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조수(대작화가)의 상당한 도움으로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미술작품으로 팔아 판매대금을 편취했다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씨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작품이 친작(親作)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됐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봐서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했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한 최초의 사례”라고 밝혔다.

그런데 조영남씨 사건은 이른바 조수의 ‘대작’ 논란으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그렇다면 판매된 그림이 조영남의 작품인지, 조수의 작품인지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검사는 조영남씨를 작품 판매대금의 이익을 얻은 사기 혐의로 기소했을 뿐,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대작 논란을 빚은 미술작품들의 저작자가 누구인지에 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검사는 뒤늦게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권은 대작화가인 A씨 등에게 귀속되고, 조영남은 저작자로 볼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만 판결한다”며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또한 조영남씨가 그림을 팔면서 상당한 부분을 조수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사기에 해당하느냐는 것에 대해, 법원은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번 조영남씨 그림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과는 달리,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단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조영남씨는 2009년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인 A씨에게 1점당 10만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A씨가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달라고 하는 등의 작업을 지시했다.

조영남씨는 그때부터 2016년 3월까지 A씨로부터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의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했다.

조영남씨는 그럼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사실상 A씨 등이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그림을 판매해 판매대금 상당의 돈을 편취했다며 검찰은 사기죄로 기소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2017년 10월 조영남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강호 판사는 “피고인(조영남)이 제작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고 마무리 작업에 관여했다 해도 대부분의 창작적 표현 과정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이라며 “그림 구매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창작 표현까지 전적으로 관여했는지가 구매 판단이나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피고인이 그림 구매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숨긴 것은 기망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조영남씨가 항소했고,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수영 부장판사)는 2018년 8월 조영남씨의 사기 혐의 1심 유죄를 뒤집고,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고, 미술작품의 작가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조영남씨가 작품을 직접 그렸다는 친작(親作)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구매자들이 A씨가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해당 가격에 미술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지 않다”며 “따라서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검사는 “이 미술작품의 저작권은 대작화가인 A씨 등에게 귀속되고, 조영남은 저작자로 볼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은 저작물ㆍ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특히 “조수를 이용해 미술작품을 제작했음에도 작품 구매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고지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작품을 판매한 것은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라며 원심을 지적했다.

검사는 “회화의 거래에서 작가의 ‘친작(親作)’과 그렇지 않은 작품 사이에는 구매자 입장에서 선호도에 차이가 있고, 구매 여부의 판단이나 가격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그와 관련된 내용은 미술작품 거래에서 중요한 정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관념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고지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조영남씨 그림대작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며 논란이 됐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5월 28일 조영남씨의 그림 판매 사건에 관해 공개변론을 개최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6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저작물ㆍ저작자에 관한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불고불리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불고불리(不告不理) 원칙은 형사소송법상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에 대하여만 심리ㆍ판결한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했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소사실에서 누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라는 것인지 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즉, 검사는 피고인 조영남이 미술작품의 창작과정, 특히 조수 등 다른 사람이 관여한 사정을 알리지 않은 것이 사기죄에서의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봐 공소제기를 했다”며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미술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원심에 저작물ㆍ저작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고지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작품이 친작(親作)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됐는지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은 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조영남이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해 판매했다는 등 이 사건 미술작품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니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피해자들이 이 미술작품을 피고인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했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한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위작ㆍ저작권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에 관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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