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위 ‘재벌 3ㆍ5법칙’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재벌총수의 경제범죄 사건에 대해 ‘국가경제를 고려’한 호의적인 판결이 다수 내려졌습니다. 그 덕에 재벌총수는 대한민국 사법질서에서 예외적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야말로 재벌들의 경제범죄를 엄단해 시장과 경제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삼성물산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에 대해 재판관님들께서 공정하고 엄중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정의연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이 법원삼거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1심 선고! 이재용 경제범죄 엄벌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참여연대
사진=참여연대

단체들은 이어 재판부에 엄중한 판결을 요청하는 시민 2024명의 서명을 담은 탄원서를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박정제ㆍ지귀연ㆍ박정길 부장판사)에 제출했다.

탄원서는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에 대한 공정하고 엄중한 판결을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2023년 11월 17일 열린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 결심 공판에서 “삼성물산 불법합병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이자 실질적 이익이 피고인에게 귀속된 점을 고려해 달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1심 선고는 오는 1월 26일 예정이다.

이번 재판은 검찰이 2020년 9월에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임직원들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및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혐의, 형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함에 따라 진행된 사건이다.

기소 당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과 삼성 임직원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목적이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합병에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또한 합병 이사회 결의가 이재용 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의 지시를 받은 형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가 경영상 판단으로 합병을 추진한 것처럼 공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은 그룹 총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공짜 경영권 승계를 시도했고 성공시켰다”고 주장했다.

법원 방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법원 방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하지만 ‘이재용 삼성 회장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 2024명’은 “검찰이 범죄사실의 중대함에 비해 적은 형량을 구형함으로써 기업의 건전한 경영 및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 훼손, 투자자와 회사의 손해에 대한 징벌과 재발방지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시민들은 탄원서에서 “이 사건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사후에 이재용 회장이 지분매입 비용을 따로 들이지 않고서도 삼성의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2015년에 삼성전자 지분을 다수 가지고 있었던 옛 삼성물산과 이재용 회장이 많은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 간 합병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며 “당시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이 사건 피고인들은 이재용 회장에게 합병 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배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저평가하고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고평가 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 부채를 누락하는 등 분식회계가 자행됐고, 허위의 합병비율 적정보고서를 마련하는 등 위법 행위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들도 “당시 삼성물산 1주당 부여되는 제일모직 주식은 0.35주에 불과했는데, 이는 이재용 회장이 지분 23.2%를 보유했던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 가치를 저하시키기 위함이었다”며 “하지만 삼성물산의 매출액이 제일모직 대비 5.6배, 자산총계는 3.1배나 더 컸음을 감안한다면, 제일모직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산정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그에 따라 이재용 회장은 옛 삼성물산이 소유한 약 4%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을 더 공고히 했지만, 삼성물산 회사와 주주는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며 “합병 당시 발표된 시너지효과와 2020년까지 매출 6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특히 국민연금은 보유한 삼성물산 가치가 저하됨에 따라 손실이 클 수밖에 없었다”며 “그동안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등에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으로 입은 국민노후자금의 손실액은 최소 1137억원에서 최대 67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여기에 엘리엇이 삼성물산 불법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을 문제 삼아 제기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절차(ISDS)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손해배상을 결정함에 따라 대한민국 국고 유출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은 탄원서에서 “이 사건은 우리나라 경제 및 기업 경영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훼손했다는 점에서 매우 죄질이 나쁜 사안”이라며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은 기업의 가치를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적으로 자본시장질서를 교란한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이는 주주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건전하고 책임있는 기업 경영과 공정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 질서를 기대하는 여러 국민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그동안 소위 ‘재벌 3ㆍ5법칙’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재벌총수의 경제범죄 사건에 대해 ‘국가경제를 고려’한 호의적인 판결이 다수 내려졌다”며 “그 덕에 재벌총수는 대한민국 사법질서에서 예외적 지위를 누려왔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번에야말로 재벌들의 경제범죄를 엄단해 시장과 경제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에 대해 재판관님들께서 공정하고 엄중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2015년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승계를 위해 추진된 삼성물산 불법합병에 따라 회사와 다수의 주주, 특히 국민연금이 손실을 입었음을 강조하고, ISDS 결과가 최종 확정될 경우 국고 유출 위험도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단체들은 “이 사건은 경제적 손실 여부를 차치해도 한국의 시장경제 질서와 기업 경영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훼손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하며, “재벌총수의 경제범죄 봐주기식 판결은 장기적으로도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1월 26일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 1심 선고 이후에도 국민연금의 손해배상촉구 등 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며, 1월 30일(화)에는 1심 선고 판결에 대한 평가좌담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날 기자회견 사회는 신동화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선임간사가 진행했고,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이승희 경제개혁연대 사무국장,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김종보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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