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검찰ㆍ경찰 등의 압수수색에서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 침해가 문제되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들은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대화내용, 상담 및 변론과정에서 작성한 문서 등에 대해서는 증거수집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을 배제시키자는 의견이 제시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전국 회원(변호사)을 대상으로 비밀유지권 침해 피해사례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4일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 비밀유지권을 침해한 권력기관은 검찰(37.7%)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경찰(18.9%), 국세청(9.4%), 금융감독원(7.5%),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변협은 “전통적인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 뿐 아니라 국세청ㆍ금융감독원ㆍ공정거래위원회 또한 로펌, 기업ㆍ기관의 법무팀, 개업 변호사의 사무실, 피의자의 사무실 등에서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비밀유지권을 침해당한 방식은 ‘피의자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그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34.5%)과,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직접 압수수색’(32.8%) 해 침해당했다는 답변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다른 방법으로는 증거제출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비밀유지권을 침해했다는 의견(32.8%)도 많았다.

구체적인 침해 사례는 피의자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변호사와의 이메일 등 교신 내역 ▲경찰 조사 참여시 변호사가 남긴 메모 ▲변호사의 법률 검토의견서 등을 증거로 수집하는 등 비밀유지권을 침해한 사례가 있었다.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경우에는 ▲피의자와의 문자메시지ㆍ카카오톡 대화내역, ▲상담일지 ▲의뢰인의 방어를 위해 준비 중인 변호인 의견서 등이 증거로 수집됐다.

사내변호사의 경우, 검찰 등이 ▲사내변호사와 로펌 간 논의 내용 ▲거래 대상 로펌의 업무 내역서(time sheet)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변협은 “특히 조사된 비밀유지권 침해 사례 중에는 그 정도가 심각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례로 ▲의뢰인과 관련된 사람들을 소환해 의뢰인과 변호사가 접촉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사례 ▲변호사가 근무 중인 로펌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압박해 담당 사건 증거의 임의제출을 강요한 사례 ▲피고인과 구치소에서 접견한 변호사에게 연락해, 피고인과의 상담 내용을 밝히지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한 사례 ▲피의자에게 변호인과의 상담 내용을 진술할 것을 요구한 사례 등을 제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회원(변호사)들은 비밀유지권 침해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입법을 통한 비밀유지권 명문화를 들었다.

현행법에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특히 의뢰인과 변호사 간 온라인ㆍ오프라인 대화 내용, 상담 및 변론 과정에서 작성한 문서 등에 대하여는 증거 수집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위법수집증거로 취급해 증거능력을 배제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검찰 등 국가기관의 인식변화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변협은 “다수의 응답자들이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지적하면서 ▲피의자의 변소내용을 조서에 충실히 반영하지 않고, 직ㆍ간접적으로 진술을 강요하는 경우 ▲형식은 임의제출이지만 수사기관의 압박과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증거를 제출하도록 만드는 경우 등 낡은 수사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 침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고 전했다.

대한변협은 “변호사 회원들의 설문조사 응답을 취합하면, 수사기관 뿐 아니라,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타 기관까지 변호사와 피조사자 사이의 상담 내용을 증거로 제출할 것을 압박하고 진술을 유도하는 등 부당하게 행동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변협은 “헌법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권은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전제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변호사 간 상담 내용 및 이를 기록한 서류 등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협은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제공한 자료가 공개돼 자신에게 불이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진솔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게 된다”며 “결국 헌법상 보장되는 재판청구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되는 엄중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선진국의 경우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Duty of Confidentiality)와 구별해, 연방법과 주법, 보통법에 의해 변호사-의뢰인간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 인정된다. 영국도 보통법에 의해 변호사 특권(Legal Professional Privilege)이 인정된다. 나아가 ‘유럽변호사 행위규범(The Code of Conduct for European Lawyers)’은 비밀유지는 변호사의 일차적인 권리이자 의무이다.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는 의뢰인의 이익뿐 아니라 사법제도 운영의 이익에도 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변협은 전했다.

이는 국가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는 “법치주의의 실현, 진실한 법집행을 위하여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또는 권리를 공통된 가치로 추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소속 각 국가에 변호사의 비밀유지원칙 강화 및 보호를 요청하며, 이에 대한 국가의 침범은 변호사와 의뢰인간의 근본적인 신뢰관계, 변호사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사법의 진실성을 방해하는 것이다”라는 결의문을 채택한 사실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 도입을 위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앞으로 의뢰인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