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는 왜 잔인한가>

요즘 우리는 ‘법’이 안전의 다른 말이 아니라, 피로의 다른 이름이 되어가는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경미한 실수에도 형사절차가 과열되고, 관청의 도장은 벌처럼 내리꽂히며, 1심에서 이겨도 국가는 끝까지 항소ㆍ상고로 시간을 끈다.

이 글은 분노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다. 왜 이런 관성이 생겼는지, 그 결과가 시민의 삶에 어떤 비용을 전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말하고 싶어서다. 안전과 공정을 진정으로 강화하려면, 국가의 힘이 언제 어떻게 잔인해지는지를 먼저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잔인함은 법정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친 형벌의 언어와 촘촘한 행정제재가 일상을 좁히는 동안,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칼날이 시민을 소모시킨다. 바로 “삼심제 만능”의 신앙 아래 국가가 패소하고도 끝까지 항소와 상고를 밀어붙이는 관성이다.

절차의 보장은 정의의 안전장치여야 한다. 그러나 절차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 국가는 정의를 미루는 기술자가 되고, 시민은 시간과 비용의 늪에서 지쳐 쓰러진다.

형사 영역에서 국가는 종종 엄벌을 첫 해법으로 꺼내 든다. 구속은 예외여야 하지만, 실무에선 쉽게 선택되고, 중형의 상향은 사건 직후의 정치적 의식처럼 반복된다. 그 여파는 법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행위에 형사처벌과 행정제재가 겹쳐 얹히고, 벌금 뒤에 면허정지, 기소유예 뒤에도 행정벌점이 남는다. 규정은 일관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맥락을 지워버린 채 결과만 재단한다.

자동화된 단속과 알고리즘의 고지는 신속하고 공정해 보이지만, 사정 청취의 여지는 좁고, 이의제기는 시민의 시간과 문해력을 시험한다. 형벌과 제재의 이중ㆍ삼중의 층층시루는 결국 생계와 신용, 자격과 평판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린다. 잔인함은 한 번의 처벌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불이익의 형태로 작동한다.

여기에 “삼심제 만능사상”이 기름을 붓는다. 법은 세 번의 판단 기회를 보장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건에서 국가의 끝장 소송을 정당화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행정기관과 검찰은 1심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정책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동적으로 항소 버튼을 누르기 일쑤다.

상고심은 법리 통일의 법원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사실심에 가까운 다툼이 쏟아지고, 국가는 무제한의 인력과 예산으로 버틴다.

반면 시민은 변호사 비용과 자료 제출, 출석과 대기의 시간을 개인의 삶에서 떼어낸다. 결국 판결문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제재가 된다. 이른바 “소송 그 자체가 형벌”이 되는 사회 즉, 국가가 패소했음에도 항소ㆍ상고로 버티는 순간, 정의는 결과가 아니라 지연으로 변질된다.

이 관성은 왜 고쳐지지 않는가.

첫째, 국가의 소송은 ‘내 돈’이 아니기에 비용 민감성이 약하다. 패소의 사회적 비용은 세금으로 희석되고, 조직 내 책임은 분산된다. 둘째, 성과지표는 오히려 “끝까지 다퉜다”를 충성의 신호로 읽는다. 셋째, 사과와 시정보다 “판결의 확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 당장의 리스크관리에 유리하다고 믿는다.

그 사이, 판결 이행은 지연되고, 집행정지 신청은 일상화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법을 지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법의 결론을 미루는 이중의 메시지를 보낸다. 시민은 법이 강한 자에게 느린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덜 잔인해지는 길은 절차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절차를 본래의 목적에 맞게 되돌려놓는 데 있다. 형사 영역에서는 범죄화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중독, 빈곤, 청소년 문제를 형벌이 아닌 치료ㆍ복지ㆍ교육의 트랙으로 전환하고, 구속의 예외성을 회복해야 한다.

행정제재는 신속함보다 정당함을 우선해야 한다. 사전 통지와 의견 청취를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 보장하고, 비례의 원칙을 실질화해 능력에 따른 벌금제, 단계적 계도와 제재, 영업정지 대신 개선명령과 과징금 같은 대체수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자동화 제재의 기준과 오류시 정정 절차를 투명하게 열어두는 것도 기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소송 습관을 바꿔야 한다. 항소와 상고는 권리가 아니라 책무다. 공공기관 내부에 독립적 항소심사위원회를 두어 패소 이후의 불복이 공익과 법리 통일에 필요한지 시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초래하지 않는지 선별해야 한다.

명백한 사실ㆍ법리 오판이 없는 사건은 1심 또는 2심에서 종결하도록 유도하고, 불복시에는 지휘책임자의 서면 사유공개와 외부 점검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상고심은 진정한 법리심으로 남게 하는 문턱을 분명히 하고, 국가의 무분별한 불복에는 패소비용의 강화, 지연이자와 지체상금, 심지어 조직의 인사평가와 연동된 불이익까지 제도화해야 한다.

반대로 조정과 화해, 조기 이행을 선택한 공무원에게는 책임을 묻기보다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시민에게는 집단소송과 공익소송의 비용지원, 판결 이행지연에 대한 즉각적 제재와 이행강제 장치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시간의 무기가 더 이상 국가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다.

국가는 왜 잔인한가. 강한 주먹과 무거운 도장, 그리고 끝없는 항소라는 세 가지 습관 때문이다. 우리는 안전과 공정을 원한다. 그러나 안전은 형량의 높이에서 나오지 않고, 공정은 제재의 속도에서 오지 않는다. 안전은 예방과 회복의 두께에서, 공정은 절차가 사람을 위한 도구로 머무를 때 태어난다. “세 번 다퉜다”는 기록이 아니라 “한 번에 바로잡았다”는 신뢰가 국가의 품질을 말해준다.

잔인함의 반대는 관용이 아니라 책임있는 절차다. 국가는 질 수 있다. 다만 졌을 때는 빨리 사과하고, 바로 고치고, 즉시 이행해야 한다. 그 간단한 문장이 지켜지는 날, 우리는 비로소 법 앞에서 지치지 않는 시민이 된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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