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박정희 정권에 부역한 사법부가 있었기 때문에 긴급조치가 유신체제를 떠받칠 수 있었는데,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는 또 다시 박근혜 정권에 부역하기 위해 사실상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정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긴급조치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이 1412건에 이르는데, 이 변호사는 “인권의 최후보루인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국가폭력을 승인한 건수”라며 “사법부가 긴급조치와 같은 국가범죄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상희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변호단에서 활동해 온 이상희 변호사는 5월 16일 국회 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린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토론회”에서 ‘긴급조치 판결의 문제점과 과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면서다. 이 토론회는 박주민 국회의원실, (사)긴급조치사람들, 민청학련동지회, 민변긴급조치변호단이 공동주최했다.

주제발표하는 이상희 변호사
주제발표하는 이상희 변호사

먼저 ‘긴급조치’는 1972년 제정한 유신헌법을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제1호~제9호까지 발령했던 특별조치다. 긴급조치를 통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됐다.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제1ㆍ제2호 공포. 헌법 부정ㆍ반대ㆍ개정ㆍ폐지 주장 등 일절 금지하고, 위반 시 영장 없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가능했다. 긴급조치 위반에 대한 재판은 군법회의에서 실시했다.

1974년 4월 3일 긴급조치 제4호가 공포됐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련 가입ㆍ활동 등 모든 행위 금지. 학교 내외의 집회ㆍ시위ㆍ농성 등 일절 금지. 위반자는 최고 사형이 가능했다.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제9호가 공포됐다. 집회ㆍ시위,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ㆍ반대, 개정ㆍ폐지 주장 등 일절 금지하고, 이 조치에 따른 명령ㆍ조치는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상희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

주제발표에서 이상희 변호사는 “긴급조치는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으므로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긴급조치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은 유신체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정희의 긴급조치권 발동이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국가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유신체제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다고 애써 역사의 진실에 눈을 감고 있는 사법부의 무책임을 변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긴급조치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로서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돼 사실규명과 피해구제의 관점에서 논의된 것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립된 이후부터이고, 2007년 1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1412건의 판결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할 때인데, 언론은 긴급조치의 야만성이 아니라 판사 명단의 공개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법부의 과거사청산에 대해 사법부와 우리사회 모두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이와 관련된 논의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일단락 됐다. 그러나 긴급조치 담당 판사의 명단 공개로 촉발된 사법부의 책임 논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0년 12월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해 위헌ㆍ무효를 선언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2010년 12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해 “위헌ㆍ무효”를 선언했고, 대법원은 2013년 4월 18일 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대법원은 2013년 5월 16일 긴급조치 제4호에 대해서도 잇따라 위헌ㆍ무효를 선언했다.

