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장애인의 ‘이동’과 관련해 서울행정법원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 평등권” 등을 강조하며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판결이 나왔다.

특히 재판부는 판결문 서두에 우리 공동체의 ‘사회계약’에 대해 판시하면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전향적인 시각을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가 밝힌 사회계약부터 살핀다.

“우리 공동체의 ‘사회계약’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체결된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가 존엄한 주체인 동등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공동체와 헌법질서를 세웠고, 그에 따라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허용될 수 없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 헌법은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계약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서사를 무시하지 않고, 가능한 한 개인의 ‘역량의 창조’를 최대한 도움으로써 각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우선시 되도록 하는 가치질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 한사람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 같으니,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해 배분되는 공동체의 자원이 가급적 적었으면 좋겠고, 그 자원이 쓰이더라도 자원 사용 대비 효율성이 높은 쓸모 있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장애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자녀, 가족,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상호의존적 공동체라는 생각에 그 가치 기반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자랑스러운 사회계약의 내용이라고 봄이 타당합니다”

먼저 A씨는 뇌병변장애 및 지적장애를 판정받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이다. A씨는 2020년 12월 관할 구청장에게 장애인보조기기 전동휠체어 지원을 신청하면서, 보조기기(수동ㆍ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 처방전, 의무기록 사본증명서 등을 제출했다.

그런데 구청은 ‘2021 의료급여사업안내 지침’을 근거로 A씨가 지적장애가 있으므로 신경과 병원에서 지능검사를 다시 받아 결과를 제출하라고 했다.

A씨의 신청과정을 대리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는 전동휠체어 지원을 신청하면서 제출한 서류에 이미 지적능력에 관한 담당의사의 소견과 판단이 있으므로 처방전만으로 지원신청을 받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구청은 “A씨의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또는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지적장애가 있어도 전동휠체어를 스스로 작동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담당의사의 소견이 필요함을 안내드립니다”라고 통지했다.

A씨는 “의사 소견서 제출을 요구한 안내는 대외적 구속력이 있는 법규명령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거부처분을 할 수 없다”며 “소견서 추가제출 필요를 이유로 거부처분은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특히 “전동휠체어를 보조금 없이 구입할 경우 인지기능 검사를 요하지 않는 점, 원고는 활동지원사의 일상생활 지원을 받고 있어 본인이 조작할 수 없더라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전동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는 점, 중증의 뇌병변장애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택에서 보내고 있는데 실내에서도 보조기기의 활용이 필요한 점 등에 비춰 보면, 거부처분은 재량을 일탈ㆍ남용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 위수현 판사, 김송 판사)는 12월 3일 A씨가 B구청장을 상대로 낸 보조기기급여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중 조작능력 관련 부분은 모법이 위임한 급여대상의 범위를 축소해 급여대상이 되는 전동휠체어를 ‘자가조종형’ 전동휠체어로 한정하고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를 여기에서 배제함으로써, 전동휠체어 자가조종능력이 있는 뇌병변장애인과 전동휠체어 자가조종능력이 없는 뇌병변장애인을 차별하고 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장애인에 대해 헌법이 특별한 보호를 선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그와 관련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보조기기법, 의료급여법 등이 다양하고 촘촘하게 제정돼 있다”고 살폈다.

재판부는 “특히 이처럼 정해진 개인의 권리를 단순히 국가재정 내지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일률적ㆍ전면적으로 제한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삽당한 합리적 이유나 근거가 충분히 제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각 개인의 개별적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헌법과 상위 법령의 해석에서 도출되는 구체적 권리의 내용을, 단순히 추상적인 국가재정 내지 예산상의 사유만을 들어 일률적ㆍ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비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자 인간 존엄의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나 생활 곤란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황’에 위협을 받는 국민에게는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조치가 이루어져야 함을 헌법이 요청하고 있다”며 “두 가지 사유가 중첩적으로 존재하는 사람, 즉 거동 자체가 어려운 중증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에 위협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특별한 보호조치가 그에 비례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보장의 내용과 정도는 개별적 장애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장애의 정도와 관련해 보면 더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와 비례해 최대한 선택의 기회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전동휠체어의 조종간(조이스틱) 조차 제대로 움직일 능력이 없는 중증 뇌병변장애인 내지 지체장애인의 경우에는 전동휠체어에 대한 의료급여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된다”며 “이에 따라 가장 낮은 수준의 보장인 일반형 수동휠체어에 대한 급여비용만을 지급받게 될 가능성만 남을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동휠체어의 조종간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하여,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인 ‘이동’에 대한 욕구가 더 적을 리 없다”며 “오히려 평생을 누워만 지내야 하는 장애인일수록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가 더 강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살폈다.

