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결혼이주여성에게 국내 ‘체류자격 연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베트남 국적의 여성 A씨(20대)는 국제결혼중매업체를 통해 한국인 B씨와 결혼해 2015년 7월 혼인신고를 마치고, 2015년 12월 결혼이민(F-6) 체류자격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혼인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A씨는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보수도 없이 일하면서 고부 갈등과 특히 유산 등을 겪으며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결국 A씨는 혼인생활 1년도 안 돼 2016년 7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인천가정법원은 2017년 1월 A씨가 남편과 시어머니의 부당대우로 유산하게 된 점 등을 종합해 B씨의 주된 귀책사유로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혼 판결을 내리며 B씨는 A씨에게 위자료 100만원 지급 판결을 선고했다. 사건은 쌍방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A씨가 2017년 5월 서울남부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장에게 결혼이민(F-6 다.목) 체류자격 허가신청을 했다. 출입국관리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의 요건을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국내에 체류하던 중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다.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A씨와 B씨를 면담해 이혼경위를 청취하며 실태조사를 했다. 당시 B씨는 “A가 직장에 출근하는 문제로 시어머니와 갈등하다가 스스로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이혼소송에서 A의 변호사로부터 자신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A가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준비서면을 가정법원에 제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서울남부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장은 2017년 6월 A씨에 대해 “B씨에게 이혼파탄에 관한 전적인 귀책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처분을 했다.

결국 A씨는 체류기간연장 등 불허가처분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1심과 2심(서울고등법원)은 “A씨가 혼인 파탄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4일 A씨가 서울남부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체류기간연장 등 불허가처분취소’ 소송 상고심(2018두66869)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며 원고(A) 승소 취지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는 2016년 2월 임신 초기에 유산증후가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임산부가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1.2km)를 걸어서 병원에 다녀왔으며, 안정과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에도 입원치료를 받거나 집에서 쉬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요구로 다시 편의점에 가서 일하다가 유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것은 적어도 원고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로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B씨(남편)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한 원고의 마음 속 상처는 별거ㆍ이혼 무렵까지도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중대한 귀책사유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부는 가정의 경제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이므로, 편의점 운영을 통해 얻는 소득이 적어 시어머니와 남편이 원고에게 생활비를 넉넉하게 지급하지 못했던 점을 혼인파탄의 귀책사유로 볼 수는 없다”며 “또한 원고가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 시어머니의 편의점에서 일하기 싫고 다른 직장을 구해 생활비를 벌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에 남편이 동의했으므로, 원고가 다른 직장(면세점)에 다닌 것을 혼인파탄의 귀책사유로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가 다른 직장에 다닌 이후로 시어머니가 원고에게 직장을 그만 두고 편의점에서 일할 것을 종용했고, 원고가 응하지 않자 이혼하라고 요구하며 집에서 쫓아낸 것은 남편의 중대한 귀책사유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2016년 7월 원고가 시어머니와 싸움이 있은 후, 남편이 ‘당분간 친척언니 집에서 지내라’고 말하며 원고를 친척언니 집에 데려다 주었으므로, 원고가 일방적으로 가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오히려 시어머니가 싸운 다음날 아침에 원고의 핸드폰을 빼앗은 점, 남편이 원고의 소재를 알면서도 소재불명이라며 허위의 가출신고 및 신원보증 철회서를 작성해 제출한 점을 보면, 시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원고를 축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따라서 인천가정법원이 이혼 확정 판결에서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 B씨의 주된 귀책사유로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혼소송에서 B씨가 원고의 소송대리인의 제안을 듣고 자신에게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제출한 것은 허위자백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본인과 시어머니의 잘못이 있고 원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혼소송 당시 A씨의 소송대리인 변호사는 B씨의 소송대리인에게 “B씨가 순순히 혼인파판의 귀책사유를 인정해 소송이 조기에 종결될 경우,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B씨로부터 위자료나 소송비용은 받지 않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B씨의 소송대리인이 B씨에게 이를 전달하면서 “패소할 경우 원고의 소송대리인 선임비용까지 물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B씨는 소송대리인에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준비서면을 이혼사건 재판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이혼소송의 쌍방 당사자 사이에서 일방이 순순히 책임을 인정해 소송이 조기에 종결될 경우 상대방이 위자료나 소송비용을 강제집행하지는 않겠다는 취지의 비공식적 합의가 있었더라도, 인천가정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혼 확정판결의 정당성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에게도 혼인파탄에 관해 일정부분 책임이 있으므로 결혼이민(F-6 다.목) 체류자격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결혼이민 체류자격의 요건의 해석과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게 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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