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021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가습기살균제 업체인 ‘애경’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을 꼽았다.

김도형 민변 회장<br>
김도형 민변 회장

민변(회장 김도형)은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해 매년 한국사회의 인권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인권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민변은 지난 12월 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인권보고대회를 열고 ‘2021년 10대 디딤돌ㆍ걸림돌 판결’을 발표했다.

이날 한국인권보고대회는 민변 사무총장 조수진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진행하는 민변 사무총장 조수진 변호사
진행하는 민변 사무총장 조수진 변호사

민변 ‘디딤돌ㆍ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 위원장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인 이상희 변호사가 맡았다.

선정위원(10명)은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임용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박은정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현진 경향신문 기자, 조수진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안지희 변호사(민변 사무차장), 강문대 변호사(민변)가 참여했다.

2021년 디딤돌ㆍ걸림돌 판결은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선고된 판결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디딤돌 판결 후보로는 45건, 걸림돌 판결 후보로는 27건이 추천됐다.

민변이 선정한 2021년 디딤돌 판결, 걸림돌 판결

2021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는 가습기살균제 가해업체 애경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무죄판결이 불명예 선정됐다.

그런데 민변은 “2021년을 상징하는 판결을 선정하는 자리인 만큼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법원의 반성이 부족함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헌법재판소의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 각하 결정’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민변은 또 “법원이 사법적 판단을 내리고 고유의 지위를 이용해 여전히 자의적ㆍ독단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각하 판결’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전했다.

이날 디딤돌ㆍ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안지희 변호사와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가 발표했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 [걸림돌 판결] CMIT/MIT 사용 가습기살균제 업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

안지희 변호사는 “올해 최고의 걸림돌 판결로는 정말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가습기 살균제 가해 업체인 애경에 대해서 선고된 무죄 판결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안지희 변호사는 “이 판결은 환경 사건의 특성인 장기 누적성, 광역성, 정보의 편중성, 이익과 손해의 일방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안인데, 법원이 동물실험 결과에 지나치게 증거 가치를 부여하고, 또 과학적 해석 방법의 특성으로 인해서 전문가들의 증언이 단정적일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 인과관계 추정을 부인해서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적 구제를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또한 현대 산업사회에서 유해 화학 물질에 대한 기업의 사전 배려, 사전 예방 원칙에 대한 주의의무를 경감시켜주는 판결로, 향후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에 대한 우려 또한 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안지희 변호사는 그러면서 “이처럼 사회적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 [걸림돌 판결] ‘사법농단’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를 각하한 헌법재판소 결정

안지희 민변 변호사

안지희 변호사는 “사법농단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각하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고 제시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이 결정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형식 논리에 매몰돼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소추 심판을 할 수 있는 중대한 헌법적 사안에 대해서 판단을 회피함으로써 헌법질서 수호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 [걸림돌 판결] ‘이루다’에 의한 인권침해와 차별 진정을 각하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박은정 교수는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에 의한 인권침해와 차별 진정에 대한 국가인권회의 각하 결정이 걸림돌로 선정됐다”며 “판결은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좀 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줄 것이 기대됐는데, 그러하지 못해서 실망을 줬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교수는 “이건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인격체가 아니며 챗봇을 관리하는 회사에서도 당사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봐 각하를 했는데,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그리고 차별이라는 주제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인권위원회 결정이긴 하지만 걸림돌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 [걸림돌 판결] 세월호참사 해경 ‘지휘부’ 책임자들 무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안지희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 책임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걸림돌로 선정됐다”며 “이 판결은 세월호 참사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구조 지시를 내리는 해경 지시부의 책임을 너무나 협소하게 인정해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피고인들에게 면죄부를 줬고, 또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 [걸림돌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손해배상청구 각하한 서울중앙지법 판결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박은정 교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각하한 판결이 걸림돌로 선정됐다”며 “이 판결은 이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법리에 반해 이루어진 판결로써,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했기 때문에 걸림돌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 [걸림돌 판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근로자측에 있다는 기존 법리를 유지한 대법원 판결

안지희 변호사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 책임을 업무상재해로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부담한다는 기존 법리를 유지한 대법원 판결이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선정 이유는 노동법 전문가인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박 교수는 “걸림돌 판결을 선정할 때 사실 가장 먼저 제가 선택했던 판결 중 하나였고, 아주 큰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교수는 “2007년 산재보험법 개정 당시 입법자의 의사는 업무상 재해에서 상당인과관계에서 증명 체계를 제한해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회사 측에서 있다는 사실을 해석할 수 있는데, 이 판결은 입법자 의사에 따라서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4명 대법관 반대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판례 법리를 고수해 상당인과관계 체계를 여전히 하고 있어 걸림돌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은정 교수는 “의학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업무상 질병에서의 의학적 인과관계의 업무상 규명이라고 하는 문제가 개인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대법원 판결을 지적했다.

