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판사의 서명은 있지만 날인이 누락된 압수ㆍ수색영장은 적법하게 발부된 것일까. 나아가 그 영장에 기초해 수집한 증거가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할까.

1ㆍ2심은 이 영장이 법관의 의사에 따라 발부돼 유효한 영장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관의 ‘서명날인란’에 서명만 있고 날인이 없으므로, 형사소송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영장에 판사의 서명과 간인이 있어 진정으로 영장이 발부됐다는 점은 외관상 분명하다고 봐, 이 영장에 따라 수집한 증거들은 유죄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자동차 변속기 검사장비 제작업체의 기술영업이사 A씨는 회사 영업기밀 자료를 이메일로 중국의 동종업체에 넘긴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영업기밀을 넘긴 뒤 중국 업체로 이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이 2015년 3월 압수한 A씨의 노트북 속 파일 출력물이 증거능력을 갖는지가 쟁점이 됐다. 압수수색영장에 판사의 서명만 있고 날인이 누락된 영장으로 압수된 증거물이 증거능력이 있는지 여부였다.

수원지방법원 영장담당판사가 발부한 2015년 3월 26일자 압수수색검증영장에는 피의자의 성명, 죄명,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 신체, 물건, 발부 연월일, 유효기간과 그 기간을 경과하면 집행에 착수하지 못하며 영장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취지, 압수수색의 사유가 기재돼 있고, 수기로 ‘이 영장은 일출 전 또는 일몰 후에도 집행할 수 있다’고 기재된 부분에 날인이 있으며, 별지와 사이에 간인이 있다.

그런데 판사의 서명날인 란에는 서명만 있고, 그 옆에 날인이 없었다.

경찰은 이 영장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에서 A씨 소유의 노트북 복제본, SD카드 복제본 등을 압수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노트북, SD카드에 대한 복제 현장에 참여했으며, 이미지 복제된 파일의 해쉬값을 확인했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경찰은 압수한 각 복제본에서 혐의사실인 업무상배임과 관련한 전자정보를 탐색해 파일에서 문서로 출력해 범죄사실 관련 자료(파일 출력물)를 작성했다.

검사는 2015년 12월~2016년 1월 사이 A씨의 변호인이 참여한 가운데 위 파일 출력물을 제시한 상태에서 세 차례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해 기소하며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재판 중 A씨 측은 압수수색영장에 판사의 날인이 없다는 이유로 “이 재판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압수수색영장에 법관의 날인이 누락됐지만, 법관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발부됐기 때문에 유효한 영장이고, 이 영장에 따라 압수한 증거물도 증거능력을 갖는다”며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는데, 항소심(2심)은 A씨의 형량을 징역 1년으로 높였다.

항소심은 위 파일 출력물, A씨에 대한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하고 파일 출력물에 관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누설 등)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즉 각 증거를 유죄인정의 증거로 삼았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이에 A씨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사건은 판사의 날인이 누락된 영장으로 압수된 증거물이 증거능력을 갖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의 판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7월 11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 등)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2018도20504)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단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먼저 제시했다.

재판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범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수사과정의 위법행위를 억제할 필요가 있으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 또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확보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의 실현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 절차를 통해 달성하려는 중요한 목표이자 이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조항을 마련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압수ㆍ수색영장에는 피의자의 성명, 죄명,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 신체, 물건, 발부 연월일, 유효기간과 그 기간을 경과하면 집행에 착수하지 못하며 영장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취지 그 밖에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사항을 기재하고 영장을 발부하는 법관이 서명날인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영장은 법관의 서명날인란에 서명만 있고 날인이 없으므로, 형사소송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적법하게 발부됐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런데도 원심이 영장이 법관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발부됐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영장이 유효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사정을 전체적ㆍ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 사건 영장에 따라 압수한 파일 출력물과 이에 기초해 획득한 2차적 증거인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영장에는 야간집행을 허가하는 판사의 수기와 날인, 그 아래 서명날인란에 판사 서명, 영장 앞면과 별지 사이에 판사의 간인이 있으므로, 판사의 의사에 기초해 진정하게 영장이 발부됐다는 점은 외관상 분명하다”며 “당시 수사기관으로서는 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됐다고 신뢰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위법한 압수ㆍ수색을 통해 수집한 증거와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이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ㆍ수색을 억제하고 권한남용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 영장의 내용과 형식, 발부 경위와 수사기관의 압수ㆍ수색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수사기관이 영장을 발부받아 파일 출력물을 압수한 것이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함으로써 달성하려는 목적을 실질적으로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 노트북, SD카드에 대한 복제 현장에 직접 참여해 이미지 복제된 파일의 해쉬값을 확인했고, 그 복제본을 탐색ㆍ출력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거나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가 탐색ㆍ출력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파일 출력물이 적법하지 않은 영장에 기초해 수집됐다는 절차상의 결함이 있지만, 이는 법관이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 발부한 영장에 기초해 취득된 것이고, 위와 같은 결함은 피고인의 기본적 인권보장 등 법익 침해 방지와 관련성이 적다”며 “파일 출력물의 취득 과정에서 절차 조항 위반의 내용과 정도가 중대하지 않고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나 법익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어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까지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높은 이 파일 출력물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영장이 형사소송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적법하게 발부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영장에 따라 수집한 파일 출력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기초해 획득한 2차적 증거인 각 증거 역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원심판결 이유에 일부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부정경쟁방지법에서 정한 영업비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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