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가출한 아내와 이혼하지 못한 국가유공자가 혼인신고 없이 다른 배우자와 실제 부부생활을 유지해 왔다면 예외적으로 법률혼에 준해 국립묘지 합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호국원에 안장된 6ㆍ25 참전유공자 A씨와 ‘중혼적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가 사망한 후, 그 자녀가 신청한 국립묘지 합장에 대해 국가보훈처가 안장심사위원회의 심사도 거치지 않고 반려한 것은 위법ㆍ부당하다고 25일 밝혔다.

‘중혼적 사실혼’ 관계란 법률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와 이혼신고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법적 신고 없이 사실상 혼인관계를 맺은 경우를 말한다.

6ㆍ25 참전유공자인 A씨는 1944년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배우자가 가정불화로 가출한 이후 이혼신고를 못한 채 홀로 지내왔다.

A씨는 3년 뒤 새 배우자를 만나 함께 살면서 7남매를 낳고 1966년에 사망해 호국원에 안장됐다.

A씨는 사망할 당시까지도 1944년에 결혼했던 배우자와 이혼신고를 하지 못해, 새 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난 7남매는 모두 아버지의 전 배우자 자녀로 호적에 등재됐다.

다행히 7남매는 1987년 법원에 아버지의 전 배우자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해 친어머니의 자녀로 다시 등재됐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란 친생자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다.

친어머니가 2014년에 사망한 후 7남매는 친어머니를 아버지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해 달라고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이들이 ‘중혼적 사실혼’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안장심사위원회의 심사도 거치지 않고 합장신청을 반려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비록 민법에서 ‘중혼적 사실혼’을 금지하고 있으나 A씨와 법률혼 관계에 있는 전 배우자는 사실상 이혼상태로 볼 수 있고, 새 배우자는 슬하에 7남매를 두는 등 실제 부부생활을 인정할 만한 사실혼 관계로 판단했다.

또 이들의 ‘중혼적 사실혼’ 관계가 선량한 풍속에 위배된다거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남편과 첩(부첩) 관계로 보기도 어려우므로 예외적으로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해야 한다고 보고 국가보훈처의 국립묘지 합장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했다.

국민권익위 김태응 행정심판국장은 “‘중혼적 사실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장심사위원회의 심사기회조차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보훈처 안장심사위원회는 청구인의 개별상황 및 특수한 사정 등을 면밀히 살펴 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행심위는 지난달 1일부터 신속하고 공정한 사건 해결을 위한 조정제도를 시행중에 있다.

중앙행심위는 사건의 법적ㆍ사실적 상태와 당사자와 이해관계자의 이익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한 후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조정을 할 수 있다.

오는 11월 1일부터는 행정심판에 국선대리인 제도가 도입된다. 이를 통해 행정심판 청구인은 경제적 능력으로 대리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중앙행심위에 국선대리인 선임을 신청할 수 있으며, 현재 구체적인 사항은 하위법령으로 개정 중에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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