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9일 고 이선균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관계인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변 사법센터는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고 이선균 배우(이하 고인)가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한 일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피의사실공표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목을 끌만한 사람이 관련된 경우 혐의사실과 수사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극장식 수사’가 잦아졌고, 더불어 그 폐해가 커졌다”고 질타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현 정부의 마약 범죄 강경 대응이라는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인권을 저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고인의 사망 하루 전에는 명백히 ‘피의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어떻게 마약을 흡입했는지에 대한 관련자의 진술과 고인의 진술)이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됐고, 사건과 무관한 고인의 통화내용 등 사생활까지 공개됐다”며 “수사기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외부에 알려지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한편, 사건관계인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경찰 수사공보 규칙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는 수사기관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관계인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 종사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형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지난 검찰과거사위원회의 발표와 같이 그간 검찰은 피의사실공표죄로 단 한 번도 기소 한 적이 없어, 제 식구 봐주기식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이에 법무부는 2019년 12월 ‘형사사건의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시행해 공소제기 전의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혐의사실 및 수사 상황을 비롯해 그 내용 일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경우에도 전문공보관을 통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변 사법센터는 “윤석열 정부는 이를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위 법무부 훈령을 개정했다”며 “그 결과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은 내부 공보규정에 의해 혐의사실이나 수사 상황을 공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민변은 “법률적 근거가 전혀 없는 수사기관 내부 지침에 의해 잘못된 수사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려면 수사를 누가 하든지 간에, 누구에게든 반드시 적용돼야 하는 수사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수사절차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변 사법센터는 “여기에 더해, 지난 4월 제정된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 규칙’에 규정된 ‘자백강요 금지’, ‘무죄추정의 원칙’ 등의 기본적인 수사 원칙 역시 깡그리 무시됐다”며 “규칙 제9조는 심야조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피의자나 변호인의 요청이 있는 경우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심야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규칙 제10조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실제 조사시간이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그런데 경찰은 고인 사건과 관련하여 상당한 이유나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야조사 및 장시간 조사를 강행했다”며 “경찰은 피의자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심야 및 장시간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단순히 피의자의 요청이나 동의는 심야 및 장시간 조사의 허용 요건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고인에 대한 수사는 위법ㆍ부당한 수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민변 사법센터는 “피의사실공표죄를 실효성있게 적용하기 위한 대안이 마련될 필요도 있다”며 “피의사실이 공표된 경우 당사자가 법원에 해당 피의사실의 삭제와 공표 등 금지를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방안(법원의 피의사실공표금지명령 제도 도입), 위법하게 공표된 증거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확장) 등이 이미 학계와 국회에서 제안됐다”고 설명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더 이상 위법ㆍ부당한 수사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특히 수사과정에서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리더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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