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올해부터 판결서(판결문) 방문 열람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이 판결서 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대외적 입장에 역행하는 행보다.

법원행정처가 있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있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23일 배포한 ‘2025 사법연감’ 등에 이 같은 사실이 나타났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재판절차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해 사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2013년부터 판결서 등 재판과 관련된 정보 공개를 점차 확대하고 국민이 이용하기 편리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고 밝혔다.

판결서 공개 확대는 시민의 사법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이재명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하나다.

조희대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원장

법원 역시 판결서 공개 확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2024년 8월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제32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사법부는 판결서 공개 개선을 위해 공개 범위 확대 및 공개 방식을 논의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지난 9월 12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논의된 안건 중 하급심 판결서 공개 확대에 의견을 공감했다. 이 자리에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전국의 각급 법원장 등 총 42명이 참석했다. 

대법원은 “다수의 판사들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하급심 판결서 공개 확대 방안에 대해 원칙적인 찬성 의견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 문제, 판결 정보의 상업적 이용, 법관 성향 분석이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악용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역시 판결문 공개 범위와 공개 방식 개선 방안에 대해 내부 의견을 청취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미지 = 2025 사법연감
이미지 = 2025 사법연감

그러나 이 같은 대외 공표와는 달리, 법원은 최근 판결문 열람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법원행정처는 ‘판결문 검색ㆍ열람을 위한 특별 창구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내규(대법원 내규 574호)’ 3조 개정안을 2024년 11월 행정예고했다. 비실명 처리되지 않은 판결서를 방문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줄이는 내용이다.

기존 조항에 따르면 ▲검사ㆍ검찰공무원ㆍ변호사ㆍ법무사ㆍ사법연수생ㆍ대학교수 ▲국가기관ㆍ연구기관ㆍ시민단체의 임ㆍ직원으로서 소속 기관장 또는 단체장의 의뢰로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얻은 사람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어 법원도서관장의 승인을 얻은 사람은 법원도서관의 판결정보특별열람실에서 판결서를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인 새 조항은 이 중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연구기관ㆍ시민단체의 임ㆍ직원 ▲사법연수생의 방문 열람 권한을 삭제했다. 대신 ▲공무원ㆍ공공기관 임직원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또는 방송법에 따라 허가ㆍ승인을 얻거나 등록을 마친 언론사 소속 기자를 열람권자로 신규 등재했다.

이로써 교수나 공무원, 언론인이 아닌 일반인이나 학자 등이 비실명 처리되지 않은 판결서를 열람할 권한은 전면 막혔다. 

법원의 폐쇄적인 조치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 및 학문 연구의 자유, 독립 언론 등의 사법부 공공 감시 기능이 저해될 우려가 제기된다.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이 내규를 바꾼 이유는 ▲개인정보 유출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점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점 ▲판결서(비실명) 인터넷 열람 서비스가 정착된 점으로 나타났다.

판결문 검색ㆍ열람을 위한 특별창구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내규 일부개정내규안 / 출처 = 법원
판결문 검색ㆍ열람을 위한 특별창구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내규 일부개정내규안 / 출처 = 법원

현재 판결서 열람은 극히 까다롭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문 열람이 가능한 법원도서관은 전국에 단 한 곳뿐이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열람 시간이 제한되며 사건번호 외에는 메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인터넷 열람 시스템의 경우 비실명화 절차로 인해 신청부터 열람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름과 법인명이 모두 알파벳으로 대체돼 키워드 검색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확인 가능한 판결문은 2013년부터 확정된 형사사건과 2015년부터 확정된 민사ㆍ행정ㆍ특허사건, 2023년부터 선고된 민사ㆍ행정ㆍ특허사건 미확정 판결문뿐이다.

대법원
대법원

최근 이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박지환 변호사,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시각장애가 있는 송민섭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대법원 내규 574호가 헌법 21조에 반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해당 내규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천명한 헌법 109조에 반한다는 취지다. 해당 헌법소원은 지난 8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2020년 인터넷 판결문 열람 시 비실명 처리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고, 수수료를 내야 하고, 사건번호를 입력해야만 하는 점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한 헌법소원(2020헌마1064)은 각하된 바 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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