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는 27일 법무부가 주도하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추진에 “세금을 낭비하고, 형평성을 결여한, 허울뿐인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법무부는 전날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 추진안’을 발표했다. 사형ㆍ무기ㆍ단기 3년 이상 중범죄 피의자에 대해, 수사단계에서부터 무상으로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법무부, 법원,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으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골자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인조력권의 실질화 및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현재 법무부가 추진 중인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국민의 세금을 과도하게 낭비할 뿐 아니라, 공정성과 형평성을 결여했다는 치명적인 문제점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설명자료

첫째 “구조 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돈 있는 중범죄자’에게 낭비하는 보여주기식 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봤다.

서울변호사회는 “현재 법무부가 제시한 추진안을 보면, 중범죄 피의자가 미성년자 또는 70세 이상인 자에 해당하기만 하면, 수사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며 “중범죄 피의자가 막대한 재산을 가진 고령의 자산가이든, 부유층 미성년 자녀이든, 무조건 무상의 국선변호를 제공받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변호사회는 “그리고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며 “수천억대의 사기사건 피의자도, 중산층 성범죄자도 위 연령대에만 해당하면 수사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게 된다”며 “결국, 현재 법무부가 추진 중인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경제적 자력이 충분한 중범죄 피의자들을 위해 대규모 법률구조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허울뿐인 정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수차례 공론화됐듯이, ‘형사피해자’들에 대한 국선변호사업은 정부 예산 부족으로 점차 부실해지는 실정”이라며 “그런데 법무부의 현안과 같이 ‘중범죄 피의자’들에 대한 비선별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정작 법률구조가 절실한 ‘형사피해자’들은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특히, 성폭력ㆍ아동학대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형사피해자들’의 상당수는 사회적ㆍ경제적 약자라는 점에서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그럼에도 ‘중범죄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비용 지원을 감행하겠다면, 연령과 같은 일률적인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며 “그 결과, 생활보호ㆍ의료보호 대상자에 이를 정도의 빈곤층인 경우 내지 장애인 등 조력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법률구조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변회는 “심사 역시, 변호사들이 포함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위원회에서 매우 엄격한 기준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설명자료

반면 법무부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과 관련해 전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공공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대상자는 연간 총 약 2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대상자는 미성년자, 70세 이상인 자, 농아자, 심신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와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 경제적 약자가 단기 3년 이상 법정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한 혐의로 출석요구를 받는 경우, 필요적으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된다.

또 이에 해당하지 않는 피의자라도 법령에서 정하는 요건에 따라 경제적 자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피의자의 신청에 따른 심사를 거쳐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둘째, “법무부와 법원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운영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변호인의 존재 이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법무부는 ‘기소’ 주체인 검찰을 감독하는 기관이고, 법원은 ‘재판’을 주관하고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라며 “각 역할을 고려할 때, ‘방어’를 맡는 변호인은 위의 두 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변호사회는 “그러나 현안대로라면 법무부, 법원,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으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운영하게 된다”며 “결국, 법무부와 법원이 모두 ‘변호’를 담당하는 형사공공변호인단의 관리주체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법무부는 검찰을 감독하고, 법원은 판단을 내리면서, 동시에 모두 변호 주체인 형사공공변호인단까지 감독하게 되는 모순적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변호인은 수사 및 재판과정에 놓인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필연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수사 및 기소기관, 그리고 법원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법무부와 검찰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관리 주체로 참여하게 될 경우, 형사 절차 자체가 공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국선변호 제도의 취지마저도 몰각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설명자료

이와 관련 법무부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국가 차원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관리ㆍ감독을 통해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사업 운영에 대한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면서도 개별 변호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주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법원과 변협 등 유관기관과 국민들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운영에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셋째, “법률구조의 질적 수준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부정적으로 봤다.

서울변호사회는 “비선별적 지원을 전제로 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가 시행될 경우, 당연히 한 건당 투입되는 예산은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며 “그 결과, 생업에 종사하는 변호사들은 정당한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국선변호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조력의 질적 수준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이처럼 법무부가 주도하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선택과 집중’으로 실질적인 구조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법률구조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수사기관 출석 시 심리적으로 위축돼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변소하지 못하는 사회적ㆍ경제적 약자에게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줌으로써, 피의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고 수사단계에서의 변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가 이루어졌다는 사정만으로, 도리어 정당하지 못한 수사 및 기소 결과마저도 합리화되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다”며 “형평에 어긋나는 비선별적 국선변호비용 지원으로 인해, 정작 법률구조 제도 자체가 형해화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법률구조사업은 변호사 개개인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며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비롯한 법률구조사업의 재편에 있어, 법률구조 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앞으로 법무부, 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등 여러 기관들과 협력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국민 법률지원 개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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