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7일 “10월 유신 – 사법부가 오욕의 역사와 결별하고 인권의 보루로 다시 태어날 것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법부는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벌인 과거청산의 행태를 조사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민변(회장 김호철) 과거사청산위원회에 따르면 박정희는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72년 10월 17일 19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착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⓵국회해산 및 정치활동 중지하고, 일부 헌법의 효력을 중지한다. ⓶정지된 헌법 기능은 비상국무회의가 대신한다. ⓷평화통일지향의 개정헌법을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로 확정한다. ⓸개정헌법이 확정되면 연말까지 헌정질서를 정상화한다는 4개 항의 ‘특별선언’을 했다.

민변은 “이러한 초헌법적 비상조치에 따라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 헌법개정안을 공고하고, 11월 21일 국민투표를 실시해 유신헌법이 확정됐다(헌법 제8호). 이어서 박정희는 12년 15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한 후, 여기에서 12월 23일 제8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12월 27일 정식 취임함으로써, 인권탄압과 공포정치로 대변되는 ‘유신ㆍ긴급조치시대(소위 제4공화국)를 출범시켰다”고 설명했다.

또 “박정희는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권을 행사하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운동과 국민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대학생, 지식인, 언론인, 야당 정치인, 시민들이 체포되고 불법 구금됐으며,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했고, 유죄를 선고받았다”며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가 선포된 때로부터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될 때까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입수 분석한 긴급조치 위반 판결만도 1412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민변 과거청산위원회는 “사법부는 위와 같은 인권유린의 독재정권 하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독재자의 꼭두각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국가의 불법행위에 동조해 판결로서 불법을 적법으로 포장하고 ‘사법살인’을 자행한 인혁당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긴급조치 9호 발동 후 1979년 10월까지 4년 반 동안 위 긴급조치 위반을 이유로 1,400여 명이 구속되었고, 이 중 1000여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 등 행정부가 국가 폭력을 주도했음은 별론, 사법부는 긴급조치의 위헌성에 대해서 애써 의문을 품지 않고 ‘정찰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박정희가 만들어낸 폭압적 야만의 시대를 유지하는 든든한 축이 돼주었다”고 질타했다.

민변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의해 긴급조치의 위헌성이 확인되고 피해자들이 하나 둘 무죄를 받고 명예를 회복해오던 것도 잠시, 2015년 3월 26일 양승태 사법부는 위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면서, 이를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선언했다”며 “마치 정권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에게 증거도 없이 사형을 선고했던 그 때의 대법원처럼, 지금의 대법원은 긴급조치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론마저 부정하면서 긴급조치에 대해 면죄부를 준 위와 같은 행위에 개탄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급기야는 이러한 양승태 사법부의 과오가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적 행위가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신 정당화 기조에 동조하고 재판을 거래한 ‘농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에 이르렀다”며 “이는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 대법원의 민낯을 드러낸 것으로,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또 “정권을 위해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정찰제 판결을 찍어내 주던 사법부가, 국가의 불법행위로 고통 받았던 국민들의 권리구제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불합리하고 자의적인 법리를 창조해 가면서까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였다”며 “사법부의 그러한 움직임에는 양심도 정의도 아닌 권력자와의 거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법부는 그나마 있던 사법부 반성의 흔적을 스스로 지워버렸고,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정권의 최후 보루’로서 자리매김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던 가람 김병로는 1957년 12월 퇴임사에서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 손상이 될 것이다. 정의를 위해 굶어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법관이 지녀야할 자세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며 “지금의 사법부는 나라의 독립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헌신한 초대 대법원의 수장 앞에서 자신들의 판결문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오늘 10월 17일 10월 유신을 기억하며 지금의 사법부에 촉구한다. 사법부는 ‘정권의 최후보루’로 변질된 오욕의 역사와 결별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만전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변은 “구체적으로, 사법부는 전임 대법원장이 벌인 과거청산의 행태를 조사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재심 또는 사건 재개를 통해 소멸시효와 재판상 화해 조항에 막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을 통해 대법원 판례의 문제가 확인된 만큼, 대법원은 신속히 긴급조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그것만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고 사법부의 권위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거듭 “사법부가 오욕의 역사와 결별하고 인권의 보루로 다시 태어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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