발표하는 이상희 변호사, 토론회 사회를 진행한 (사)긴급조치사람들 이대수 사무국장

이상희 변호사는 “이 판결의 중요한 의미는 박정희의 긴급조치권 발동이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긴급조치도 국가의 위기상황과 무관하게, 종신집권을 위해 헌정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떠받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폭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2013월 5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재심 결정의 증명력을 다투고,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의 기간을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판결(2012다202819)을 한 것을 비롯해 이후 대법원의 일련의 판결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1월 22일 과거사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다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는 판결(2012다204365)을 하고, 2015년 4월 17일 대법원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으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는 판결(2014다234155)을 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국가범죄에 대해 국가의 법적 책임을 부정 또는 제한하는 후퇴된 판결을 했다”며 “대법원은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처음에는 긴급조치 발동에 대한 판단은 회피하고 집행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고의ㆍ과실’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긴급조치의 규범력을 인정하고 긴급조치 집행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4년 10월 27일 판결(2013다217962)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해 영장 없는 체포ㆍ구속 등의 긴급조치 집행에 대해, 긴급조치가 당시로서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이를 따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 국가의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법의 형식에 따른 불법은 모두 면책이 되고, 피해자 구제는 불가능하다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그러나 이는 실질적 법치주의에 명백히 위배되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에도 반하는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해 2015년 2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판결(2013가합10678)에서 “위헌성이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인 긴급조치가 발령되고 그에 따른 집행이 이뤄졌다면, 집행과정에 관여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종사자들인 개별적 공무원들의 고의ㆍ과실이 개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국가의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 경우 국가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논리 아래 규범의 제정에서 중대ㆍ명백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그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무과실을 이유로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는 현대 민주국가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대법원은 2015년 3월 26일 판결(2012다4824)에서 긴급조치 발동에 대해서도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불법행위 책임을 부정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위 판결들 모두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해석이 아니라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현저히 저해하고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법해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 모두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로 열거됐다”며 “다른 사건도 아니고 ‘국가범죄’라는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공권력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판결이 선고됐다는 건, 말 그대로 법치주의의 실종”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이상희 변호사에 따르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실위원회가 입수한 판결문 1412건 중 1심 판결이 589건, 항소심(2심) 판결이 522건, 상고심(대법원)이 252건이다. 1심 판결 중에서 긴급조치 1ㆍ4호 위반이 36건, 긴급조치 9호 위반이 554건, 인원은 97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변호사는 “이 판결의 숫자는, 인권의 최후보루인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국가폭력을 승인한 건수”라며 “박정희 정권에 부역한 사법부는 국가폭력의 공범자로서 당연히 사죄를 하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피해자를 구제할지 말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력을 다해 법 논리를 개발해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며 “그것이 헌법 제10조가 부여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그런데 양승태 체제에서 사법부는 또 다시 박근혜 정권에 부역하기 위해 사실상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정했다”며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해 사전에 긴급조치 판결과 교감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청와대와의 교감 여부를 떠나, 긴급조치와 같은 국가범죄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긴급조치 사건들이 선고될 때마다 많은 피해자들과 법전문가들은 정말 논리적이지도 않고 법적 안정성을 완전히 해하는 그런 판결들에 대해 분노도 했다가 실망도 했다가 정말 너무 힘든 시간들을 버텼는데,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런 사건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청와대의 국정운영에 협력하려는 그런 (재판거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결국 이런 판결들이 왜 나왔는지 아직 진상규명된 것 없지만 그런데 사실 대법원의 이런 사법농단과 관련해 특별조사보고서를 확인하고 그 사법농단에서의 재판의 당사자들이 사실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라는 게 많이 힘들었다”고 민변긴급조치변호단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심 시절 상고법원 설치 등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 의혹 즉 사법농단으로 현재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상희 변호사는 “특히 이 과거사사건의 경우에는 다른 사건과 달리 가해자의 주체가 공권력이라는 것이다. 공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국가책임을 묻는 건데 그런 사안에 대해서 청와대 협력사례로 이 (긴급조치 판결) 사례가 들어갔다는 것은 사법부가 헌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게 아니가”라고 질타했다.

이 변호사는 “사법부 과거청산과 함께 기조(긴급조치)도 다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최근에 나온 하급심 판결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신체제 자체, 유신헌법이 만들어진 과정, 거의 내란죄에 준하는 사실에 대한 전혀 인식이 없이 판결이 이뤄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저희가 법원을 통해 피해자 구제도 계속 얘기해야 되겠지만, 또 한편 유신체제에 대한 진실규명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강창일 국회의원이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토론회는 (사)긴급조치사람들 이대수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주제발표는 이상희 변호사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전화기의 사법정의 수립을 위한 인권법과 국제법적 조치들’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이탄희 변호사와 권혜령 박사

토론자로는 판사 출신 이탄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판 공감)가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방안의 모습’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긴급조치사건 담당조사관을 역임한 권혜령 법학박사가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방안과 사법불신 청산’에 대해 발표했다.

토론회 후반부에는 긴급조치 등 피해자 진술이 있었다. 특히 긴급조치 피해자인 송병춘 변호사가 두 번의 옥고를 치르며 4년간 옥살이한 피해사례를 전했다.

송병춘 변호사
송병춘 변호사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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