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7일 “대법관 하드디스크 디가우징은 법률과 지침 위반”이라며 “대법원의 수사 비협조를 깊이 우려하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먼저 검찰은 6월 26일 법원행정처로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모든 데이터가 지난해 10월 ‘디가우징’ 방식을 통해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위해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대법관들의 관용차 운행일지, 법인카드 사용내역 등을 임의 제출할 것을 요구한지 일주일만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관련 규정과 통상적인 업무처리 절차에 따라 ‘디가우징’ 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컴퓨터는 ‘직무 특성상 재사용이 불가능한 장비’에 해당하므로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등에 따라 ‘완전히 소거조치’해야 하며, 종전 퇴임한 대법관들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소거조치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그러나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어디에도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소거조치’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법관 이상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위 지침 제27조의 ‘사용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것’으로 볼 아무런 지침상 근거가 없으며, 위 지침 제30조의 ‘사용불능 상태’란 같은 조항에 설시된 ‘훼손 또는 마모되어 수리하여도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이 물리적으로 사용이 어려운 장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함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퇴임으로 인한 사용불능’이라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삭제 조치가 상위법령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모든 공무원으로 하여금 업무와 관련해 생산한 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물을 보호ㆍ관리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 자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4조 및 제50조)”고 밝혔다.

또 “설령 대법원이 내부 지침에 따라 하드디스크를 소거해 왔다고 하더라도 하드디스크 내 저장된 전자문서 등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한 행위는 법률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공기록물법이 위임한 사항에 관해 대법원이 제정한 ‘법원기록물 관리규칙’ 또한 ‘각급기관은 공식적으로 결재 또는 접수한 기록물을 포함하여 결재과정에서 발생한 수정내용 및 이력 정보, 업무수행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 등을 기록물로 남겨 관리하여야 한다’고 관리의무를 규정하고 있다(위 규칙 제8조)”고 덧붙였다.

민변은 “무엇보다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 된 시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돼 추가조사가 착수되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2017년 2월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한 최초 조사가 논의되자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관련 문서 2만 4500건을 무더기로 삭제했던 행위와 같은 맥락에서 법원이 증거인멸을 위해 하드디스크를 임의로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변은 “또한 대법원이 410개 문건 파일 외에 하드디스크, 이메일 기록 등 대부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대법원장 스스로 약속한 ‘조사 자료의 제공 및 수사 협조’를 저버린 것으로서 심히 유감스럽다”며 “이는 아직도 법원 내부의 자기 보호논리에 빠져 국민의 요구에 맞서는 것으로서, 지난 대법관 13인의 오만한 입장발표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그러면서 대법원과 검찰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첫째, 대법원은 대법원장 스스로 약속한 바대로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410개 문건 파일만 원본 형태로 검찰에 제출한 것만으로 수사 협조를 마쳤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며, 검찰이 임의제출을 요구한 하드디스크와 기타 자료를 조속히 제출하여 수사에 협조하여야 한다.

둘째, 검찰은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법령에 따라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에 매진하라. 법원의 제출 거부가 계속될 경우 압수ㆍ수색 등 강제수사를 통하여 ‘재판거래’ 등 모든 의혹을 규명하여야 한다. 우리는 수사를 통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