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도지사 지위를 이용해 위력(威力)으로 수행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정무비서는 지난 3월 5일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안희정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안희정 충남지사는 사퇴 의사를 표시하고, 3월 6일 김지은씨는 서울서부지검에 안희정 전 지사를 고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 3월 23일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후 4월 2일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으나, 법원은 “범죄 혐의를 다퉈 볼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4월 11일 안희정 전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고, 7월 27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 검찰의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안희정)이 업무상 하급자로서 수행비서인 피해자(김지은)에 대해 피고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과 도지사로서의 지위 등 위력을 행사해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저질렀고, 더불어 기습적으로 강제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반면 안희정 전 지사는 공소사실 중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 대해서 “그런 행위를 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으나, 위력의 행사 등은 없었다”는 것이고, 또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 자체가 없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접촉은 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진=블로그)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진=블로그)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피감독자 간음ㆍ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ㆍ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의 개념에 관한 사회적으로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고려하되, 법적 판단에서는 죄형법정주의 등 원칙을 준수해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점과, 증거 판단 시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가 필요함을 전제로 판단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는 등 상호 지위상 위력관계인 점은 인정되나, 피해자의 진술 등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에 대해 간음, 추행행위를 가했다고 볼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강제추행(기습추행)에 관하여도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해서 사안을 보더라도 이른바 ‘NO Means No rule’이나 ‘Yes Means Yes rule’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법제 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안희정 전 지사의 혐의는 뭔가?

검찰의 공소사실 내용을 보면 피감독자 간음 4회.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 8월 13일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의 간음, 9월 3일 스위스 호텔에서의 간음, 2018년 2월 25일 서울 마포의 오피스텔에서의 간음이다.

또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2017년 11월 26일 카니발 차량에서의 추행.

여기에다 강제추행은 5건. 2017년 7월 29일 러시아 요트에서 허리를 감싸고 안음, 8월 10일 KTX에서 입맞춤, 8월 12일 호프집 공중 화장실 앞에서 껴안고 입맞춤 등, 8월 16일 식당룸에서 껴안고 입맞춤, 8월 중 혹은 말에 충남도지사 집무실에서 포옹 등이다.

이 사건의 주요쟁점은 ▲업무상 위력이 존재했는지 ▲위력을 행사했는지 ▲위력의 행사와 간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그로 인해 피해자(김지은)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는지 여부다.

◆ 재판부의 판단은?

재판부는 “우선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과 관련한 쟁점을 보자면, 우리 처벌 규정상 위력 관계 즉,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있는 남녀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없고,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위력이 행사되어야 하고, 행사된 위력과 간음, 추행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그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성적 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상대방 및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소극적인 의미에서 성적 침해행위를 방어하고 배제할 권리를 포함하는데, 형사법 규정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주로 후자”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여성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책임 아래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이 당연하고, 이러한 여성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해석은 오히려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고 나아가 성적 주체성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며 “즉, 여성이 상대방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했음에도 자신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결국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서, 범행 당시의 제반 사정에 비춰 위력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법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탓에, 사회적으로 ‘성폭력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가해져야 할 사회적ㆍ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가 부담해야 할 형사법적 책임(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안에서 엄격히 인정되어야 할 책임)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 그와 같은 사례가 다수 나타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대해 성폭력행위에 대한 기존의 처벌규정이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체계적 정비가 지체되고 있는 사정 등으로 말미암아 행위와 책임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런 일부 비판에 경청할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 입법부의 입법행위를 통해 성폭력 관련 처벌규정에 의한 체계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는 현행법상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각종 증거법칙에 다른 사실인정,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야 하고, 그것이 법원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한편,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는 충격, 수치심, 분노, 불신, 좌절, 무기력, 두려움, 공포 등 복잡한 심리상태를 겪는 경우가 많고,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며 “이와 같이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증거판단에 있어서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다”라고 밝혔다.

이어 “일응, 이 사건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것이고, 피해자의 저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인 위력이 직접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 사안이며,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지위나 권세 등 무형적 위력을 행사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행위나 추행을 당해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것인지 여분, 결국 피해자의 진술에 더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과 피해자의 평소 및 범행 전후의 언행과 태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범행 전후의 사정,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호소하고 대외적 공개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제반 간접사실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그 판단에 이르는 증거평가를 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 성인지 감수성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므로, 일견 피해자가 보인 범행 전후의 언행에 통념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의 모순이나 비합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느끼거나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곤경이나 수치심 혹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력의 존재 및 행사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기본적인 위력관계는 존재하지만, 피고인이 이를 상시적, 일반적으로 행사해 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죄에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도청 내에서나 피해자에 대해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기초한 위력을 일반적으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하는 등 이른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나 기타 주변 직원 등의 자유의사를 억압해 왔다고 볼만한 증거나 부족하다”며 “따라서 개별 공소사실의 상황에서 피고인이 어떠한 위력을 행사해 왔는지 개별적으로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공소사실의 판단에서 재판부는 개별 사안에서 위력을 행사해 왔는지 여부에 관해 사실상 직접적이고 주요한 유일의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인데, 여러 정황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이를 그대로 신빙하기 어려운 사정이 다수 존재하며, 그 외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 첫 간음행위인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 상황 주목

재판부는 우선 첫 간음행위인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호텔에서의 간음 상황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최초 간음행위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봐 자세히 언급했다.

