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상장 사기를 노리고 허위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기사형 광고’로 보도한 경제지 신문사들이 투자 사기 피해자들에게 수천만원을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법원은 해당 기사 게재와 투자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 전기 이륜차 업체, 언론에 허위 내용 담긴 보도자료 뿌려
판결문에 따르면, 전기 이륜차 생산업체 베노디글로벌(사명 변경 전 지오모터스글로벌)은 2019년 부회장이 전기오토바이와 관련된 고유기술에 관한 기망행위로 투자금을 편취한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사는 2021년 평택 공장 문을 닫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비슷한 무렵 대표이사 A씨 역시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베노디글로벌 대표는 베노디글로벌이 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라며 허위 상장 정보를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당시 베노디글로벌은 모터 및 기업 일체형 동력전달장치에 관한 특허권 지분 50%를 취득했을 뿐, 이를 활용할 역량은 없었다. 자체 개발한 기술도 전무했다.
A씨는 회사 바지사장과 짜고 기사형 광고 홍보자료를 경제지 등에 뿌렸다. 홍보자료에는 ▲2015년 제주 국제모터스 참가 이력 ▲동남아시아 전기오토바이 공장 설립 제의 받음 ▲‘전기 이륜차 100대 공급 협약’ 등 허위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또한 보도자료에는 제목(베노디글로벌, 평택에 5천평 규모 공장 증설, 베노디글로벌 북미 시장에 전기모터 5만개 수출계약, 글로벌 시장 공략 속도 등)과 알리고자 하는 새로운 사실과 구체적 내용, 그 사실에 대한 의견 또는 평가, 베노디글로벌의 그간 활동 및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 외국시장에서의 반응과 향후 기대효과 등이 기재돼 있었다.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베노디글로벌 주식을 사들였고, B씨 등은 그 대금을 편취했다. 그 피해자 수는 500여명, 편취 금액은 170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은 결국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지난 3월 유죄를 확정했다.
◇ 법원 “사실 여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언론도 책임”
형사사건 재판은 유죄로 일단락됐으나,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분노는 허위내용이 포함된 홍보자료를 기사화한 경제지 언론사들에게 흘렀다.
투자자 정OO씨 등 3명은 유명 경제지 3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4년 11월 경제지들에게 “원고 1인당 3505만~668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2022가단5203616) 했다.
원고와 피고 쌍방이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문광섭 재판장, 강효원ㆍ김진하 판사)는 2025년 9월 19일 “제1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며 양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2024나2062616)을 유지했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이 사건의 핵심은 “경제전문 언론사인 피고들은 홍보대행사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고 비상장회사에 대한 기사를 작성해 자사 언론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여부다.
재판부는 먼저 “광고란 널리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게 알릴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체의 수단을 말한다”며 “그런데 실질은 광고이지만, 기사의 형식을 빌린 이른바 ‘기사형 광고’도 광고의 일종”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러한 기사형 광고의 구성이나 내용, 편집 등에 따라서는 일반 독자에게 ‘광고’가 아닌 ‘보도기사’로 쉽게 오인될 수 있다”며 “일반 독자는 광고를 보도기사로 알고 신문사나 인터넷신문사 등이 정보수집 능력을 토대로 보도기사 작성에 필요한 직무상 주의의무를 다해 내용을 작성한 것으로 신뢰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제6조 제3항에서 ‘신문ㆍ인터넷신문의 편집인 및 인터넷뉴스서비스의 기사배열책임자는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위와 같은 오인이나 혼동을 방지해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신문사 등이 광고주로부터 특정 상품 등을 홍보하는 내용을 전달받아 기사형 광고를 게재하는 경우에는, 독자가 광고임을 전제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해 합리적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그것이 광고임을 명확히 표시해야 하고, 보도기사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나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경제지들에게 기사형 광고의 경우 광고임을 명확히 표시할 의무 등을 위반하고, 해당 회사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가 홍보성 기사라는 데는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면서 “피고들은 종전부터 홍보대행사에 일정한 ‘대가’를 받고 홍보대행사가 요청하는 취급 상품에 대한 기사 등을 작성해 왔으며, 이 사건 기사 역시 홍보대행사로부터 제공받은 보도자료를 기초로 작성됐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각사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한 기사는 보도자료 내용 중 일부가 생략되거나 문장 구성이 다소 변경되었을 뿐 제목과 주요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어, 각 기사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피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피고들 중 어떤 언론사도 해당 회사의 관계자에게 보도자료 내용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등 취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각 기사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은 상품 또는 사업자에 대한 내용을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광고의 일종으로 판단된다”며 “그럼에도 피고들은 기사의 화면 어디에도 독자들이 광고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표시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작성기자의 이름 즉 ‘바이라인’을 기재하거나 해당 기사를 사회면에 배열하고, 피고들 회사에 저작권이 있다고 기재하는 등 보도기사로 오인할 만한 표시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실질이 광고인 기사를 게재하면서 광고임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보도기사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나 표현을 사용해서는 아니됨에도, 이와 같은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피고 경제 신문사들은 “기사의 내용이 허위 또는 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들은 충분한 조사 및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각 기사 내용에 허위 또는 과장된 내용이 포함돼 있고, 이에 대해 피고들은 사실확인 등 충분히 취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제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 경제지들은 “인터넷에 게재된 다른 신문 기사, 방송 등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기사를 작성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언론사인 피고들은 보도기사를 작성ㆍ게재할 때 그간 축적된 정보수집 능력을 토대로 자체적인 사실확인 등을 거쳐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직무상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는 보도된 사실의 내용,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는 광고임을 전혀 표시하지 않은 채, 작성기자 등 바이라인이 있거나 피고들이 기사의 저작권자임을 표시해 이를 접하는 일반 독자로서는 피고들이 보도기사 작성에 필요한 직무상 주의의무를 다해 작성한 보도기사라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추었는바, 피고들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보도기사에 준하는 정도의 사실확인 등 취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면 불법행위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런데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하기 전 보도기사에 준하는 정도의 사실확인 등 검증 과정을 거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설령 피고들이 다른 기사 등을 참고해 기사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직무상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참고했다’고 주장하는 신문 기사 등의 내용 역시 피고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홍보대행사 등으로부터 제공된 보도자료를 별다른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경제 전문 언론사인 피고들이 이 사건 기사를 각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면 포털사이트 등의 기사검색 결과에 표시되고,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된 이후 원고들과 같은 소비자 또는 투자자는 일반적으로 사업자의 홍보내용에 대해 포털사이트 기사검색을 통해 신뢰성을 확인하므로, 베노디글로벌과 같은 사업자 등은 이와 같은 소비자 등의 구매 또는 투자 선택방식 등을 고려해 홍보대행사 등을 통해 일정한 홍보비를 지급하면서 유력 언론사의 보도기사에 대한 신뢰성과 권위를 이용해 홍보하는 관행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들 역시 이와 같은 기사의 소비방식과 영향을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이 사건 기사를 전달받기 전 이미 베노디글로벌에 대한 투자 의사가 형성되는 중이었다 하더라도, 이 기사들은 베노디글로벌의 자체 홍보자료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화해 원고들이 추가 투자를 결정하거나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 기사 게재 및 공유와 그 이후 원고들의 주식 매수 사이에 인과관계가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경제신문사들의 보도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민사1부에서 최종 판단을 남겨두고 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