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범죄가 일어난 시점이 아니라,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현 등 범죄피해가 나타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초등학교 4~5학년이던 2001년 7월경부터 2002년 8월경까지 B씨로부터 4회에 걸쳐 성폭력 범행을 당했다.

이후 2016년 한 테니스대회에서 우연히 B씨를 만나면서 급격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다. 결국 2016년 6월 7일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발현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A씨는 B씨를 형사 고소했다. B씨는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간음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8년 7월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A씨는 또한 2018년 6월 15일 B씨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1억원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무변론으로 진행돼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심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던 B씨는 항소심에서 마지막 범행이 있었던 200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났으므로, A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이미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의정부지법은 A씨가 청구한 위자료 1억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A)의 손해배상채권의 단기소멸시효(3년) 기산일은 형사재판의 1심판결 선고일인 2017년 10월 13일이고, 피고(B)의 불법행위로 인한 원고의 손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원고가 최초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 7일 현실화 됐다고 봐야 하므로, 이때 원고의 손해배상채권의 장기소멸시효(10년)의 기산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2018년 6월 15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며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로 완성 되었는지(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현실화 되는 시점) 여부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이른바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A씨가 가해자인 코치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A씨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증상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관계를 비롯한 피보호관계에 있었던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인지적ㆍ심리적ㆍ관계적 특성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 법원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성폭행 피해 당시 원고의 나이, 원고와 피고의 관계, 원고가 2016년 피고와 조우하면서 급격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고 그 후 처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가 2016년 6월 7일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이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10년)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발병 및 진행경과, 아동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 등에 비추어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성범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에서 원고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현 진단을 받은 때부터 장기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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