재판부는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사건 간음에 이르기 전의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경위와 정황에 관해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진술의 불일치가 있고, 텔레그램 대화내용이 대부분 삭제돼 맥락이 연결되지 않으며, 그 삭제와 관련해 의심스러운 정황도 보이는 점이 있다”며 또 “피해자가 러시아에서의 피해사실을 전임 수행비서인 S씨에게만 호소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S씨와 8월초 자주 통화한 사정도 있지만 구체적인 피해에 관해 피해자가 진술했다는 것과 S씨가 들었다는 내용에도 많은 차이가 있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한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와 상당히 이야기를 나누어 교감이 형성된 다음 성관계에 이르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지만, 피해자는 달리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런데 피해자 주장에 따라 보더라도, 간음행위 전 단계에서 피고인이 행한 신체접촉이 맥주를 들고 있는 피해자를 포옹한 행위이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 행위부분을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봤다.

이어 “이에 대해 피해자는 간음에 이르기 전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해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피해자는) 피고인의 요구에 따라 피고인을 살짝 안는 행위로 나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한편,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처음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했다는 몇 시간 이후부터의 행동 즉,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샵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릴 손질을 받은 점, 피해자는 수행비서직을 수행하는 내내 업무관련자와 피고인뿐만 아니라,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의 상시적인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며 “이러한 사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단지 간음피해를 잊고 수행비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에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2017년 8월 13일 강남 호텔에서의 간음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운전비서에게 만실이 아님에도 호텔이 만실이라는 취지로 말해, (운전비서가) 다른 곳에 숙박토록 했다”며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투숙하게 된 경위, 특히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했는데, 시간, 장소, 당시 상황,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춰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별다른 반문이나 저항 없이 이에 응했다”고 밝혔다.

피해호소 사실과 관련해 전인 수행비서와의 증언 및 진술과도 배치된다고 덧붙였다.

2017년 9월 3일 스위스 호텔에서의 피감독자 간음에 대해, 재판부는 “이 당시 피해자는 이미 전임 수행비서에게 피해사실 호소를 했고 피고인이 불러도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까지 받은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며 “피해호소를 했다는 피해자와 전인 수행비서와의 증언은 객관적인 통화내역 등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건 직후 수행비서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친밀한 지인들에게 보낸 사적인 텔레그램,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피해자의 주장과 상반되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2017년 11월 26일 카니발에서의 추행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한 사정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 스스로가 피고인의 신체접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을 취했고, 그 전후 피고인 및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등 내역을 봐도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어떠한 단서들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마지막 간음행위인 2018년 2월 25일 서울 마포 오피스텔에서의 간음에 관해, 재판부는 김지은씨에 대해 많은 의문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이 미투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겁에 질렸는데, 이 상황을 피고인이 이용한 것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며 “전체 증거를 종합할 때 피해자가 전날 피고인이 출연한 (KBS) 명견마리 촬영장에 가게 된 경위, 그날 밤 대전에 있다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경위, 오피스텔에서 가나 이후 행적,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는 모두 삭제돼 있는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마지막 간음 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 준비에 들어가게 되므로 해당 텔레그램 대화는 주요한 증거가 것인데 모두 삭제돼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는 이 시점에 이미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피고인과 미투 운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뒤이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는 것이고, 수행비서도 아니고 달리 당시 심리적으로 제압을 당한 상황이라 볼만한 정황도 없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심야에 대전에서 올라올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의 적어도 피고인의 이런 행위가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으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는 그런 언행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종합하면,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에 있어서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피고인이 어떠한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이에 제압당할만한 상황이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 사건의 언론공개 및 법적 절차 등에 깊숙이 관여한 S(전전 수행비서)와 피해자가 2월 내내 단순히 업무상 연락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장시간 동안 연락을 취해왔는바, 그 경위에 의문스러운 점이 상당히 있다”고 봤다.

◆ 상화원 사건

이른바 ‘상화원 사건’은 2017년 8월 부부 동반 모임 차 보령시 죽도 상화원 리조트에 묵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안희정 전 지사의 부인 민OO씨는 지난 7월 13일 피고인 측 증인으로 서울서부지법 법정에 출석해 증언한 내용이다.

법정에서 민씨는 “오전 4시쯤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곧 김지은씨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수 분간 내려다봤다”,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남편이 ‘지은아 왜 그래’라고 하자 김씨는 ‘아, 어’ 딱 두 마디만 하고 쿵쾅거리며 후다닥 도망갔다”고 진술했다.

