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류하경 변호사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단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변호사들 행위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10일 민변 주최의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류하경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6도21311)

이 사건이 벌어진 건 2013년 7월 24일이고, 대법원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린 건 2019년 1월 10일이니, 5년 6개월 정도 걸렸다.

류하경 변호사 등은 2013년 7월 24일 서울 중구 대한문 화단 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관련 집회에서 경찰의 질서유지선을 허물고 경찰관의 멱살을 잡는 등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5단독 한성수 판사는 2015년 10월 29일 류하경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으나,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장일혁 부장판사)도 2016년 12월 9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민변은 2013년 7월과 8월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의 자유가 짓밟히는 현실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인식하고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집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 집회의 실무를 맡았던 민변 김종보 변호사에 따르면 쌍용자동차 분향소가 강제로 철거된 다음 오로지 대한문 분향소 재설치를 막을 목적으로 바로 그 자리에 화단이 만들어졌다. 서울 중구청이 화단을 만들었는데 시청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앞쪽으로 작은 천막 한 동 정도 들어갈 공간이 남았다. 거기까지 화단으로 만들면 시민들 통행이 지나치게 좁아지기에 화단을 설치하지 못한 것으로 봤다.

그런데 경찰은 24시간 바로 그 공간을 경비하기 시작했다. 화단과 횡단보도 사이의 인도 부분은 ‘어느 누구도 통행할 수 없는’ 성역이 돼 버렸다.

이에 권영국 변호사 등 민변 변호사들은 화단 설치의 위법성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고, 경찰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성역을 없애야 한다는 목적에 문제의 그 공간에 집회신고를 했다.

그러자 서울남대문경찰서장은 민변의 집회에 대해 교통조건 제한통보 처분을 했다. 이에 민변은 곧바로 집행정지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서울남대문경찰서장의 교통조건 통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했다.

민변 변호사들은 2013년 7월 24일 예정된 시간에 집회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에도 불구하고, ‘질서유지선’이라는 명목으로 민변의 집회신고 장소에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노란색 플라스틱 폴리스라인을 세웠다.

더구나 경찰관들로 집회 장소를 채운 다음 나머지 한 뼘 공간에서 집회를 하라고 맞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은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사들과 경찰관들 사이에 서로 끌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종보 변호사는 “당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집회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경찰관들을 끌어낼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경찰이 타인의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을 제지해야 하는데,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고 있으니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에 112에 신고도 했다고 한다.

민변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신고를 했다. 국가인권위는 바로 그 다음날인 25일 “경찰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구제결정을 내렸다.

민변은 “집회의 자유를 위한 집회에서 집회 장소에 경찰이 난입해 있는 것 자체로 집회 목적 달성은 불가능했다”며 “이에 집회 참가자들이 수차례 항의했지만, 경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변 변호사들은 경찰에 항의를 했고, 이러한 이유로 류하경 변호사 등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게 됐다.

류하경 변호사(사진=페이스북)
류하경 변호사(사진=페이스북)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집회장소 내 화단 앞 플라스틱 구조물 등 물건의 배치를 통한 질서유지선의 설정이 집시법상 위법하다”고 판단해 류하경 변호사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대법원도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며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질서유지선을 설정하는 경우에는 집회 및 시위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 설정해야 하고, 경찰들이 집회 또는 시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외곽이나 그 장소 안에서 줄지어 서는 등의 방법은 집시법에서 정한 질서유지선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2013년 7월 24일과 25일 및 2013년 8월 21일 개최된 민변 집회장소 내 화단 앞 질서유지선은 집회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 설정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경찰관들이 미리 집회장소인 이 사건 화단 앞에 진입해 머물면서 그 일부를 점유한 것은 집시법상 질서유지선의 설정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찰관 배치는 집회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집시법 제24조 제3호의 질서유지선 효용침해로 인한 집시법 위반죄는 그 대상인 질서유지선이 적법하게 설정된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고, 위법하게 설정된 집시법상 질서유지선에 대하여는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이전에 집시법 위반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질서유지선은 띠, 방책, 차선 등과 같이 경계표지로 기능할 수 있는 물건 또는 도로교통법상 안전표지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경찰관들이 집회 또는 시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의외곽이나 그 장소 안에서 줄지어 서는 등의 방법으로 사실상 질서유지선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가리켜 집시법에서 정한 질서유지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보면, 이 사건 집회장소 내 화단 앞 질서유지선 설정 및 경찰관 배치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위험 발생의 방지, 범죄의 예방과 제지 등을 위한 직무수행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따라서 이 사건 집회장소 내 화단 앞 질서유지선 설정 및 경찰관 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은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11일 민변(회장 김호철)은 “대법원의 판단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변호사들 행위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유의미한 판결”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변은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확정됐지만 집회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고, 이는 되돌릴 수 없다”며 “이에 경찰에 지난 집회의 자유 침해행위를 반성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과 검찰에 변호사들에 대한 무리한 기소를 반성하고 이 사건의 진짜 범죄자인 경찰을 집회방해죄로 엄중히 수사하고 기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이처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닌지, 그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척도가 바로 집회의 자유이다”라고 상기시켰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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