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증권회사에서 위험성이 높은 투자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원금 회수 등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함에도 이런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은 불법행위로 판단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KB증권 직원은 2019년 4월 A사에 신탁상품의 안내서와 상품설명서를 제시하며 신탁상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DLS(파생결합상품)를 운용하는 내용의 특정금전신탁계약을 체결했다. 투자금은 10억원이었다.
KB증권의 직원은 2019년 3월 B사 임원에게 신탁상품에 대한 제안서와 함께 안정성이 확보된 상품을 선별해서 제안하는 메일을 발송한 뒤, 직접 방문에 신탁상품을 소개했다. 이후 DLS(파생결합상품)를 운용하는 내용의 특정금전신탁계약을 체결했다. 투자금은 5억원이었다.
KB증권은 2020년 3월 투자자들에게 코로나에 따른 무역환경 악화를 들며 무역금융 채무자들의 대금회수도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로 2020년 4월 예정된 DLS의 만기를 3개월 연장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KB증권은 2020년 7월에는 이 신탁상품 투자자들에게 단계적 청산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안내했다. 결국 2021년 11월 KB증권은 A사에게 2억 4304만원을, B사에게 1억 1957만원을 상환했다.
금융감독원은 2025년 4월 “KB증권은 상품설명서에 보험으로 인해 투자원금이 보장되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하고 있음에도, 면책조항 등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거나 지연될 수 있는 가능성과 보험을 지급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등을 명시적으로 알리는 내용을 누락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KB증권에 제재조치를 했다.
원고들은 “KB증권 직원이 신탁상품의 안전성만 강조했을 뿐, 위험성을 설명한 사실이 없다. 이로 인해 계약 당시 위험성이나 투자내용에 관해 정확한 인식을 형성하지 못했고, 투자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오인한 상태에서 KB증권과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이는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해당하므로 각 신탁계약을 모두 취소하고,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으로서 미회수된 투자원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KB증권은 “원고들은 이 신탁상품의 주요 내용과 핵심 투자위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했고, 원금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이 주장하는 착오의 내용이 분명하게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KB증권은 “원고들은 공격ㆍ적극투자형 투자자로서 신탁계약 체결 당시 원금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신탁상품의 구조와 위험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피고와의 신탁계약을 체결했다”며 “따라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신탁상품의 위험을 설명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런데 KB증권이 작성한 신탁상품 설명서에는 ①신탁상품의 위험등급이 ‘고위험’으로, ②원금 보장 여부가 ‘비보장’으로, ③최대이익액이 연 4.40%, 최대손실액이 –100%으로 기재돼 있고, ④신탁상품에 내재하는 위험요인으로서 ‘기초자산의 가격이 투자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 투자자는 예상치 못한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될 수 있다’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강조돼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박정길 부장판사)는 지난 7월 23일 KB증권이 판매한 신탁계약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다만 투자자에게도 20~30%의 자기책임 부담을 지웠다.