반대신문에서 검찰은 “김씨는 안 전 지사가 다른 여성을 만나 불상사가 생길까 봐 문 앞에서 쪼그리고 있다가 잠든 것이고,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나자 놀라서 내려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세부적인 내용에서 피해자의 증언에 모순, 불명확한 점이 다수 있고, 피고인의 처인 민OO의 증언이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설령 피해자의 진술대로라고 하더라도, 한중관계 악화를 우려해 피고인의 밀회를 막고자 피고인 부부 객실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은 수행비서 업무와 관련한 피해자 종래 입장과 상반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의 보직변경과 관련된 반응

재판부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의 보직변경을 약 2개월 전에 인지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김지은)가 정무비서가 되면서 맡은 업무는 피고인(안희정)의 행적을 정리하고 새로운 포털시스템을 구축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이고, 피고인이 직접 피해자에게 이를 설명하며 독려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보직변경 즈음에 자주 눈물을 흘리거나, 친분 있는 제3자에게 심각하게 괴로움을 호소하는 등의 반응에 더해, 수행비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소홀히 하거나, 정무비서로 간 이후 업무를 태만히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심리상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그루밍(Groomingㆍ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자행하는 성범죄), 학습된 무기력, 해리증상, 방어기제로서의 ‘부인과 억압’, 심리적으로 얼어붙음 등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모두 종합하면, 피해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부족한 점이 다수 나타나고, 그 외에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 No Means No 혹은 Yes Means Yes 의 측면

재판부는 “간음행위 당시와 관련한 피해자의 진술에 기초해서 사안을 보더라도, 이른바 ‘No means No rule’(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이나 ‘Yes Means Yes rule’(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성관계로 나아가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법제 하에서,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안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태도나 말 등에 거절하는 내심이 있었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 처벌 법제 하에서 이 사건은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가벌성이 달린 것이지 ‘피해자가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했는지’에 가벌성이 달린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미국 일부 주, 캐나다, 유럽의 10개 정도의 국가에서 위와 같은 취지의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스웨덴에서 ‘Yes Means Yes rule’이 입법화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위 처벌체계 도입 여부는 입법론적 문제이고,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 각 강제추행에 대한 판단

재판부는 “피해자는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해서도, 대체로 일관되게 증언 및 진술하고 있긴 하나,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신빙성이 떨어지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7년 7월 29일 러시아 요트에서 허리를 감싸고 안음의 강제추행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요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피고인의 추행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진술한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의할 때에도 추행의 방법이나 자세에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는 피고인이 자신의 좌석 근처로 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요트의 크기, 구조 등과 함께 당시 함께 있던 참고인들의 진술에 기초해 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2017년 8월 10일 KTX에서의 입맞춤 추행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해자는 다수의 강제추행의 점을 고소하면서도 애초 공소장에 이 부분은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검찰에서의 진술과 법정 증언이 상이하고, 유력 정치인이자 대중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피고인이 공공장소인 KTX 열차 안에서 다른 승객이 있음에도 비서의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데, 그러한 범행에 이르렀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17년 8월 12일 공중화장실 앞에서 껴안고 입맞춤의 강제추행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사건 현장인 화장실의 구조와 피해자의 증언 및 진술 간에 불일치가 있고, 동석했던 비서실장은 피해자가 피고인을 뒤따라 나갔다고 증언하고, 추행 직후 호프집에서 피해자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숙박시설을 예약하기도 했다”며 “달리 이 부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2017년 8월 16일 식당룸에서 껴안고 입맞춤의 강제추행에 대해 재판부는 “이 부분 또한 최초 고소장에 포함돼 있지 않았고, 피고인과 피해자가 그 무렵 주고받은 텔레그램 내용상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추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며 “달리 이 부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2017년 8월 중순 ~ 말경 도지사 집무실에서 포옹의 추행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 및 증언의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며, 구체적인 일시나 추행의 방법 등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며 “달리 이 부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각 강제추행의 부분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더욱이 피해자 진술과 같이 업무상 상하관계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추행이라면,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이 ‘기습추행’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어느 모로 보더라도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다”고 판단했다.

◆ “권력형 성폭력 추방과 사회적 연대활동은 십분 공감, 하지만...” 재판부 고충

한편, 재판부는 “관행화, 구조화된 폐습으로서의 권력형 성폭력 행위가 우리사회에서 추방되어야한다는 점과 이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연대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하여 십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사안이 형사법정으로 온 이상 헌법적, 형사법적 원칙에 기초해 사안을 심리해야 할 것이고, 그 결과 재판부에서 본 사건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고충을 내비쳤다.

재판부는 “결국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 숙고하고, 피해자의 증언 등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적 고려를 하더라도,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 사건 판결문은 114쪽에 이를 정도로 많다. 이에 재판장은 법정에서 판결 선고문을 낭독했고, 판결문의 요점을 정리해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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