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백화점에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1993년부터 30년 동안 고객을 응대하고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휴게시설도 열악하고 화장실도 부족하고 감정적으로 물리적으로 보호받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재숙 씨는 14일 서울 을지로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진행된 원청교섭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현장발언의 운을 뗐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김소연)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롯데백화점ㆍ면세점 본점 앞에서 ‘사용자는 책임을 다하라! 백화점ㆍ면세점 노동자는 원청교섭을 요구한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이 자리에서 전국의 백화점ㆍ면세점 노동자 3,4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 결과 노동자 10명 중 3~4명이 업무 외 시간에 백화점ㆍ면세점 관리자의 업무 연락을 받고 있으며, 10명 중 3명은 관리자로부터 ‘고객용’ 화장실 사용 자제를 권고받은 경험이 있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재숙(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대의원) 씨는 “갓 스물이 넘은 나이에 백화점에 근무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됐다”며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니 어느덧 어떻게 30년을 이곳에서 일해 왔을까. 새삼 놀랐다”고 발언했다.

“시민 여러분, 기자 여러분, 백화점이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며 물은 김재숙 씨는 “백화점 하면 명품 화장품, 가방, 의류, 시계, 명품 브랜드 생각이 먼저 든다”며 “밝은 조명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최상의 서비스와 최상의 매장 컨디션을 유지하는 그런 모습을 그릴 것”이라고 자답했다.

김재숙 씨는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시설들은 고급스럽지 않다”며 “백화점이 오픈하기 한두 시간 전, 저희는 출근하면 어두운 조명 아래 청소와 상품 정리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오픈 전이라 손님이 안 계시니 어두운지 밝은지 백화점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오픈 준비를 하다 보면, 주변이 어두워 어디 긁혔는지 상처가 나고 걸려 넘어지고 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면서 “누구 하나 크게 다치지 않은 이상 조치해 주지도 않는다”고 업장의 현실을 전했다.

또 김재숙 씨는 “에어컨은 손님들이 들어오는 오픈 시간에 맞춰져 있어서 상품을 정리하고 청소하며 오픈을 준비하는 직원들은 금세 땀에 적기 시작한다”며 “겨울에는 벌벌 떨며 차가운 물에 손걸레를 빨아오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재숙 씨는 휴게실 문제에 대한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뒤에 보이는 롯데백화점 안에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느냐”며 “1천 명이 넘을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사용할 휴게실이 얼마나 있겠냐”고도 물었다.

김재숙 씨는 “30년을 백화점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백화점에서 근무해 봤지만, ‘휴게실 전쟁’을 안 겪어본 백화점은 없었다”고 토로하며 “백화점은 보통 한 시부터 네다섯 시가 집중 근무 시간이고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해 집중하라며 휴게시설 이용을 제한하기 일쑤라서 나머지 시간대에 휴게실이 미어터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백화점 휴게실이 겨우 10명 정도의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발도 못 뻗는 비좁은 공간”이라며 “그나마 들어가기라도 하면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지만, 못 들어가면 화장실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거나, 비상계단으로 가서 쇼핑백이든 박스를 깔고 앉아서 여의치 않으면 그냥 차갑고 딱딱한 계단에 앉아 쉬게 된다”고 현실을 짚었다.

김재숙 씨는 “직원용 화장실 부근이나 직원 동선 복도에 의자에 놓여 있는 백화점이 있다. 왜 이런 곳에 의자가 놓여 있겠냐”며 “백화점도 이미 휴게시설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휴게실이 매장에서 가깝지도 않은데, 가봤자 이용하지 못하니 그냥 매장 내 창고에 의자에 놓고 쉬는 직원들도 태반”이라며 “일을 처음 시작했을 30년 전 모습과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그나마 있던 휴게시설도 창고로 바뀐 백화점도 한두 곳이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화장실은 더 한다”면서 이어 나간 김재숙 씨는 “한 층당 직원이 100명은 훌쩍 넘을 텐데 겨우 한 개 정도 있는 직원용 화장실은 매번 줄을 서게 되고, 식사 후 양치하려고 대기 줄이 복도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고, 백화점 관리자들은 직원용 화장실만 이용하라고 경고하며 페널티를 주는 지경”이라는 “이런 백화점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재숙 씨는 “수백 명의 직원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한 곳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이것이 백화점 관리자들의 경고를 받아야 하는 일이냐, 직원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충분한데 직원들이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겠냐”고 따지며 “직원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먼저 만들라고 말하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백화점이, 백화점 관리자가 나서야 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는 김재숙씨는 감정노동자의 고충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그는 “우리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객이 왕이고 갑이라고 큰 소리 내면서 원하는 대로 된다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을 많이 만난다”며 “그러다 보니 서로 감정이 상하며 고객과 마찰이 종종 일어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김재숙 씨는 “위험한 상황도 발생한다”며 “직원에게 소리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무릎을 꿇으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뉴스는 종종 접해봤을 것”이라며 본인은 “실제로 뉴스에서 물건을 직원에게 던지고 폭언한 사건 당시에 불과 몇 미터 거리의 매장에서 상황을 목격했던 당사자”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폭언을 듣는 사람이 나였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렵다”고 말했다.

김재숙 씨는 “이런 상황을 겪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직원, 파견업체 직원, 파트너사 직원 등으로 불린다”며 “근무 공간이 이곳일 뿐이지 백화점과 직접 계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은 적극적으로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뉴스에 백화점 이름이 노출될까 봐 피해 직원을 보호하는 것은 귀천이고, 가해 고객의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노력한다”면서 “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을 백화점에 매출을 올리는 도구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휴게시설도 열악하고 화장실도 부족하고 감정적으로 물리적으로 보호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 김재숙 씨는 “우리는 이곳에서 백화점의 가이드에 따라 행동하고 응대하고 백화점의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며 “그럼 백화점이 가이드를 만들어 우리를 보호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숙씨는 “백화점은 이 안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업무를, 업무지시할 뿐만이 아니라,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이 안에서 일하는 감정 노동자 모두를 보호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말로 현장발언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조은별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조직국장은 “고객만 왕이고 우리는 왕이 아니냐, 우리도 왕”이라며 “노동자가 있지 않다면 이 백화점 수조 원대 매출 누가 올려줄 것이냐”고 물었다.

조은별 조직국장은 “화장실도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고 휴게실도 제대로 갖추어주지 않는 백화점의 이런 악랄한 태도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이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강성 고객에 대한 응대, 무리한 요구, 폭언, 폭행 이런 상황들에 대해 백화점 혹은 면세점의 어떠한 책임도 져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조은별 조직국장의 선창으로 “백화점은 핑계 대기 그만두고 산별 교섭에 응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편 기자회견장에는 최대근 전국서비스노조 부위원장,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점노조 위원장,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박은주 대의원(롯데면세점 근무), 이양수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성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최창영 기자 cc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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