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종친회 회장 선거에서 횡령 전과가 있는 후보에게 “남의 재산 탈취한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소 과장된 감정적이고 과격한 방식의 발언이더라도 발언의 목적이 피해자 비방에 있지 않고, 범죄전력과 같은 개인적인 사항이더라도 피해자가 종친회 회장으로 출마해 공공의 이익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2017년 11월 포항에서 열린 종친회 자리에서 종원들이 듣는 가운데 C씨를 가리키면서 “남의 재산을 탈취한 사기꾼이다. 사기꾼은 내려오라”고 말했다.

이 자리는 대종회 회장 선출을 예정하고 있었다. 지역 종친회 회장이었던 C씨는 회장 후보자였다. A씨는 종친회 지역청년회 부회장이었다.

C씨는 회장 선출과 관련한 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는데, A씨와 B씨는 단상 아래에서 C씨의 발언을 방해하며 이런 발언을 했다.

결국 A씨와 B씨는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C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2005년 대구고등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횡령죄 등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1심은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와 B씨에게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의 상고심에서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대구지방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발언의 주된 취지는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탈취한 전력이 있다는 것으로, 피해자에게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죄(횡령)의 전과가 있는 이상 주요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사기꾼’이라는 표현도 사용했으나, 이는 피해자의 종친회 회장 출마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한 것이거나 다소 과장된 감정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탈취’, ‘사기꾼’이라는 표현은 횡령죄의 범죄사실에 대해 일반인으로서 법률적 평가만을 달리 한 것일 수 있으므로, 원심으로서는 전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위 표현과의 관련성을 심리할 필요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단순히 피고인에게 사기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발언 내용이 허위의 사실이라고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횡령죄 범죄전력이 있는 피해자가 종친회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관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과정에서 발언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이와 같은 피해자의 종친회 회장으로서의 적격 여부는 종친회 구성원들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다소 감정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이 발언을 한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피해자를 비방하려는 데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범죄전력과 같은 개인적인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종친회 회장으로 출마함으로써 공공의 이익과 관련성이 발생한 이상, 그러한 사정만으로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것은 아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발언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등에 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진실에 반한다고 단정하고 피고인들의 행위에 대해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부정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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