그러면서 “이처럼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해 보조기기를 청구할 권리는, 노령연금 등 사회연금이나 금전적 형태로 생활을 보조하는 생활보장적 급여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인간존엄 유지의 최소한의 중핵을 이루는 근본적 권리”라며 “이것은 단순한 편익의 제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고 봤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중증장애인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바로 ‘돌봄’의 문제”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중증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돌봄과 조력이 필요하다”며 “결국 해당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교부받거나 그 비용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그 장애인에 대한 ‘가족의 돌봄’이나 ‘사회적 돌봄’의 성고 여부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의료급여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인이라면 그와 함께 하는 가족들 역시 경제적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전동휠체어조차 스스로 조작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어디론가 ‘이동’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 터인데, 이 부분을 사실상 짊어지고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가족들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국 전동휠체어 관련 급여 제공은 단순히 장애인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 및 그 개인의 삶의 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공동체 전체의 존엄성 유지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 유지 문제와도 연결된다”며 “헌법과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보조기기법 등 장애인 관련 법령, 장애인과 경제적 취약자를 보호하려는 의료급여법 관련 규정이, 과연 ‘가족 전체 삶의 고담함’을 그대로 방치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재판부는 “최중증 장애인들은 돌봄노동 종사자들로부터 늘 가장 선택받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며 “여기에 전동휠체어마저 제공되기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은 실제로는 돌봄노동인력의 선택을 받지 못함에 따라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는 ‘사회적 돌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 존엄의 최소한의 지지선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 규정내용에 따라 달리 취급되는 ‘전동휠체어 자가조종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모두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 및 생활 곤란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는데 근본적인 위협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며 “다시 말해, 이 사건 준용구정들 및 서식은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의 정도가 더 중해 전동휠체어조차 혼자 조작할 수 없는 장애인을 차별 취급함으로써, 해당 장애인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유지의 기본적 전제 자체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 사건 준용규정들 서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심사척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또한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 중 전동휠체어 자가조종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짚으며 “헌법의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중 전동휠체어 급여대상자를 조작능력 관련 부분 적합자로 제한하면서도 별도로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에 대한 급여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부분은, 전동휠체어를 혼자 조종할 수 없는 장애인의 기본권 내지 권리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설령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이 전동휠체어 자가조정능력 없는 장애인을 전동휠체어 급여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국가재정 및 사회적 부담능력의 적정한 유지’를 입법 목적으로 한 차별취급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일률적ㆍ전면적 차별취급은 과도한 것으로서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차별금지는 우리 법체계 내 확고히 정립된 기본질서이고, 이러한 기본질서에 따르면 장애의 정도가 더 중한 장애인에 대한 보호 필요성은 더 높다고 봐야 한다”며 “게다가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이, 경제적 빈곤의 문제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점에서도 보호대상이 되는 장애인으로서 전동휠체어조차 자가조종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중해 보호필요성이 훨씬 더 높은 장애인을 전동휠체어 급여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것은 우리 법체계에ㅓ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장애인 이동권의 헌법적 의미와 전동휠체어가 다채로운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아무런 고려나 성찰 없이 장애인에 대해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를 급여 대상에서 일률적ㆍ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어떠한 합리적 설명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별히 가족조차 없는 중증장애인은 돌봄 노동을 구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심지어 현물로도 교부ㆍ대여가 가능한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에 대한 급여비용 지급 필요성에 대해 아무런 고려도 없이 일률적으로 이를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있는 법령 및 고시규정은 헌법과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ㆍ침해한다고 봄이 타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의 차별취급을 통해 국가재정의 적정성을 일부 도모할 수 있더라도, 이런 차별로 인해 생활이 곤란하고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장애가 중한 장애인의 존엄성 유지ㆍ실현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모두 결과적으로 중대하게 제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이와 같은 기본권 제한 정도는 국가재정의 적정한 배분이라는 공익에 비해 현저히 크다”고 지적했다.

또 “게다가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의 차별취급은 의료급여법의 적용대상이 될 정도로 이미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본인과 가족들 삶의 고단함을 경제적 측면에서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써, 장애인의 삶을 둘러싼 이간존엄의 기본 전제조건들을 더욱 더 침식하게 되므로, 이 점에서 보도라도 기본권과 법령상 보장된 권리 보장을 뒤로 물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이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를 급여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면서 별도로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에 대한 급여를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부분은 차별취급의 합리성과 비례성 모두를 갖추지 못했고, 이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정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보호의무 규정에도 위배되며, 그와 관련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 평등권 등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준용규정들 및 서식 중 전동휠체어 자가조종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부분은 평등원칙 등에 반하는 등으로 위헌ㆍ위법해 무효”라며 “따라서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와 관련해 원고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등을 특히 침해하고 있는 이 사건 ‘안내’에 따라 원고의 급여신청을 거부한 처분 역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진료소견으로도 전동휠체어로 이동 및 보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기재했음에도, 구청은 적법한 이유 제시 없이 법령에 위반해 원고의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을 했다”며 “따라서 원고가 지급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전제로 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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