재판부는 “각 신탁계약은 KB증권이 원고들에게 원금 보장 여부에 관한 설명을 사실과 다르게 해 원고들이 법률행위의 중요부분에 해당하는 원금 보장 여부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착오에 빠진 상태에서 체결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착오를 이유로 각 신탁계약을 취소하는 원고들의 의사표시가 기재된 소장이 2022년 11월 피고에게 도달했으므로 각 신탁계약은 취소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펀드의 원금이 보장되는지 여부는 신탁상품 투자자의 원금 회수 가능성을 결정하는 법률행위의 중요한 내용”이라며 “원고들은 KB증권의 직원에게 신탁상품의 투자원금 보장 여부에 대한 확인을 반복적으로 구했고, KB증권은 원고들에게 신탁상품이 위와 같은 이례적인 경우가 아닌 한 투자원금을 보장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각 신탁계약의 중요한 내용인 투자원금 보장 여부를 오인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KB증권은 이 신탁상품을 ‘2등급 고위험’ 상품으로 책정돼 있고, 상품설명서 등에 ‘원금 비보장’ 문구가 존재하며, 원고들이 KB증권에게 원금 보장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신탁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고 답변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원고들이 이 신탁상품이 원금 비보장형 상품임을 알고, 원금 손실의 감수할 의사로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KB증권 직원의 설명에 따라 신탁상품 설명서나 안내자료 등에 존재하는 ‘원금 비보장’ 문구가 보험사의 부도가 발생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의미할 뿐이므로 이 신탁상품을 사실상 원금보장이 되는 상품으로 이해했다”며 “이러한 경위로 원고들은 신탁상품의 주요내용을 이해했다고 기재했으나, 이 신탁상품에 대한 원고들의 이해는 처음부터 KB증권의 그릇된 설명과 자료를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각 신탁계약은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를 이유로 취소됐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투자원금 상당액의 부당이득의 반환으로 KB증권은 원고 A에게 10억원, B에게 5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KB증권은 각 신탁계약 체결일로부터 3~4일이 경과해 보조참가인(NH투자증권)과 DLS발행 및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보조참가인에게 DLS 인수대금으로 각 신탁자금을 포함해 지급했다.
이에 재판부는 “각 신탁계약은 내용의 중요한 부분에 원고들의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로 소장 송달로써 취소되었고, 따라서 KB증권은 신탁계약에 따라 원고들이 지급한 투자원금 상당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할 것이나, KB증권이 투자원금을 원고들의 지시 또는 합의 내용대로 사용하거나 지출한 이상 이는 더 이상 현존하지 않게 됐다”며 “결국 원고들의 부당이득반환에 관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에 대해 투자자보호의무를 부담하는 KB증권은 신탁상품의 특성과 주요 내용, 그에 따른 위험을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원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설명함으로써 원고들이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할 수 있도록 원고들을 보호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한 결과 원고들에게 손해를 입게 했으므로, 원고들에 대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신탁계약의 체결을 권유하는 KB증권의 직원으로부터 신탁상품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들은 뒤, 해당 직원과 그가 설명한 신탁상품의 내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이므로, KB증권은 원고들에게 실질적으로 투자를 권유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보조참가인(NH투자증권)이 발행한 DLS에 대한 투자설명서에는 투자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기재돼 있다. 이처럼 KB증권은 거래경험과 전문지식, 보조참가인 등으로부터 제공된 자료 등을 토대로 원금 보장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이 신탁상품의 위험을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조사하지 않고 만연히 보험 등에 의해 투자원금이 보호될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신탁상품의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 손실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경우, 원고들은 KB증권과 신탁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적어도 동일한 조건으로 체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처럼 원고들은 KB증권이 신탁계약에 수반하는 위험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투자원금 일부를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게 됐다”고 지적했다.
원고 A사가 입은 손해는 투자금 10억원에서 상환받은 2억 4304만원을 뺀 7억 5695만원을, B사가 입은 손해는 투자금 5억원에서 상환받은 1억 1957만원을 뺀 3억 8042만원이 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관해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는 때에는 가해자의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이를 참작해야 한다”며 “신탁계약의 체결 경위, KB증권의 설명의무 위반의 내용과 정도 등을 종합해 원고 A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70%, B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8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금융투자상품은 본래 여러 불확정 요소에 의한 위험성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DLS 상품은 일반적으로 원금의 손실 가능성을 수반하는 금융투자상품인 점, 원고들로서도 자기책임의 원칙 아래 신탁상품의 위험성 등을 스스로 파악해 투자했어야 하는 점, 원고들은 오히려 KB증권에게 DLS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거나 투자원금의 회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 점” 등을 짚었다.
A사와 B사의 손해배상에 차이를 둔 것은, A사의 경우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는 주권상장법인으로서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에 해당하고, B사는 일반투자자였다.
재판부는 결국 투자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원고 A에게 5억 2986만원(7억 5695만원 × 0.7), 원고 B에게 3억 432만원(3억 8042만원 × 0.8)으로 정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