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4일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임신 중 업무에 의한 태아 건강손상을 산재(산업재해)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법원에 따르면 2009년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중 15명이 임신했는데,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을 뿐이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의 간사호사들은 유산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들은 역학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임신 초기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2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ㆍ질병ㆍ장해ㆍ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4명 간호사들은 “태아의 심장 형성에 방애가 발생했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발병으로 봐야하므로, 출산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2013년 9월 공단에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이상덕 판사는 2014년 12월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원고 간호사 4명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행정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 2016년 5월 1심 판결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고, 출산아와는 별도의 인격체인 원고들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관련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016년 상고심 접수 이후 4년 만인 지난 4월 29일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모(母)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여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서울변호사회는 “첫째, 이번 대법원 판결은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서울변회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태아는 모체의 일부이고 출생한 때 비로소 권리능력을 부여받는다”며 “임신 중에 업무로 인해 태아의 건강손상이 발생한 경우, 유산이나 유산증후는 여성 근로자 본인의 신체완전성이나 노동능력에 영향이 있다고 보고 산재로 인정하는 반면에 출산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여성 근로자 본인의 건강손상이 아니므로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회는 “그 결과 태아의 건강손상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선천성 질병, 장애아 출산의 경우 민사구제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근로자는 입증의 어려움과 사업주의 무자력 위험, 쟁송에 따르는 비용과 시간 등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우리 헌법이 여성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제32조 제4항)와 국가의 모성 보호 의무(제36조 제2항)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 제11조 평등권을 근로 제공을 통한 여성의 직업 수행의 영역에서 구체화한 것이라고 하면서,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이는 국가의 책무임을 인정했다.

또한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경우 노동능력 상실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태아의 건강손상이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모성과 태아의 생명보호의 측면에서도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유산된 경우와 선천성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출생한 경우를 달리 평가할 수 없는 점에서 사회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라고 봤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둘째,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바,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보장범위를 자녀의 치료를 위한 의료서비스까지 확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출산 이후 모체와 분리된 상태에서 근로자 본인과는 별개의 인격체인 자녀에게 산재보험법상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 보험급여 수급과 관련한 기초적 법률관계가 성립한 이상 근로자가 그 후로 근로자의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이러한 보험급여 수급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과 같이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재해였던 것이 이제는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모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태아 상태로 치료받는 경우 여성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하는데 장애가 없는데, 마찬가지로 출산 이후에 여성 근로자를 요양급여의 수급권자로 보더라도, 그 요양급여의 내용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되는 것이므로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서울변호사회는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개념을 해석ㆍ적용함에 있어서 문리적 해석과 형식논리에 치우쳐 출산 이후 여성 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을 부정하는 것은 여성 근로자와 모성의 특별한 보호를 규정한 헌법규정들의 취지와 정신을 고려해야 할 전형적인 국면에서 오히려 이를 전적으로 외면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에 찬동한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셋째, 이번 판결은 국회와 정부에 산재보험제도와 법령의 개선이라는 입법과제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대법원이 2017년 삼성전자 직업병 산재 사건 판결에서부터 판시해 온 바와 같이, 산재보험제도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이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을 견인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안정적인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이번 판결을 계기로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한 구체적인 산재인정 기준, 보험급여의 종류, 지급 수준, 신청절차 등에 대한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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