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가 청와대 등 정치권과 판결을 가지고 협상을 시도했다고 의심된다는 문건 중에서,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압박 방안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문건이 있다는 보도를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이는 ‘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에 경악한 이찬희 서울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의 통탄이다.

이찬희 서울변호사회장은 11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개최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전국변호사 시국선언’ 자리에서 이같이 비판했다.

이찬희 회장은 “현재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있다”며 “이대로 가게 되면 법원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변호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법조계 전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 중 9곳의 지방변호사회 회장들이 동참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찬희 회장,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유준용 회장, 인천지방변호사회 이종엽 회장,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이정호 회장, 충북지방변호사회 김준회 회장, 대전지방변호사회 김태범 회장, 부산지방변호사회 이채문 회장, 광주지방변호사회 최병근 회장, 전북지방변호사회 황규표 회장이다.

또한 전국의 변호사 2015명(6월 11일 오전 9시 현재)이 비상시국선언에 서명하며 동참했다. 이틀 동안 상당히 많은 변호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 시국서언을 준비한 ‘사법행정권 남용 규탄 전국변호사 비상시국모임’도 깜짝 놀라고 있다. 시국선언 자리에도 대략 100명 정도의 변호사들이 참석했다.

변호사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사법농단은 경천동지할 일”이라면서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견제되지 않는 사법권의 전횡으로 인해 국민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내버려둘 수 없다”며 4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 관련성 유무나 공개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사법행정권의 남용과 관련된 미공개 문건을 전면 공개하라.

▲ 각 문건의 작성자와 작성경위, 해당 문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선까지 보고되었는지, 보고 후 최종 실행 여부 등에 대해 성역 없이 철저하게 조사하라.

▲ 철저한 조사 후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형사처벌, 징계, 탄핵 등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대법원 및 사법행정의 개혁 등을 통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다.

시국선언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찬희 회장은 “현재 우리 사법부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우리 헌법의 본질적인 가치이자 핵이다”라며 “따라서 이번 사법행정권의 남용 사태 역시 사법부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사법부는 전혀 합일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 갈등과 분열만 가중되고 있다”며 “이제는 결코 법원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시점에 법조계의 한축으로써, 법원 내부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변호사회가 이제는 침묵하지 말고 우리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주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찬희 회장은 특히 “사람은 경험에 의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며 “저 역시 이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등 정치권과 판결을 가지고 협상을 시도했다고 의심된다는 문건 중에서, 상고법원과 관련해 이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압박 방안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문건이 있다는 보도를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행정처에 경악했다.

이 회장은 “변호사로서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저는 변호사의 형사성공보수약정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1심과 2심 모두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을, 대법원에서 모든 대법관이 만장일치인 13 대 0으로 뒤집는 판결을 했다. 그 판결을 당해 사건이 아닌 이후 사건부터 적용하자는 식의 사법에 의한 입법을 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변호사의 성공보수약정을 민법 103조 위반으로 몰아가면서 변호사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이나 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찬희 회장은 “변호사인 저도 이렇게 느낄 지경이니, KTX (승무원) 근로자 복직사건, 쌍용차 노동자 해고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라고 대법원 판결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있다. 법원에서 변호사의 능력이나 성실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에 따라 정해진 판결을 한다면, 어떤 국민이 능력과 열정으로 변론을 할 테니 자신에게 사건을 맡겨달라는 변호사를 선임하겠습니까?”고 따져 물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사건을 이기고 싶어 하는 국민들로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법원의 정책에 동조하고 법원과 연결되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게 되면 법원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변호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법조계 전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찬희 회장은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인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적지 않은 압박이 있었다. ‘회장, 당신은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이냐’. ‘양승태 편이냐 김명수 편이냐’는 질문부터, ‘왜 정치적인 문제에 변호사회가 나서느냐’는 등 우려 섞인 말씀도 있었다”고 외부의 압박을 털어놨다.

이 회장은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이번 시국선언은 국민을 위해 우리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게 돕고 싶은, 국민을 대신해 법정에 나가야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로서의 양심에 따른 선택이지, 결코 정치적인 문제에 변호사회가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저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면서 “굳이 말하라면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국민의 편이다. 올바르고 정당한 재판을 받고 싶어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변호사들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이찬희 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을 받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 수 있게 하고 싶다. 우리의 후배변호사들이 변호사회를 길들이려는 의도 하에 변호사들을 파렴치한으로 몰면서 상식 밖의 판결을 하는 법원이 아닌, 능력과 성실함만을 가지고도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을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는 법원이 있는 나라의 변호사로 살게 하고 싶다”며 “그것이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라고 바람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오늘 전국 각지에서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시고 시국선언 성명서에 서명해 주신 동료 변호사 여러분, 여러분이야말로 인권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변호사다”라고 격려했다.

이에 시국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변호사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변호사들은 시국선언을 마치고 대법원까지 행진을 벌였다. 가두행진 사회를 맡은 오영중 변호사은 “양승태를 처벌하라” “검찰은 즉각 수사하라”는 등의 구호 선창했고, 변호사들은 이를 따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대법원 동문에서 변호사들은 법원행정처를 향해 큰 함성을 외치기도 했다.

또한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이종엽 인천지방변호사회장, 이명숙 전 여성변호사회장 등은 변호사들의 연명이 담긴 시국선언문 등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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