화, 교육과 설계단계에서의 안전가드레일 등 모든 기술요소가 규범ㆍ절차ㆍ국제공조와 결합할 때 비로소 효과가 발현된다.
피해자중심의 회복시스템, 가령 신속삭제, 비노출, 2차피해 차단, 배상과 구조 등을 제도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형사정책의 성공은 억지와 회복이 함께 돌아갈 때 완성된다.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무엇을 관리하는지를 결정한다. 사이버엔트로피 역시 지표로 관리되어야 한다. 사건에서 검거와 기소로 이어지는 전환율의 낙차, 전자증거 확보 성공률과 처리지연, 국제공조 요청과 응답의 리드타임, 불법콘텐츠의 재업로드 계수와 플랫폼별 삭제소요시간, 랜섬웨어의 평균복구시간과 비용 등이 지표를 정례적으로 공표하는 사이버엔트로피 대시보드는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기관과 기업 책임을 투명하게 만든다.
요컨대 사이버엔트로피라는 이름을 채택하는 일은 수사학이 아니라 전략이다. 문제를 정확히 명명할 때만 자원이 모이고 해법이 설계된다. 리프킨이 산업문명의 엔트로피를 말했듯이 우리는 디지털문명의 엔트로피를 말해야 한다.
사이버공간의 쓰레기와 같은 콘텐츠 즉, 범죄ㆍ불법ㆍ일탈의 복합생태를 줄이는 일은 도덕의 호소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형사법의 원리와 절차를 재정립하고, 국제공조의 회로를 재배선하며, 플랫폼의 책임을 구체화하고, 기술의 안전장치를 사회적 합의로 끌어올리는 프로젝트다.
무질서의 증가는 자연법칙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사이버엔트로피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그 선택을 집단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처벌이 아니라 더 정교한 설계, 더 빠른 협력, 더 투명한 책임이다. 그 길 위에서만 디지털문명은 오래 버티는 힘을 되찾을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