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치매 증상과 우울증을 겪던 망인이 자택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보험사는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자살 내지 자신을 고의로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이유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9월 자택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이 작성한 내사결과보고에는 “변사자가 최근 치매 증상과 우울증을 호소했다는 유족 진술, 침입 및 다툼 흔적이 없는 점, 현장 CCTV 영상에 범죄로 의심할 만한 장면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범죄 혐의 없어 내사를 종결한다”고 기재돼 있다.
유족은 “예견치 못한 사고로 사망했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KB손해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KB손해보험은 “망인이 사망한 것은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고, 자살 또는 고의로 투신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므로, 보험계약의 약관상 면책조항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이에 유족은 보험전문 법무법인 한앤율에 사건을 의뢰해 소송을 진행했다. 조민지 변호사는 “망인이 자택 베란다 밖으로 추락한 것은 자살한 것이 아니므로, 보험사는 면책되지 않는다”며 “가사 자살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행한 우발적인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1민사단독 김승곤 부장판사는 최근 망인의 유족이 KB손해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KB손해보험은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김승곤 부장판사는 “망인이 사고 당시 치매 내지 우울증상을 가지고 있었던 점, 망인에게 외력이 가해진 흔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망인이 사고 당시 스스로 장독대에 올라 추락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김승곤 부장판사는 “보험약관에 따라 피보험자가 자살 또는 고의로 해친 경우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책임은 면제된다”며 “이 사고는 망인이 자살 내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므로, 보험사는 보험약관에 따라 면책되는바 보험사의 항변은 이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승곤 부장판사는 망인의 심신상실 여부에 주목했다.
김승곤 부장판사는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 책임이 있다”며 “이 사고가 망인이 자살 내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사고 당시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KB손해보험의 보험금 지급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승곤 부장판사는 “CCTV 영상 및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등을 종합해 보면, 망인이 사고 당시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승곤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망인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입은 상해의 결과로 사망한 것이므로, 보험사는 보험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망인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다른 보험회사는 보험약관에 “피보험자의 자해, 자살, 심신상실 또는 정신질환 등의 사유를 원인으로 생긴 손해는 보상해 드리지 않는다”는 규정을 둬 보험금 지급 책임에서 면책을 받았다.
반면 KB손해보험사의 경우 보험약관에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도,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둬 보장한 것이다.
법원도 이를 존중해 판결한 것이다.
한편, KB손해보험사가 항소하지 않은 이 판결은 확정됐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