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경기도 이천에 공장을 둔 SK하이닉스의 미국 특허 사용료가 과세 대상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특허기술이 국내에서 사용됐다면 그 대가인 사용료 소득은 국내 원천소득에 해당돼 과세 대상이라는 판단이다.

이로써 국제 협약을 속지주의에 입각해 해석해왔던 대법원의 종전 판례 입장이 33년 만에 변경됐다.

CI=SK하이닉스
CI=SK하이닉스

시작은 2011년 SK하이닉스가 미국 특허관리회사인 A사로부터 받아든 특허침해 소장이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A사와 미국에 등록된 40개 특허권에 관해 사용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종료하고, 지역적 범위를 ‘전 세계’로 하는 라이선스를 받는 내용으로 특허권 라이선스 및 화해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 SK하이닉스는 A사에게 160만 달러의 사용료를 냈다. 

당시 경기도 이천세무서는 국내 고정사업장이 없는 A사 대신 SK하이닉스에 해당 사용료에 대한 법인세를 원천징수했다.

SK하이닉스는 이 사용료가 국외에 등록됐으나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사용대가로서 원천징수 대상이 되는 국내 원천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로 2015년 6월 이천세무서에 우너천징수분 법인세의 환급을 구하는 경정청구를 했다.

이천세무서는 2019년 5월 SK하이닉스의 경정청구를 거부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문제의 특허가 ‘국내 미등록 특허권’이므로 국세청의 과세권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경정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소송의 쟁점은 한미조세협약 14조 4항 A호에 기재된 ‘특허의 사용’에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사용이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한미조세조약은 특허의 사용 대가로 지급되는 사용료 소득 원천은 해당 특허 사용지로 정하고 있다.

한미조세조약에 대해 1992년 대법원 판례(91누6887)는 속지주의(사건이 벌어진 지역의 법을 따른다는 원칙)를 채택했다. ‘특허의 사용’ 문언을 ‘특허 등록국 내에서의 사용’으로 좁게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국내 미등록(해외 등록) 특허의 경우, 국내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봤다. 앞서 1, 2심은 종전 대법원 판례에 입각해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권영준 대법관)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월 18일 SK하이닉스가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에 대한 원천소득세 징수에 불복해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대법원 2021두59908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특허기술이 국내에서 사용됐다면 그 대가인 사용료소득은 국내 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허 기술의 ‘실사용’을 심리하지 않은 원심에 대해 법리 오인을 지적했다. 특허 기술이 국내 제조ㆍ판매에 사실상 쓰였다면, 국내 미등록 특허라고 해서 곧바로 국내 원천소득이 아니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특허권 속지주의에 기초해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이나 그 사용대가 지급을 관념할 수 없다는 관점은 타당하지 않고, 이러한 관점에 기초한 종전 판례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전원합의체는 “특허권 속지주의에 기초해 한미조세협약 제6조 제3항, 제14조 제4항의 특허의 ‘사용’의 의미를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는 국가 내에서의 실시’로 해석하면서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을 관념할 수 없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결 등은 모두 변경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1992년 판결 이후 2022년 2월 판결까지 판례를 유지해 왔으나, 이날로 33년만에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이 사건 사용료가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대상인 특허기술을 국내에서의 제조ㆍ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하는 데에 대한 대가라면 이는 구 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 후문, 한미조세협약 제6조 제3항, 제14조 제4항에 따라 국내 사용에 대한 사용료로서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런데도 원심은 해당 사용료가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허기술이 국내에서의 제조ㆍ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은 채 곧바로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한미조세협약상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의 국내원천소득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따라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 중 다수 의견(조희대ㆍ오경미ㆍ오석준ㆍ서경환ㆍ권영준ㆍ엄상필ㆍ신숙희ㆍ노경필ㆍ박영재ㆍ마용주 대법관)은 계약 문언과 거래 현실, 특허법 목적을 고려할 때 특허 기술의 실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단했다.

반면 노태악ㆍ이흥구ㆍ이숙연 대법관은 속지주의를 고수하며 반대 의견을 냈다. 문언ㆍ체결 경위ㆍ당사자 의사에 비추어 종전 판례가 타당하며, 판례 변경 시 사용료 소득 안분의 어려움이 생긴다는 취지다.

찬성 측 중 권영준ㆍ노경필 대법관은 체약국법 원칙보다 협약 체결 당시 당사자 간 합의에 충실해야 한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반면 반대 측 노태악 대법관은 국내 실사용분만 골라내 원천징수하는 것이 고도의 증명을 요구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충 의견을 덧붙였다.

국세청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 “현재 진행 중인 불복 등이 4조원을 넘는데, 판례가 바뀌지 않았다면 국부가 유출됐을 것”이라면서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국내 과세권을 확보하면서 국가 재정 확충이라는 국세청의 근본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 의사를 전했다.

[로리더 최서영 기자 cs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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