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승화의 정신으로 가치가 작동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우리는 세계를 묘사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무엇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지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데이터와 지표는 넘치지만, 그 숫자들이 어떤 삶을 정당화해야 하는지, 어떤 제도와 습관으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의 언어는 희미하다.

전승화 철학은 단순한 관념을 넘어, 필요한 정신문화의 이름이다. 전승화는 세계를 분절된 부품의 합으로 보지 않고, 상호의존하는 전체로 파악하며, 협력의 증폭을 통해 총합을 키우고 차이를 조율하여 조화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이것은 고전 언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도와 교육, 의례와 일상을 설계하는 현실적 기술이다. 정신문화는 관념의 장식이 아니라 삶의 깊은 층위를 움직이는 습관과 규범의 집합이고, 전승화는 그 습관을 만드는 방법론이다.

가치가 말로 남을 때 피로가 쌓인다. 평화, 상생, 인권, 공존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말이 반복될수록 공허해지는 역설이 있다. 전승화는 이런 공허를 넘어서는 경로를 제안한다. 가치는 먼저 언어로 명명되어야 한다.

나아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교육의 경험으로 체화되어야 하며, 조직과 정책의 구조 속에 내재되어야 하고, 공동체의 의례와 상징을 통해 반복되어야 한다. 그 반복은 단순한 형식의 되풀이가 아니라 현 문맥 속에서 의미를 고치는 살아있는 순환이어야 한다.

학교 수업 목표 한 줄, 지역사회와 연계된 프로젝트 하나, 매년 돌아오는 기념행사와 토론의 장, 결과를 점검하고 다음 설계를 고치는 피드백의 절차까지 모든 것이 전승화의 문법을 따른다. 요컨대 전승화는 가치가 제도와 의례, 문화와 일상으로 번역되는 통로를 여는 정신문화의 기술서다.

이 철학이 지향하는 전체 시야는 오늘의 복합 위기 속에서 더욱 절실하다. 감염병, 기후위기, 전쟁과 양극화는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얽힌 하나의 구조다. 보건은 교육과 연결되고, 환경은 경제와 맞물리며, 지역의 이해는 지구적 거버넌스와 충돌하거나 조율된다. 전체를 보지 못하면 해결은 파편이 된다.

전승화는 전체를 보는 눈을 길러 주되 추상적 총론에 머물지 않고 실행의 문법으로 내려오게 만든다. 협력은 선의의 주문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임을 인정하며, 실제로 협력의 총합을 키우는 장치 즉, 공동목표의 재정의, 상호학습의 표준, 역할과 책임의 분담, 성과의 공개와 공유를 일상 운영으로 만든다.

갈등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조율 대상이며, 조율은 즉흥적 화해가 아니라 절차와 언어, 상호신뢰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이 또한 정신문화의 영역이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 시간을 배분하는 기준, 실패를 다루는 방식 같은 보이지 않는 규범이야말로 공동체의 능력을 규정한다.

전승화가 필수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제도화의 그림자까지 계산하는 자기성찰의 구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든 제도에 들어가는 순간 경직될 위험을 안는다. 의례는 반복될수록 내용이 비어갈 수 있다.

전승화는 바로 그 위험을 알고 시작한다. 그래서 참여를 넓히고, 피드백을 제도화하며, 실패의 기록을 축적해 다음 설계의 자원으로 삼는다. 정신문화가 살아 있으려면, 자기 수정의 리듬을 갖춰야 한다. 전승화는 원리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 리듬의 이름이다.

전체를 다시 보고, 상생의 동력으로 협력을 증폭시키며, 조화의 기술로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 등 세 단계가 고정된 순서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작동할 때 가치는 실제로 움직인다.

대학과 학교, 시민사회와 공공기관은 이 철학을 시험하고 확산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현장이다. 지식은 강의실에서만 생산되지 않는다. 커리큘럼의 설계, 비학과의 경험, 지역과 세계를 잇는 교류, 정기적 성찰과 공개토론, 그리고 공동체의 기념과 축제가 겹겹이 쌓일 때 지식은 문화가 되고, 문화는 제도가 되며, 제도는 일상의 습관이 된다.

작은 설계의 누적이 큰 변화를 만든다. 선언을 더 크게 외치는 대신 오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한 줄의 문장, 한 개의 절차, 한 번의 만남을 바꾸는 것이 전승화의 길이다. 정신문화란 바로 그런 사소해 보이는 결정을 매일의 리듬으로 삼는 능력이다.

이 철학이 동서의 사상을 포괄한다는 점은 부차적 설명일 뿐 핵심은 보편적 실행가능성에 있다. 인간과 공동체, 자연과 우주는 서로 얽혀 있고, 협력은 총합을 키우며, 차이는 조율되면 힘이 된다. 이에 동의한다면 전승화는 이미 모두의 언어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언어를 운영의 문법으로 바꾸는 용기다. 말이 제도가 되고, 상징이 의례가 되며, 의례가 습관이 되는 길. 그 길은 거창한 결의가 아니라 구체적 설계에서 시작한다.

무엇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그 마땅함을 오늘 어디에 어떻게 심을 것인가. 전체를 보되 작은 것을 반복하여 갱신함으로써 가치가 작동되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