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원장은 변호사시험의 개선 문제로 암기 위주의 판례 출제를 꼽았고, 특히 합격인원을 정해둔 상대평가 방식이 아닌 일정수준이 넘는 응시자들은 모두 합격시키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변호사자격증 부여가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이사장 김순석)가 로스쿨 도입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5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개최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서서다.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원장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원장

이날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개선방안’을 발표한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원장은 “변호사시험은 과거 사법시험 때와 똑같이 법조문과 수많은 판례를 모두 암기하는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출제되고 있다”며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만 개가 넘는 판례를 외워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과목마다 판례의 결론만 촘촘히 나열된 요약서의 이름으로 10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수험서를 보고 있다”며 “판례에 대한 비판적 창조적인 생각은 암기에 방해가 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명순구 원장은 “로스쿨 학생은 처음 한두 학기를 거친 후 자신의 학교 성적에 따라 이른 취업이 되거나 로클럭(law clerk, 법원 재판연구원), 검찰로 진출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대다수 학생들은 학교교육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오로지 변호사시험의 효율적 대비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고 전했다.

명 원장은 “변호사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로스쿨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학교나 크게 다르지 않다”며 “판례 결론 위주의 단순한 출제는 로스쿨이 원래 목표로 하던 학습을 진행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개별 교수들의 고유한 강의방식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스쿨 시대를 맞아 종전과 다른 형태의 강의를 개발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을 대상으로 묻고 답하는 실전교육을 시도했던 모든 교수들은 이제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명순구 원장은 “사실상 로스쿨 학생들의 교육은 평준화된 상태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정규수업 밖에서 변호사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전국 고등학교의 수준이 사뭇 달라 불공평한 교육의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에 EBS에서 출제를 하는 대입시험의 모습과 겉으로 보면 비슷하다”고 짚었다.

그는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공통자료로 시험을 치르는 대입시험은 각 고등학교의 수준 차이를 긍정적으로 보완하는 기능을 하는데, 각 로스쿨의 수준과 동떨어진 지금의 공통된 시험준비는 전면적인 법학의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명 원장은 “현재의 변호사시험은 변호사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라기보다는 사법시험과 같은 형태로서 합격률이 높은 시험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며 “그리고 이와 같은 점이 로스쿨 제도 및 로스쿨 출신 법조인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명순구 원장은 “합격률 문제는 변호사시험을 둘러싼 모든 논의사항 가운데 가장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 25개 로스쿨과 소속 학생들은 꾸준히 합격률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반면에 많은 사회구성원들은 일정한 법률가들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합격률을 높이는데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기존 법조인들은 오히려 합격인원을 줄이지 않으면 법조시장이 공멸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5회 응시를 하고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응시자격이 박탈되므로 고시낭인의 문제는 해결됐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매우 다양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로서 과거 고시원에 기거하면서 10년 가까이 고시생으로서 시간을 보냈던 이른바 ‘고시낭인’과 변호사시험에 낙방해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의 문제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사법시험 낙방과 달리 변호사시험 낙방은 자체로 이미 알려지기 원하지 않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진다”며 “그러므로 이른바 ‘낭인’의 문제는 지금이 과거에 비해 결코 덜 심각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명 원장은 “합격률은 변호사시험 방식의 변경이 핵심이다. 판례 암기가 아니라 진짜 법적인 논증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시험으로 바뀐다면 합격자가 2000명이어도 불만을 가질 일반인들은 없을 것이며, 합격자가 1000명이어도 수긍하지 못할 수험생이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변호사시험은 이른바 ‘평소실력’을 묻는 시험이 아니라 방대한 판례의 결론을 암기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라고 거듭 ‘판례 암기’를 지적했다.

명순구 원장은 “변호사시험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로스쿨 안팎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그 어느 하나 온전히 해결할 수가 없다”며 “개선해야 할 많은 점들 중에서 하나의 문제만 꼽는다면, 단연 판례의 단순한 결론만을 암기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출제된다는 사실”이라고 꼽았다.

