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드루킹과 연루돼 1심에서 법정구속 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재판을 맡은 차문호 재판장은 공정한 재판진행을 강조하면서 피고인과 변호인 그리고 검사에게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한다고 우려된다면 언제든지 기피신청을 하라”고 제시했다.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19일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차문호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이 사건에 임하는 저와 우리 재판부의 입장을 말씀드리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차 재판장은 “이 사건이 항소심에 접수된 이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각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재판 결과가 당연시된다고 예상하고, 그러한 결과는 저나 우리 재판부 판사의 경력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와 우리 재판부를 비난하고, 벌써부터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그간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례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문명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차문호 재판장은 “법관은 공정한 심판으로서 활동할 뿐, 법관이 결론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며 “법관으로서는 특정 결론을 향한 목표나 의지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법관은 눈을 가리고 검을 든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며 그 결과를 선언하는 고독한 수도자일 뿐”이라며 “이 때문에 형사소송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재판은 운동경기로 비유되고, 법정은 경기장이며, 검사와 피고인은 운동선수이고, 법관은 심판에 불과하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차 재판장은 “그런데 요즘 보여지는 재판결과를 예단하고 재판부를 비난하는 일각의 태도는, 재판이 법률이나 양 당사자의 법정 공방 및 증거와 무관하게 결론이 난다고 생각하거나, 판사가 그렇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마치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이 골대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 삼아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차문호 재판장은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이 아닌 법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비난과 예단은, 무죄추정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유죄로 예단하고 엄벌하라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유죄든 무죄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무죄로 재판하라는 협박으로 비칠 수 있어 순수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차 재판장은 “이러한 태도는 무죄추정을 받으면서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정정당당하게 밝히겠다는 피고인의 입장과 노력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이고, 자신의 전인생과 운명이 결정되는 재판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피고인을 매우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서 피고인이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문명국가에서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한 우리 재판부 판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것이며, 재판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며, 사법제도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차문호 재판장은 “우리 재판부 판사들은 어떠한 예단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재판할 것이며,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고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관으로서,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한 상태에서 과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 나갈 것이고, 1심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심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 재판장은 “이 재판에서의 논란은, 저나 우리 재판부 판사의 경력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법의 신뢰를 위해, 그리고 피고인이 좀 더 편안하게 재판받게 하기 위해서,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재판부는 여기 검사나 변호인, 피고인과 사이에 아무런 연고관계가 없다. 특히나 피고인과는 옷깃조차 스치지 않았다. 이해관계도 같이 않다”는 점을 확신시키며 “이 때문에 저와 우리 재판부 구성원은 배당된 이 사건을 피할 수 없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재판할 의무와 책임만 주어져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차문호 재판장은 “피고인으로서는 우리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재판부를 거부하거나 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기피신청까지 갈 것도 없이, 저나 우리 재판부와 연고관계 있는 변호사를 한 명이라도 선임했다면 재판부가 바뀌었을 것”이라며 “사실 저는 피고인 측에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고도 털어놨다.

차 재판장은 “그러나 피고인 측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피고인이 저와 우리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무죄추정 아래에서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피고인의 그러한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차문호 재판장은 “하지만 우리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피고인과 변호인은 지금이라도 기피를 신청하고,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우리 재판부에 대해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기피를 신청하십시오”라고 제시했다.

그는 거듭 “검사, 피고인, 변호인은 오늘은 아니더라도 향후 재판진행 과정에서 말씀드린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면 재판종결 전까지 언제든지 기피를 신청하라”며 “우리 재판부는 우리에게 그런 불공정성이 있는지 다른 재판부나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것이고, 기피재판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 재판장은 “그러므로 우리 재판부로부터 재판을 받는 동안에는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는 법정 밖이 아니라, 이 법정 안에서 치열한 논쟁과 증거조사를 통해 답을 찾아나가십시다. 검사도, 피고인도, 변호인도 모두 피고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언론은 우리 재판 진행 상황을 국민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 주십시오. 관련된 분들이나 국민들 중 이 사건의 진실을 아시어 올바른 결론 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검사나 변호인에게 그 증거들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법정에서 그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라며 “그래서 피고인은 물론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재판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합시다”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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