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권보장, 객관적 기준 필요>
구속영장 청구에 대하여 “피의자의 방어권보장을 위해 영장을 기각한다”는 결정은 이제 낯설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어권이라는 말에 변호인 조력, 접견, 기록열람ㆍ등사, 디지털포렌식 대응, 방어 준비의 시간과 수단 등이 모두 담기다 보니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흐려지고 판단의 객관성도 약해진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전제는 분명하지만,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필요성ㆍ상당성 등과 같이 해석의 여지가 큰 기준이 실제로는 지나치게 넓은 재량을 허용한다. 여기에 수사기록접근 제한, 신속 결정 요구 압박, 폭증하는 디지털증거, 그리고 인간이 갖는 인지 편향이 겹치면 유사한 사건임에도 재판부나 지역, 시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객관성이 흔들린다는 지적은 그래서 타당하다.
방어권보장을 말하려면 정확히 무엇을 지금 왜 확보해야 하는지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압수된 전자기록이 방대해 포렌식 로그를 검토하고 반박자료를 제출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현 단계의 구속은 과도하다는 식의 연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구체성이 빠지는 순간 결정은 설득력을 잃고 사건당사자와 대중의 신뢰도 함께 떨어진다.
왜곡을 줄이려면 먼저 정보의 비대칭을 완화해야 한다. 영장단계에서 압수물목록, 포렌식범위와 로그 같은 기본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증거인멸 우려는 쉽게 과장된다. 디지털포렌식 절차도 투명해야 한다. 이미지 추출과 해시값 기록, 검색 범위 사전설정, 전과정로깅과 도구설정공개, 방어측의 참관 또는 동등한 열람기회가 보장될 때 비로소 범위를 벗어난 탐색을 가려낼 수 있다. 신속한 결정을 요구받더라도 신속이 졸속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판단의 토대를 단단하게 만들려면 구조화된 기준과 충실한 이유 설시가 필수다.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를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불구속 대체 수단을 왜 채택하거나 배제했는지, 방어준비에 어떤 시간이 왜 필요한지를 결정서에 분명히 적어야 한다.
공보용 요약은 비식별화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열람하는 결정서는 충분히 구체적이어야 한다. 사후통제도 살아 있어야 한다. 구속적부심과 보석심리는 지연없이 진행되고 영장결정 이유를 적시에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ㆍ재판부별 구속률, 대체수단 사용률, 이유 설시 충실도 같은 비식별 통계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면 제도는 스스로 교정해 간다. 인지편향과 위험평가에 관한 교육, 내부 동료검토 같은 품질관리 역시 재량을 약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재량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장치다.
입법은 이 모든 것을 작동시키는 마지막 퍼즐이다.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작동 규칙이 필요하다. 수사단계 증거개시의 범위와 시기, 위반 시 제재, 변호인 접견ㆍ참여의 기록의무, 포렌식의 로깅ㆍ참관권ㆍ범위통제, 구속결정의 이유설시와 대체수단 검토, 전면녹음ㆍ녹화와 위반제재, 위법수집증거배제와 신속한 구제절차까지 세부내용을 법과 규칙에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재량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 판단의 질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방어권보장’이라는 말 한마디가 아니다. 그 말을 움직이게 하는 기준과 이유, 기록과 공개인 것이다. 체크리스트와 로그, 구체적 이유설시와 공개통계가 자리잡을 때, 같은 사건을 어디서 누가 보든 결론은 더 가까워진다. 예측가능성은 곧 신뢰이고, 신뢰는 디테일에서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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