명 원장은 “수험생들은 시험에 닥쳐서 만 개에 육박하는 판례를 머릿속에 억지로 입력시키고 시험장에 들어간다”며 “그 내용을 한꺼번에 시험지에 털어놓은 다음, 시험 직후에는 그 많은 양의 판례는 머리 용량의 한계에 따라 눈 녹듯 없어져버린다. 이것으로 변호사시험은 끝나고 곧바로 법조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변호사시험 개선에 관한 주제는 ▲자격시험화 ▲합격률의 재조정 ▲선택법과목 폐지 또는 개선 ▲응시횟수 제한과 예외 ▲시험장소 문제 ▲과목 개편 등 다양하다”고 제시했다.

명순구 원장은 “현재 변호사시험의 주류는 대법원 판결의 결론을 암기해 재생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는 과거 사법시험과 동일하다. 양자가 대체로 동일한데, 다만 사법시험의 합격률은 3%이고,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은 대략 50%다. 이로 인해 변호사시험을 거친 법조인들의 실력이 과거에 비해 못 미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봤다.

명 원장은 “현행 변호사시험제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단연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합격률에 대한 것”이라며 “명실상부하게 자격시험화 하는 것이 변호사시험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 출발점이고, 합격률 문제에 대한 수정 없이 다른 부수적인 문제점들을 개선한다고 한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변호사의 과잉공급을 걱정해 선발인원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변호사협회 등 관련 단체의 주장은 기존의 법학교육, 법조인 선발 제도의 문제 등을 극복하고자 도입한 법학전문대학원 및 변호사시험의 이상적인 법조인 양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달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명순구 원장은 “합격인원을 정해두고 이에 맞추기 위해 상대평가를 하는 방식으로는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꾸어 일정수준이 넘는 응시자들은 모두 합격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명 원장은 “상대평가는 로스쿨 교육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 동료를 이겨야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는 현실은 사회가 기대하는 법조인의 형상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며 “절대평가 방식으로 변호사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것이 합격자수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 되어선 안 된다. 변호사시험을 출제하는 자와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합의된 합격기준을 마련해, 그 점수를 획득하는 자가 합격하도록 하되, 비록 합격기준을 넘는 응시자가 지금의 50%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을 유지해 그 만큼만을 선발해야 한다. 해에 따라 80%가 넘는 학생들이 합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순구 원장은 “판례 암기의 능숙도로 승부를 가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며 “암기 위주의 변호사시험 준비는 로스쿨 학생들의 육체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극한에 이르게 만들고 학교교육을 왜곡시켜 로스쿨 내 구성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더 나아가 법조인의 전반적인 수준을 저하하면서 건전한 법률문화를 해치는 원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명 원장은 “변호사시험이 과거 사법시험에 비해 단순하고 쉽다거나 합격률만 높다는 것 또는 자격증을 남발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로스쿨 졸업생들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방법으로서 시급한 대책으로서 변호사시험 출제대상 판례의 수를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궁극적인 대안으로서 수험생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까지 포괄적으로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김순석 이사장, 법무부 박상기 장관과 이용구 법무실장, 대한변호사협회 이찬희 변협회장, 오수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법학적성시험 출제위원장,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법실련) 회원들 등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특히 서울대 로스쿨 장승화 원장, 제주대 로스쿨 오성근 원장 등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들이 참석했다.

축사하는 박상기 법무부장관
축사하는 박상기 법무부장관

이 자리에서 축사에 나선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기준과 응시제한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라며 “(로스쿨) 도입 취지와 도입 이후의 변화된 상황 등을 고려해 단기적으로 가장 적합한 합격자 결정 기준이 무엇인지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승준 충북대 로스쿨 교수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제고를 위한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제도의 개선방안’을, 명순구 고려대 법전원장이 ‘법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개선방안’을, 조소영 부산대 로스쿨 교수가 ‘로스쿨의 균형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종합토론에는 김인재 인하대 로스쿨 교수와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 문상연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과장, 오현정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장승주(변호사시험 3회) 아주경제 기자, 박은선 오마이뉴스 기자, 이석훈 전국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회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