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경찰이 범죄 혐의로 미성년자를 경찰서에 불러 조사할 때 부모에게 조사 사실 등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9일 경찰청장에게, 소속 경찰 전원에게 미성년자에 대한 출석요구나 조사 시 보호자 등 연락 관련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미성년자인 피의자 본인을 포함해 보호자 등에게도 사건처리 진행 상황을 통지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인 A군(당시 만17세)은 편의점에서 담배 4갑을 훔쳤다. 당시 친구(B)가 망을 봤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공범(B)을 특정하고 주거지를 방문해 부모에게 설명한 후 자녀와 함께 경찰서에 출석할 것을 고지했다. 경찰은 또 공범(B)에게 A군에게도 부모와 함께 경찰서에 출석할 것을 전해달라고 했다.

2018년 3월 공범은 부모와 함께 경찰서에 출석했으나, A군은 부모 없이 혼자 출석했다.

이에 경찰관이 A군에게 조사하기 전 부모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A군은 엄마와 통화를 해보겠다고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 ‘엄마’라고 표시된 휴대전화를 경찰관에게 건네줬다. 경찰관이 A군의 어머니가 맞는지 물어본 뒤, A군의 특수절도 혐의와 관련해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음을 설명하고, A군 혼자서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한 동의를 받고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조사 12일 후 A군에 대한 절도혐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공범의 어머니에게 송치사실을 전화로 고지하고, A군에게 검찰에 송치됐다고 알렸다. A군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검찰청 직원도 검찰 출석 요구를 위해 피의자신문조서에 적혀 있던 A군 어머니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맞는지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검찰 출석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출장 중이라 출석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검찰 직원은 다시 A군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과 조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으며 출석을 요구했다.

아버지는 그 무렵 아들이 고민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고3으로 힘들어 한다고 생각하면서 “힘내”라고 말만 해줬다. 그런데 A군은 경찰조사를 받고 25일 뒤 다리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들의 친구들로부터 한 번의 실수로 부모에게 미안해하고 선생님들에게도 죄송해서 시간이 갈수록 고민하고 괴로워했고,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아버지는 “경찰들이 미성년자인 아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호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동석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A군이 조사 전 엄마라고 바꿔 주며 통화를 해준 사람은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라 A군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은 사망 후 알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위원장 정문자)는 “아동은 성년에 비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하거나 법률적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수사과정에서 방어권ㆍ진술권 등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따라서 아동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부모 등 보호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피해자는 경찰 조사 당시 17세의 아동으로 범죄수사규칙 제211조의 적용대상이므로, 경찰관은 소년에 대한 출석요구나 조사를 할 때 부모 등 보호자에게 연락해야 한다”며 “피해자와 여자친구가 경찰관을 속여 부모에게 연락하지 못하고 조사 시 동석도 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더라도,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부모 등 보호자의 조력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관은 피해자의 여자친구와 처음 통화 시 실제 부모가 맞는지 여부에 대해 좀 더 세밀히 확인했어야 하고, 피해자의 일방 부모인 어머니가 동석이 어렵다고 하면, 다른 일방 부모인 아버지에게도 연락을 시도해 보거나 또는 학교 교사 등 피해자의 방어권 행사를 조력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고 짚었다.

위원회는 “경찰에서 조사받게 되는 아동들 중 보호자와 갈등관계에 있거나 보호자에게 자신의 비행행위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아동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아동들은 부모 등 보호자에 대한 연락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 진정사례와 같이 부모 등 보호자에게 자신의 행위가 알려져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부모 등 보호자의 연락처를 속여서 경찰에 제출하거나 친구를 부모 대역으로 속여 경찰관과 통화하게 하거나, 부모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하는 등 보호자 연락 과정에서 다양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경찰은 사건 처리과정에서 아동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아동과 부모 등 보호자의 관계 등을 좀 더 주의 깊게 확인하고, 아동이 부모 등 보호자의 연락처를 말하지 않는 경우, 보호자의 연락처를 속여서 제출하는 경우, 친구 등 다른 이를 부모 대역으로 속여 통화하게 하는 경우 등, 보호자 연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이러한 사례에 대응해 아동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위원회는 “나아가 경찰관들이 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피해자 본인에게만 송치사실을 고지해, 피해자는 부모 등 보호자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상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결론적으로, 경찰관들은 만19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피의자로 조사하면서 피해자의 부모 등 보호자에게 제대로 연락하지 않아, 피해자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부모 등 보호자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갖지 못한 결과에 이르게 됐다”며 “따라서 경찰관들의 행위는 소년사건 처리과정에서 요구되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해 헌법 제12조에서 보장되는 피해자의 방어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다만 “경찰관들의 소속기관 경찰서에서 진정 사건 관련해 견책과 직권경고한 사실이 있고, 동일한 사안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보호 향상방안 종합추진대책’과 ‘소년범 수사 매뉴얼’을 하달하고, 수사경찰을 대상으로 경찰서장 주재 인권간담회 등을 실시한 바 있다”며 “따라서, 이 진정 사건은 별도의 구제 조치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판단해 기각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혜정 기자 shin@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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