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국무총리, 장관,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정부 각료로 차출해 임명되는 ‘겸직’ 문제를 짚어본다.
20년 전부터 국회의원이 각부 장관에 임명돼 입법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여당의 정부 견제기능 약화 등의 이유를 들어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금지하는 입법안이 꾸준히 발의됐으나,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매번 지적을 받으면서도 입법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경실련(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시민입법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정지웅 변호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의 진단은 구체적이었고, 해법은 간단 명료했다.
“겸직이 허용될 때마다 나타나는 ▲입법 기능 약화 ▲민주적 통제 실종 ▲정치적 책임 회피 ▲행정력 낭비 등의 폐해는 구체적이고 반복적입니다.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이제는 시민사회와 언론, 그리고 유권자의 분명한 요구가 입법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정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정 대표변호사)는 서울시의회 법률고문, 국민권익위원회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고등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 금지 입법이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되었지만, 단 한 번도 국회를 통과한 적 없이 모두 폐기되어 왔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치권 내부의 이해관계, 제도적 관행, 견제의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정치권 내부의 이해관계
장관직은 국회의원들에게 정치 경력 관리의 수단이자 유력한 보상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상당수 의원들이 장관직을 ‘정치적 승진’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인사권에 기대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은 ‘국회의원 하면서 대통령에게 잘 보여 장관도, 총리도 해보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겉으로는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입법 과정에서는 당내 이견, 침묵, 미온적 대응 등으로 인해 법안이 보류되거나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제도적 혼합성과 관행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지만, 일부 의원내각제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장관)을 겸직하는 것이 오랜 정치 관행으로 유지돼 왔습니다.
겸직 금지에 대한 공감대는 존재하지만, ‘정부와 의회 간 원활한 소통’, ‘상임위 경험이 장관 업무에 도움된다’는 명분이 여전히 정치권 안팎에서 정당화 논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실질적 견제 부재와 특권 유지 심리
국회의원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는 입법에는 늘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국무위원 겸직 금지에 대해 여당은 향후 인사 기용을 기대해 반대하고, 야당은 권력 견제 수단 확보 차원에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진정성 있는 제도 개선 의지가 정치권 내에서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 국회의원의 장관직 임명이 가져오는 구체적 피해와 문제점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할 경우, 다음과 같은 실질적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 삼권분립 훼손 및 견제 기능 약화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장관을 겸하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ㆍ감시해야 하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입법과 행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국정감사ㆍ예산심의 등 핵심 역할 수행이 현저히 저하됩니다.
▲ 입법 및 의정활동의 위축
장관을 겸직한 국회의원의 경우 실제 법안 발의 건수, 국회 출석률 등이 눈에 띄게 감소합니다. 예컨대 한 연구에 따르면, 장관 겸직 시 법안 발의 수가 평균 14건 감소하며, 법안 가결률도 하락합니다.
▲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훼손
법무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 선거 관리와 직결되는 부처에 현역 국회의원이 임명될 경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장관직을 노리는 이른바 ‘청와대 줄서기’ 현상이 강화되면서, 입법부의 독립성과 민주적 책임성이 약화됩니다.
▲ 포퓰리즘 정책과 행정력 저하
정치인 출신 장관이 선거를 의식해 포퓰리즘 정책에 경도될 위험이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행정 안정성과 정책 일관성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임기 중 사퇴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 인사청문회와 대행 체제 전환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가 발생합니다.
▲ 정경유착 및 부패 가능성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계가 흐려지면, 정경유착, 청탁, 이해충돌 등 부정부패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는 결국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 금지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권력분립의 원칙, 국회의 독립성 회복, 정치적 책임의 명확화와 직결된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이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는 정치권 내부의 구조적 이익, 관행의 타성, 국민적 압박의 부재 때문입니다.
겸직이 허용될 때마다 나타나는 입법 기능 약화, 민주적 통제 실종, 정치적 책임 회피, 행정력 낭비 등의 폐해는 구체적이고 반복적입니다.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이제는 시민사회와 언론, 그리고 유권자의 분명한 요구가 입법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