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의적 재판을 막기 위한 법왜곡죄 입법 필수>

이른바 ‘법왜곡죄’ 논쟁의 핵심은 간단하다.

법관의 자의적 판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재판은 사람의 자유와 재산, 사회의 규범을 좌우한다. 법관이 고의로 법을 비틀거나 근거 없이 판단하면 피해는 한 사건을 넘어 사법 신뢰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렇다고 모든 판결 실수를 형사처벌로 다룰 수는 없다. 다양한 해석은 법의 자연스러운 영역이고, 합리적 오판까지 범죄로 보면 재판은 위축되고 창의도 사라진다.

결론은 분명하다. 고의적이고 명백한 일탈만 형사로 단호히 막고, 재판의 독립과 해석의 자유는 두텁게 지켜야 한다.

해외 사례는 이 균형점을 보여준다. 독일과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두 나라 모두 “자의적 판결금지” 원칙을 분명히 하되, 적용기준을 아주 높게 잡아 남용을 막는다.

독일 형법 §339는 법관 등 사법 담당자가 사건 처리과정에서 법을 ‘왜곡’하면 법왜곡죄(Rechtsbeugung)로 처벌한다. 독일 형법상 법왜곡죄는 법관, 그 밖의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사건을 주재하거나 결정함에 있어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에 성립하는 중죄이다.

법왜곡 행위는 사건을 허위로 조작하는 경우,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 경우, 재량권을 남용하는 경우, 진실규명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허용되지 아니하는 처분을 명하는 경우 등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누가 봐도 뚜렷한 법 위반이어야 하고, 그 위법성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고의가 증명돼야 한다.

스페인은 Prevaricación(부당결정죄)로 같은 문제를 다룬다. 행정공무원의 부당결정은 형법 제404조, 법관의 부당한 판결ㆍ결정ㆍ명령은 제446~449조다. 공통요건은 “a sabiendas”, 즉 부당함을 ‘알고도’ 내렸다는 고의다. 부당함도 ‘명백’해야 한다.

형사사건의 부당판결은 더 무겁게 처벌할 수 있고, 자격정지와 금고형이 함께 선고될 수 있다. 실제 유죄는 드물며, 대체로 뇌물ㆍ청탁 등 부패가 있거나 절차ㆍ증거를 의도적으로 빼거나 조작한 경우에 한정된다. 판결 내용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 두 입법례를 분석하면 무엇보다 구성요건은 좁고 높아야 한다. 조문에는 ‘합리적 해석 범위를 현저히 벗어난 중대한 일탈’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분명히 적고, 그 일탈이 고의였다는 점, 즉 위법성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결과를 만들었다는 주관적 요소를 함께 요건으로 해야 한다. 과실이나 중과실은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에서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어떤 행위가 대상이 되는지도 정밀하게 한정해야 한다. 영장발부, 기소ㆍ불기소, 공소유지, 판결ㆍ결정처럼 직접 법적 효과를 낳는 핵심 판단에 집중하고, 내부의견서나 보조업무처럼 재량이 넓고 공개검증이 어려운 영역은 원칙적으로 제외해야 재판실무가 위축되지 않는다.

남용을 막을 절차적 장치도 필수다. 고의와 명백성을 먼저 가려보는 독립적 사전심사나 기소 허가절차를 두어 단순한 패소ㆍ불만이 형사고발로 난발되는 일을 차단해야 한다. 무분별한 고발에 비용과 책임을 부과하는 장치도 억제력을 높인다. 형벌의 설계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자격정지 등 직무관련 제재를 중심에 두고, 뇌물ㆍ청탁 같은 부패가 결합했거나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자유형을 가중하는 편이 적절하다. 형량은 실제 입증가능한 피해와 비례해야 하며, 상징적 중형 경쟁은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제수단의 역할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류는 원칙적으로 항소와 재심으로 고치고, 법관ㆍ검사에 대한 징계로 보완한다. 형사처벌은 그 모든 장치를 적용한 뒤 최후의 그물이어야 한다. 이 순서가 반드시 지켜질 때 형사절차는 정치와 여론의 전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출발점은 하나다. 법관의 자의적 판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자의는 법의 얼굴을 한 권력 남용이다. 결과를 먼저 정해 놓고 논리를 끌어다 붙이는 순간 법은 방패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그래서 법왜곡죄가 필요하지만 그 칼날은 정교해야 한다. 너무 무디면 자의를 못 자르고, 너무 휘두르면 정상적 재판을 해친다.

독일과 스페인의 해법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고의와 명백성의 문턱을 높게 세우고, 적용은 예외적으로 하며, 부패에는 단호히 대응하고 절차적 필터로 남용의 문을 닫는 것이다.

무엇보다 항소와 징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공정은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법을 왜곡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법을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자유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자의적 판결을 단호히 막되 재판의 자유를 지키는 것, 그것이 공정과 독립을 함께 세우는 길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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