◆ [걸림돌 판결] ‘장신대 무지개 사건’ 부당징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전부 기각한 서울동부지방법원 판결

안지희 민변 변호사

안지희 변호사는 “장신대 부당징계에 대한 손해배상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걸림돌로 선정됐다”며 “이 사안에서 학교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했다는 이유로 명백하게 무효라고 징계처분을 했고, 법원의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도 외면했다”고 밝혔다.

안지희 변호사는 “징계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도 일삼았는데, 이 판결에서 이러한 성소수자 차별적 혐오적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걸림돌로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걸림돌 판결]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한 건설허가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한 서울고등법원 판결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박은정 교수는 “절차 및 안전에 대한 평가상 하자로 인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취소를 했지만, 이를 기각한 판결이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박은정 교수는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서에 중대 사고로 인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및 수렴 결과가 기재되지 않아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질 안전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닌 원고들에게 전가시킨 판결로써 원자력 발전소 사업 지지의 안전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 [걸림돌 판결] 미비한 통역 등에도 불구하고 난민신청자에 대한 출국명령이 적법하고 본 서울고등법원 판결

안지희 변호사는 “미비한 통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신청자에 대해서 한 출국 명령이 적법하다고 판결한 서울고법 판결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안지희 변호사는 “이 판결은 원고의 한국어 실력을 너무 형식적으로 판단해서 실질적으로 행정절차법이나, 국제인권법의 절차적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 [걸림돌 판결] 제주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의 허가취소가 정당하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한 광주고등법원 판결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박은정 교수는 “제주 영리병원 허가취소 처분이 정당했다고 본 원심 판결을 번복한 항소심 판결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박은정 교수는 “이 판결은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내국인 대상으로 한 영리병원이 의료공공성을 헤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국인을 배제하고 허가 조건을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해서 정당한 허가 취소를 적법하고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리병원의 추진을 사실상 허가한 판결로써 부당하다는 점에서 걸림돌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한편, 안지희 변호사는 “격론을 거쳐서 디딤돌 판결 10개와 걸림돌 판결 10개 그리고 최고의 디딤돌 판결, 최고의 걸림돌 판결을 선정했다”며 “안타깝게도 10대 판결에 선정되지 않은 판결들이 있었다”며 아쉬운 판결들을 소개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디딤돌 판결 후보로는 삼성 어용노조 설립 무효 판결이 있었고, 또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복조치 이른바 르노삼성 책임자 유죄 판결이 디딤돌 판결 후보에 올라왔다”고 밝혔다.

안지희 민변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또한 걸림돌 판결 후보로 박은정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있었고,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판결,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 혀 절단 정당방위 성폭력 피해자 재심청구 기각 결정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민변의 걸림돌 판결 후보

민변은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의 직권남용죄 등 무죄판결 및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에 대한 연이은 무죄 판결 등에 대해서는 당해 판결이 주로 사실관계의 인정과 관련된 사항으로 법리적으로 쟁점이 부각되는 사건이 아니어서 최종적으로 걸림돌 판결에 선정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에 처음으로 디딤돌ㆍ걸림돌 판결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가 밝힌 소감이 숙연하게 했다.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박은정 교수는 “특히 변희수 하사 사건 판결을 만장일치로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발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며 “다만 앞에 고(故)라는 단어를 붙여서 이 판결을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은정 교수는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미 고인이 된 변희수 하사에 대한 강제전역 처분 취소를 판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며 판결문 내용을 전했다.

“성 정체성의 혼란 또는 성 불일치에 성 전환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사건의 동일한 처분으로 위법한 사건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사건의 위법성은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 통제, 국민의 권리 구제 확대 등의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은정 교수는 “이번 디딤돌 만장일치로 됐던 변희수 판결은 변희수 하사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법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이런 판결을 자주 만나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도형 민변 회장<br>
김도형 민변 회장

이날 인권보고대회에서 김도형 민변 회장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도형 회장은 개회사에서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ㆍ개혁ㆍ진보세력은 더불어민주당에게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수를 확보해 주었지만, 촛불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보수 기득권 세력의 눈치만 보면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민변 사무총장 지낸 조영선 변호사<br>
민변 사무총장 지낸 조영선 변호사

또한 이 자리에서 한국인권보고대회 준비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가 ‘2021 인권상황 총괄보고’를 했다.

총괄보고에서 민변은 “검찰총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검찰의 피라미드식 위계질서가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권 행사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지 경험했다”고 사실상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했다.

총괄 보고하는 조영선 변호사<br>
총괄 보고하는 조영선 변호사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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