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형법규범의 총량을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법을 전수조사해서 형법규범의 비형벌화 해야 한다”며 “처벌 규정을 과태료나 비형법적 제재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한인섭)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ㆍ소병철 국회의원, 미래통합당 윤한홍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민의 목소리, 그리고 21대 국회의 형사입법 방향’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 발제자인 이진국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형사법 분야의 국민청원 분석’을 주제로 발표에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개인청원, 제도개선 등 다양하고 많은 청원이 제기됐다”며 “국회도 최근 홈페이지에 ‘국민동의청원’ 사이를 개설해 헌법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국 교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개설된 지가 최근이어서 건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에 반해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만료된 청원 건수는 2020년 7월말 기준으로 44만 4723건, 진행 중인 청원 건수는 1013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교수는 “왜 이런 대량 청원의 배경을 생각해 보니까, 대통령제 국가이다 보니, 청와대에 얘기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지 않았나 싶다”며 “기존 국가기관이 권위주의적 태도에 기반한 개인의 요구ㆍ주장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잘 들어주지 않다보니까 청와대까지 가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이진국 교수는 “특히 형사법과 관련해서는 형량이 낮다든지 국가형벌권의 온정주의적 처벌, 엄벌정책에 대한 반발도 찾아 볼 수 있다”며 “예컨대 민식이법을 다시 개정해 달라는 요구 등 국민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나온다”고 봤다.

이 교수는 또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실제로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은 문제점도 있었던 것 같다”며 “세부 정책의 객관성, 세밀성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이 표출되지 않았나”라고 진단했다.

발제하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하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교수는 “국민은 모든 주장을 다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법을 제ㆍ개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국민의 주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에 관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법률도 품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법률의 품격을 논의할 때가 됐다”며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헌법체계에 부합하고, 법체계의 정합성을 갖춘 형사입법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여과 없이 입법에 반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적어도 그것이 법적 정합성을 갖춘 방식으로 우리 형사법의 이념이나 실천 지침에 맞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여기에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교수는 형사법 분야의 대표적 국민청원을 짚었다. 이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를 보면 여러 유형별로 구분해 놓고 있는데, 대부분의 청원 내용이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청원내용으로 사이버 폭력예방 및 처벌법 제정, 경비원 폭행에 대한 특가법 제정, 민식이법 및 도로교통법 개정, 민식이법은 법정형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낮춰달라는 취지의 청원”이라며 “그리고 아동학대 사건 엄벌, 층간소음유발자 처벌규정 도입, 촉법소년법 폐지해 달라는 것 등”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주취자들이 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 현행법을 적용해도 주취자들을 처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부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 데이트 폭행 처벌 강화, 마스크 미착용 관련 폭행사건에 대한 엄벌, 갑질 처벌 법률 강화(택시기사 보호 및 처우개선) 등”을 덧붙였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교수는 “그런데 청원내용들을 분석해보면 국민의 경우 개인의 처벌 욕구가, 처벌의 제도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국민이 그렇게 요구를 하니까 국회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굳이 할 수 있다면 법을 만들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법정형 시스템이 들쭉날쭉해서 체계성이 많이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회 입장에서는 간편하고 강력한 수단으로서 형벌을 개정하고 이로써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그러다 보니까 국민의 모든 생활 저변에 형벌규정이 깔려 있다. 값비싼 형벌이 돼야 하는데 싼값의 형벌로 형벌에 대한 무감각해진다”고 꼬집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그래서 국민의 모든 생활에 수사기관이 개입할 문호를 개방돼 버린다. 그래서 국회의 절제된 입법이 요구되는데, 과연 국회가 실제로 절제된 입법을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진국 교수는 “국민의 저렇게 울고 있는데, 울고 있는 국민을 달래줘야 하는데, 국회는 형량이라도 높여줘야 한다”며 “사실 국회의 역할은 범죄구성요건을 만드는 것보다, 형량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형량이 강화된 법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진우 검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진우 검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전형법과 관련해 이른바 민식이법을 예로 들었다.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군(당시 9세) 사고 이후 제정된 법이다.

