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국회가 탄핵소추 재량권을 남용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은 피소추자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하고,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점만으로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헌재는 “이진숙 위원장이 취임 당일에 한 행위의 위법성을 문제 삼아 곧바로 탄핵소추로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탄핵심판의 헌법수호 기능이 충분히 실현될 여지가 있으므로, 탄핵소추권의 남용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재판관 4 대 4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같은 내용을 결정문에서 밝혔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7월 31일 이진숙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김태규를 방통위 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임명 당일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다른 3인의 위원이 공석이어서 본인과 김태규 위원 2인만 재적한 상태에서 ‘한국방송공사 이사 추천 및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 관련 후보자 선정에 관한 건’ 등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
이에 국회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임명 다음 날인 2024년 8월 1일 이진숙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8월 2일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국회는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방통위법을 고려하면, 회의의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려면 최소한 위원 정수(5명)의 과반수인 3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함에도 이진숙 위원장은 2인 위원만 재적한 상태에서 심의 의결함으로써 방통위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국회는 “이진숙은 방통위법 의결정족수를 형해화 했으며, 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한 입법취지에 반해 방통위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방송의 자유 및 공적 기능을 저해했다”며 “또한 국회 등에서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을 수 차례 지적했음에도 이진숙은 임명 당일 심의ㆍ의결에 나아간 점 등에 비추어 고의 내지 중대한 과실도 인정돼 헌법 및 법률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이진숙)을 파면해야 한다”면서 탄핵했다.
이에 대해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특히 “탄핵소추권 남용”을 주장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탄핵소추 의결이 피청구인(이진숙)의 임명 직후 이루어진 점, 피청구인의 전임자들에 대해 연이은 탄핵소추가 있었고 피청구인에 대하여도 취임 이전부터 탄핵소추 가능성이 제기된 점” 등을 이유로 “이 소추 의결은 피청구인의 직무를 정지시켜 방통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탄핵소추권의 남용에 해당하고, 따라서 탄핵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청구인(국회)이 소추 재량권을 일탈해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이진숙 위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의결 과정에서 법정 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 소명됐다면, 해당 탄핵소추의결은 피소추자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하고,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점만으로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탄핵심판은 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로서, 공직자의 위헌ㆍ위법행위에 대한 헌법재판을 통해 국가권력을 통제하고 나아가 그들에 의한 헌법 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며 “피청구인이 취임 당일에 한 행위의 위법성을 문제 삼아 곧바로 탄핵소추로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탄핵심판의 헌법수호 기능이 충분히 실현될 여지가 있으므로, 위와 같은 점만으로 탄핵소추권의 남용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진숙 위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피청구인(이진숙)의 문화방송(MBC) 재직 당시 행적 등 청구인(국회)이 주장하고 있는 일부 사실관계는 피청구인의 자질 내지 취임 이전의 행위에 관한 것이나, 청구인이 피청구인의 자질 내지 방통위원장 취임 이전의 행위를 탄핵사유로 주장하고 있음을 이유로 하는 탄핵소추권 남용 주장도 이유 없다”고 일축했다.
◆ 김형두,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 기각 의견
한편, 김형두,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은 이진숙 탄핵심판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4명의 재판관들은 “피청구인(이진숙)이 취임 이후 새롭게 위원 3인의 추가 추천 내지 임명을 요청하지 않고, 의결에 나아간 것이 합의제 행정기관의 이상적인 운영방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거나 피청구인에게 위법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렇다면 피청구인이 재적위원 2인에 의해 의결을 한 것이 방통위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피청구인이 재적위원 2인에 의해 의결을 한 것, 방문진 임원 임명에 관한 안건에 대해 회피하지 않은 것, 자신에 대한 기피신청 의결에 참여해 각하한 것, 심의 의결로써 한국방송공사 이사 추천 및 방문진 이사 임명을 행한 것은 모두 헌법상 탄핵사유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심판청구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재판관 인용 의견
반면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재판관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인용 의견을 냈다. 다만 재판관 의결정족수 6인에 못 미쳐 탄핵심판은 인용되지 않았다.
4명의 재판관들은 “2인의 위원만이 재적한 상태에서는 방통위가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될 위험이 있는바, 이는 방통위를 합의제 기관으로 설치한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방통위법 제13조 제1항에 비추어 보더라도 재적위원 인만으로는 적법한 심의 의결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방통위의 의결은 원칙적으로 상임위원 5인이 모두 임명돼 재적하는 상태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인 3인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짐이 바람직하다”며 “후임자 임명 지연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 불가피하게 5인 미만의 위원이 재적하는 상태에서 의결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적법한 의결을 위하여는 방통위가 합의제 기관으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위원 수, 즉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하는 상태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2인 체제’ 의결의 적법 여부는 ‘2인 체제’의 원인과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의 문제와는 별개이고, 방통위의 업무 수행이 필요하다는 점이 절차적으로 위법한 의결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는 없다”며 “따라서 피청구인이 재적위원 2인에 의해 의결을 한 것은 방송의 자유와 공적 기능을 보장하는 헌법 제21조의 취지를 구체화한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4명의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재적위원 2인에 의한 의결이 방통위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용인한 상태에서 이 사건 의결을 강행함으로써, 방송의 자유와 공적 기능을 보장하는 헌법 제21조의 취지를 구체화한 방통위법 제13제 2항을 위반하고, 방통위원장의 권한 행사 및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러한 피청구인의 법 위반은 나머지 소추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에 나아갈 필요 없이 그 자체로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방통위 의결의 적법성의 본질적 전제가 되는 방통위법 제13조 2항을 위반함과 아울러, 방통위원장으로서 방통위 의결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담보해야 할 중대한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고, 이는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피청구인을 그 직에서 파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