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판결’과 관련 박병곤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는 “재판할 때 대법원 판례를 최우선 잣대로 삼고 있다”면서도 “(이재명)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박병곤 판사는 5월 2일 법원 내부게시판(코트넷)에 ‘법원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지킵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병곤 판사는 “판결이 존중받으려면 기본적 절차가 지켜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무리한 절차 진행”이라며 “판사로서, 그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이재명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이 일으킨 한밤중의 반란이 우리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남겼듯, (이재명) 전원합의체 판결이 법원을 바라보시는 국민들 마음속에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불신을 남겼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병곤 판사는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법원도 없다.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고, 국민들의 신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며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들을 배반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대법원
대법원

◆ 대법원 전원합의체 초고속 재판 진행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지난 5월 1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에 대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원합의체에서 노태악 대법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는 사정을 고려해 사건을 회피해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다. 천대엽 대법관도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법정의견은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 등 10명은 이재명 후보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이흥구 대법관과 오경미 대법관은 “이재명 발언은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는 의견을 냈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월 27일 이재명 후보의 항소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3월 28일 대법원은 이재명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 소송기록을 접수한다. 검찰은 4월 10일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접수했다. 이재명 후보도 4월 21일 대법원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4월 22일 대법원은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소부’에 배당했다가, 2시간 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첫 합의기일을 진행했다. 또 이틀 뒤인 4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두 번째 합의기일을 진행했다.

4월 29일에는 이재명 후보 상고심 판결 선고기일을 5월 1일로 지정 발표했다. 1일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불과 9일 만에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극히 이례적인 초고속 판결이다. 이런 재판 진행은 초유의 사건이다.

서울고등법원은 5월 2일 즉각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사건을 배당했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재판장 이재권 부장판사)는 이날 사건을 배당받고 오는 15일 오후 2시를 공판기일로 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재명 후보 측에 소송기록접수 통지서와 피고인 소환장을 함께 발송했다.

한편, 5월 7일 이재명 후보 측에서 공판기일 변경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날 서울고법 제7형사부는 당초 5월 15일로 잡았던 공판기일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인 6월 18일로 변경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남부지법)

<다음은 서울남부지방법원 박병곤 판사가 코트넷에 올린 ‘법원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 전문>

법원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남부지방에서 일하는 판사 박병곤입니다.

저는 판사로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합니다. 매달 두 번 나오는 판례공보의 열렬한 독자이고, 항상 대법원 판례를 잘 이해하려 애쓰고, 재판할 때에도 대법원 판례를 최우선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각급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지만, 대법원 판결은 각급 법원 판사님들의 노력, 재판연구관님들의 헌신, 그리고 우리나라 사법체계 정점에 서 계신 대법관님들의 치열한 고민과 검토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제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론이나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판사들, 검사 및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률가들, 나아가 우리 사회 시민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상식과는 다르게 절차가 진행된 것 같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그 판결이 존중받으려면, 적어도 기본적 절차가 지켜져야 합니다. 당사자가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 절차 준수는 결론이나 내용과 상관없이 판결이 존중받기 위한 바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은 3월 28일 대법원에 접수됐습니다.

검사 상고이유서는 2025년 4월 10일. 변호인 의견서는 2025년 4월 22일 및 4월 28일 각각 대법원에 제출됐습니다.

1심과 항소심 판결 분량이 적지 않고, 상고이유서나 변호인 의견서 역시 매우 두꺼웠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전원합의체 판결은 2025년 5월 1일 나왔습니다.

지금도 각급 법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법원가족 여러분, 그리고 일반 시민들께서 대법원이 이 사건을 충실하게 검토하고 심리해서 선고했다고 생각하실까요? 유력 대선후보, 그것도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박탈시킬 수 있는, 그래서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접수된 지 고작 한 달 만에, 상고이유서가 제출된 지 20일 만에 선고될 수 있다고 믿으실까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이러한 무리한 절차 진행이 왜 유독 이 사건에서만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시지 않을까요?

이런 의문들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는 판사로서, 그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다른 판결들은 몰라도 어제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석열이 일으킨 한밤중의 반란이 우리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남겼듯, 어제 전원합의체 판결이 법원을 바라보시는 국민들 마음속에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불신을 남겼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법원가족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법원에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지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고결해서도 아닙니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께서 역사 속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섰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피를 흘리고 때로는 돌아가셨고,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3일 이후 아직 내란의 잔불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잔불이 언제 꺼질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되살아나 민주주의를 태워버려 폐허로 만들어놓을지 알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철저히 새기고, 재판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이를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의무이고, 법원에서 일하게 해주신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며, 법원이라는 사랑하는 일터를 지키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국민들은 한번 거든 믿음을 다시 잘 주시지 않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믿음을 언제든지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법원도 없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고, 국민들의 신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국민들을 배반하지 맙시다.

2025년 5월 2일 박병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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