민식이법의 주요 내용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가법 제5조의 13을 신설했다. 피해자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피해자 상해를 입은 경우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이진국 교수는 “민식이법에 대해서는 ‘과실범’임에도 법정형이 너무 중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업무상과실치사는 5년 이하인데, 민식이법은 법정형이 최하 3년 이상은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것”고 짚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살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장에서 안전조치나 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를 경청하며 메모하는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제를 경청하며 메모하는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이진국 교수는 “민식이법 경우는 법정형 최하한이 징역 3년 이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의결과적가중범의 형식을 취하는데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심지어 양형기준은 업무상과실치사죄가 더 낮은 수준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안전영역에서 동일한 사망인데 범죄의 성격도 차이가 남에도, 민식이법은 과실범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고의범과 과실범이 결합한 형식인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법정형이 더 낮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민식이법은 과실범임에도 3년 이하의 징역, 산업안전보건법 제167조 위반죄는 결과적가중범임에도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법체계가 정합적이지 못하다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해자보호법의 중요성도 짚었다. 이진국 교수는 “문제는 지금까지 큰 재난이 일어나면 전부 재해보호법으로 했다. ‘이재민’으로 하니까 피해를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법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세월호피해지원법, 석면피해구제법, 포항지진구제법,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허베이호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법을 그때그때 만들어 정치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전문적인 관점에서 일반적인 피해자지원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형사처벌규정의 개편 필요성에 대해 이 교수는 “핵심 형법전, 특가법 등 형사특별법이 거의 모든 법률에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서 형사처벌 규정이 남용될 여지가 아주 높다”며 “특히 결격 부분에서도 벌금선고 전력만으로 결격사유를 인정해서 개인의 직업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진국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온갖 법에 전부 형벌규정을 두니까, 저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법률의 착오’를 주장해도 되겠다. 그걸 들어줘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질서유지나 개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당벌성(當罰性)을 부정해야 되고, 따라서 형법규범의 총량을 감축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면서 “그래서 모든 법을 전수조사해서 형법규범의 비형벌화 해야 된다. 처벌 규정을 과태료나 비형법적 제재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2007년도에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을 만들 때 그런 의지가 있었으나, 그 때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만 만들고 실제 개별법에서의 기존에 벌금형이나 징역형으로 처벌되는 것을 과태료로 전환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전환하지 않은 채 이어져 오고 있다. 그에 관한 실천적인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진국 교수는 “합리적 형사입법의 전제조건은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형사입법이어야 한다. 법률도 품격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형사입법이 있어야 된다. 즉 형사입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춰볼 때 처벌필요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경우에만 형사입법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이런 의미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에 대한 전문가의 과학적 자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입법권을 가진 국회와 입법을 자문하는 전문연구기관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 교수는 “국회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과 상시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형사처벌 규정의 품격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

세미나 사회를 진행한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저도 ‘법률의 무지’ 부분에 대해서 용서받지 못한다는 게 저도 좀 어색하다. 누가 저에게 물었을 때, 법 규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전향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또 “형벌규범 총량 감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개회사 하는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개회사 하는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한편, 이날 정책세미나에서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소병철 의원이 축사를 했다. 윤한홍 의원은 영상메시지로 참여했다. 그리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의원도 참여해 축사를 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호중 위원장이 참석해 축사할 예정이었으나, 집중호우 관련 현장방문으로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고, 박주민 의원도 당대표 경선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세미나 사회자인 승재현 박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가 두 의원의 축사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세미나 발제는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가 ‘20대 국회의 형사입법 성과와 과제’에 대해,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1대 국회의 형사입법 방향’에 대해 주제 발표했다.

원격 압수수색을 발표하는 조성훈 변호사
원격 압수수색을 발표하는 조성훈 변호사

종합토론 좌장은 박미숙 박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가 진행했다. 토론자로는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인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성훈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진우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 박혜림 국회 입법조사관이 참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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